일정

제168회 하우스콘서트 | 장두이의 모노콘서트

제168회 하우스콘서트
일 시 ㅣ 2007년 10월 26일(금) 8시
출 연 ㅣ 장두이

PROGRAM
음악 1; -하이티 Voodoo 음악 순례-
덤발라 송
알렛빠 송
빠빠담바 송
장례음악까지..........
음악 2; -블루스와 가스펠-
Wade in de water
Joshua Fought The Battle Of Jericho
Amazing Grace
Swing Low
If I know my captain was blind
음악 3; -세계의 음악-
하바나길라(이스라엘)
회심곡(한국)
악바예(아프리카 가나)
오지꼬리찌엘레(인도)
양치기 노래(연극 메디아)
장두이의 모노 콘서트
연기생활 37년째를 맞으며
그간 출연했던 160여 편의 연극 속에 나오는
“연극음악 콘서트”
미국, 아프리카, 인도, 캐리비안의 하이티 음악과 우리 국악까지
소개하는 연극음악 여행.............
다양한 악기와 아카펠라로 블루스, 가스펠에서 하이티 Voodoo 음악까지
부르는 장두이만의 영혼의 콘서트 입니다.
PROFILE
1952년 경기도에서 태어나 1974년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7년과 78년에 서울 예술 전문대학 연극과와 무용과를 졸업하고 1978년 9월 뉴욕 라마마 극단 초청으로 도미, 록펠러 재단과 U.N의 후원으로 "Liturgy", "Hungry Tigers"등을 뉴욕, 워싱턴 등지에서 8개월 간 공연 후, 뉴욕 뉴스쿨 뮤지컬학과, 뉴욕 머스 커닝햄 무용학과를 수료한 다음 뉴욕 브루클린 대학원 연극과 연기 전공 석사과정(MFA)을 졸업했으며, 뉴욕 액터스 스튜디오 연기수업 과정과 뉴욕 H. B 액팅 스튜디오 연기수업 과정 등을 통해 연기를 위해서라면 주저없이 자신을 내던져 배우고 훈련하며 실력을 쌓았다.
1978년 공연단체 알 댄스 디어터 사운드를 뉴욕에서 설립하여 1994년까지 미국, 캐나다, 일본, 유럽 등지에서 60여 편의 연극, 무용, 음악 공연을 하였고 또 베를린 영화제와 함부르크 국제연극제에 참가하고 1980년부터 1992년까지 뉴욕 코리안 프레이드의 예술 감독을 역임했다. 이후 파리 피터 브룩 극단의 상임 단원, 그로토우스키 극단의 수석 단원, Koo Dance Company의 수석 무용수, Lo Lan Dance Company의 수석 안무자, 뉴욕 LaMama 극단 수석 연기자, 뉴욕 KORUS PLAYERS 극단 창단 대표 등으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며 명성을 쌓아 왔다.
장두이는 이런 활동을 바탕으로 TBC 대학방송경연대회 최우수 연기상(1972), 미국 OBIE 연극상(1979, 1983), 미국 아시아 소수민족 예술가상(1989), 백상예술대상 남자 연기상(1995), 뉴욕 드라마클럽 특별상(2003), 대한민국 희곡문학대상(2005),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상(2005) 등을 수상했다. 현재 인덕대학 방송 연예과 교수
87년쯤으로 기억된다.
미 국무성초청으로 여러 도시를 돌던중 뉴욕에서 우연히 장두이를 만났다.
장발을 뒤로 묶고 두루마기같은 변형 한복에 군화를 신은 그는 배낭(스님용)을 맨 깡총한 차림이었다. 이방인랄까, 에뜨랑제처럼 보였지만 그는 차림을 전혀 의식않고 싱긋 웃으며 아르바이트 가는 길이라고 했다. 연극하면서 먹고 살기위해 일도 해야하는 그의 표정은 당당해 보였지만,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은 채플린 영화의 라스트를 보는 것 같아 안쓰러웠는데, 그게 아니었다. 라마마극장 무대에서 본 배우 장두이는 정말 커보였다. 희랍비극 3편을 하루 2편씩 연속 공연하는 "트릴로지"의 한편에 출연한 장두이는 키크고 눈푸른 서양배우들 속에서 단연 돋보였고 숙연한 분위기마저 풍겼다. 국제무대에 그들과 어깨를 겨루며 설 수 있는 한국배우는 몇이나 될까. 자기역할에 몰입한 장두이의 진지한 자세는 한국인 여행객에게 반가움을 넘어 뿌듯한 자긍심을 안겨주었다.
조선일보 문화부 정중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