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9회 하우스콘서트 아서 그린 관람 후기
- 등록일2026.06.02
- 작성자신수근
- 조회33
Darkness, Light, and Memory : 아서 그린의 슈만
방대한 서사이자 내밀한 사적 고백과도 같은 슈만의 세계가 피아니스트 아서 그린의 타건을 통해 무대 위에 피어났습니다.
연주자 스스로 부여한 묵직한 부제 아래, 체력과 정신력 모두에서 극한의 몰입을 요하는 프로그램의 대장정이었습니다.
거대한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간혹 인간적인 실수들이 스치기도 했으나, 무대를 장악한 그의 아고긱과 장대한 다이내믹 앞에서는 아쉬움이 머물 시간과 공간은 짧고 좁았습니다.
기억의 문을 열며(Memory) : 어린이를 위한 앨범 1번 '멜로디' & 교향적 연습곡 유작 변주곡 5번
본격적인 어둠과 빛의 교차에 앞서, 무대의 첫 공기를 어루만진 것은 그의 순수하고 내밀한 '기억'이었습니다. 아서 그린이 어린 시절 가장 사랑했던 곡 중 하나로 꼽는 《어린이를 위한 앨범》 중 1번 '멜로디'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며, 객석을 단숨에 그의 사적인 시간 속으로 이끌었습니다. 뒤이어 연주된 《교향적 연습곡》 유작 변주곡 5번은 특유의 몽환적이고 깊은 서정으로 몰입감을 끌어올렸고, 이내 몰아칠 《크라이슬레리아나》의 심연을 향해 고요히 걸음을 내딛게 하는 훌륭한 서곡이 되었습니다.
어둠(Darkness) : 크라이슬레리아나, Op. 16
프로그램의 전반부를 장악한 '어둠'은 《크라이슬레리아나》였습니다. 폭발과 진정을 반복하는 이 곡은 악보에 명확한 메트로놈 수치 대신 ‘Sehr’(매우)와 같은 정성적 지시만 적혀 있어, 연주자가 직접 건반 위에서 심리적 긴장의 미세한 파도를 만들어야 하는 매우 복잡한 곡입니다.
아서 그린의 타건은 청자에게 단일한 이야기를 서술하기보다, 슈만의 복잡한 내면이 고르지 못한 호흡으로 털어놓는 독백을 엿듣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특히 텍스처가 두터운 악구에서도 오른손 선율 아래 숨죽여 있던 왼손의 노래를 놓치지 않고 살려내어 두 목소리의 완전한 대화를 이끌어낸 음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때로는 극도의 긴장으로, 때로는 깊은 페달 울림 속 정적으로 우리 청중들을 이끌며, 어느새 요한 크라이슬러라는 괴팍한 가면 뒤에 숨어 자신을 들여다보는 슈만의 자화상과 마주하는 듯한 짙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빛(Light) : 다윗동맹 무곡집, Op. 6
(개인적인 생각으론) 후반부의 '빛'으로 이어진 《다윗동맹 무곡집》은 단일 광원이라기보다, 프리즘을 통과해 산란하는 빛의 궤적에 가깝습니다. 이 무곡집이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여러 갈래의 빛으로 나뉘는 이유는, 슈만이 '다윗동맹'이라는 상상 속의 예술 단체를 내세워 자신의 복잡한 내면을 여러 인물로 투영했기 때문입니다. 열정적이고 충동적인 '플로레스탄', 사색적이고 몽상적인 '오이제비우스', 그리고 사랑하는 클라라 비크까지. 겉으로는 여러 인물이 대화하고 논쟁하는 듯하지만, 그 본질은 결국 '슈만'이라는 한 사람의 자아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흐트러지는 거울 속 풍경과 같습니다.
초반 2번 곡의 내밀한 주제가 후반부 17번 곡에 이르러 '마치 먼 곳에서(Wie aus der Ferne)' 들려오듯 아스라한 회상으로 다시 등장하는 순환 구조가 바로 그 방증일 것입니다. 아서 그린은 슈만의 분광된 자아들처럼 짧게 교차하는 이 미세한 흔들림과 감정의 조각들을 단단한 호흡으로 엮어냈습니다. 특히 8번 'Frisch'의 생동감에서 출발해 9번을 지나 10번 'Balladenmäßig sehr rasch'로 치달아가는 구간은 몰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침없는 전개와 숨 막히는 강약조절은 흩어지던 빛의 산란이 한순간 폭발하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안기며 듣는 사람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기억(Memory) : 14번 '부드럽고 노래하듯이' (Zart und singend)
어린 시절의 '멜로디'로 시작된 기억의 서사는 14번 곡에 이르러 가장 깊고 고요한 곳으로 가라앉습니다. 이 곡은 흐트러지는 여러 자아들 중에서도, 서정적인 오이제비우스의 목소리가 가장 맑고 온전하게 들려오는 대목입니다.
2년 전 내한 무대에서 앙코르로 선보인 이 곡을 아서 그린이 '기억'이라 명명했듯, 그는 팽팽했던 긴장을 거두고 피아노가 부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조심스레 노래했습니다.
이 14번째 곡에서 그는 첫 번째 도돌이표를 생략했습니다.
피아노가 빚어내는 선율이 너무 아름다웠기에 반복 없이 지나간 찰나가 못내 아쉬웠지만, 어쩌면 그 비워둠은 음악이 멎은 뒤에도 오랫동안 맴돌 다음의 '기억'을 위해 남겨둔 의도적 여백이 아니었을까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모든 연주가 끝난 뒤, 그에게 쉼 없이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에 커튼콜 사진 한 장조차 남기지 못했습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아쉬움마저도 마음속 좋은 여백과 기억으로 삼아보겠습니다.
오늘 프로그램들은 개인적으로 너무나 사랑하는 곡들입니다.
이 엄청난 곡들을 하나의 무대에서 하나의 시간에 감상할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아서 그린의 다음 내한이 벌써부터 고대되는,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을 'Memorable(기억할 만한)' 하루를 만들어주신 아서 그린과 하우스콘서트에게 감사드립니다.
방대한 서사이자 내밀한 사적 고백과도 같은 슈만의 세계가 피아니스트 아서 그린의 타건을 통해 무대 위에 피어났습니다.
연주자 스스로 부여한 묵직한 부제 아래, 체력과 정신력 모두에서 극한의 몰입을 요하는 프로그램의 대장정이었습니다.
거대한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간혹 인간적인 실수들이 스치기도 했으나, 무대를 장악한 그의 아고긱과 장대한 다이내믹 앞에서는 아쉬움이 머물 시간과 공간은 짧고 좁았습니다.
기억의 문을 열며(Memory) : 어린이를 위한 앨범 1번 '멜로디' & 교향적 연습곡 유작 변주곡 5번
본격적인 어둠과 빛의 교차에 앞서, 무대의 첫 공기를 어루만진 것은 그의 순수하고 내밀한 '기억'이었습니다. 아서 그린이 어린 시절 가장 사랑했던 곡 중 하나로 꼽는 《어린이를 위한 앨범》 중 1번 '멜로디'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며, 객석을 단숨에 그의 사적인 시간 속으로 이끌었습니다. 뒤이어 연주된 《교향적 연습곡》 유작 변주곡 5번은 특유의 몽환적이고 깊은 서정으로 몰입감을 끌어올렸고, 이내 몰아칠 《크라이슬레리아나》의 심연을 향해 고요히 걸음을 내딛게 하는 훌륭한 서곡이 되었습니다.
어둠(Darkness) : 크라이슬레리아나, Op. 16
프로그램의 전반부를 장악한 '어둠'은 《크라이슬레리아나》였습니다. 폭발과 진정을 반복하는 이 곡은 악보에 명확한 메트로놈 수치 대신 ‘Sehr’(매우)와 같은 정성적 지시만 적혀 있어, 연주자가 직접 건반 위에서 심리적 긴장의 미세한 파도를 만들어야 하는 매우 복잡한 곡입니다.
아서 그린의 타건은 청자에게 단일한 이야기를 서술하기보다, 슈만의 복잡한 내면이 고르지 못한 호흡으로 털어놓는 독백을 엿듣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특히 텍스처가 두터운 악구에서도 오른손 선율 아래 숨죽여 있던 왼손의 노래를 놓치지 않고 살려내어 두 목소리의 완전한 대화를 이끌어낸 음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때로는 극도의 긴장으로, 때로는 깊은 페달 울림 속 정적으로 우리 청중들을 이끌며, 어느새 요한 크라이슬러라는 괴팍한 가면 뒤에 숨어 자신을 들여다보는 슈만의 자화상과 마주하는 듯한 짙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빛(Light) : 다윗동맹 무곡집, Op. 6
(개인적인 생각으론) 후반부의 '빛'으로 이어진 《다윗동맹 무곡집》은 단일 광원이라기보다, 프리즘을 통과해 산란하는 빛의 궤적에 가깝습니다. 이 무곡집이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여러 갈래의 빛으로 나뉘는 이유는, 슈만이 '다윗동맹'이라는 상상 속의 예술 단체를 내세워 자신의 복잡한 내면을 여러 인물로 투영했기 때문입니다. 열정적이고 충동적인 '플로레스탄', 사색적이고 몽상적인 '오이제비우스', 그리고 사랑하는 클라라 비크까지. 겉으로는 여러 인물이 대화하고 논쟁하는 듯하지만, 그 본질은 결국 '슈만'이라는 한 사람의 자아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흐트러지는 거울 속 풍경과 같습니다.
초반 2번 곡의 내밀한 주제가 후반부 17번 곡에 이르러 '마치 먼 곳에서(Wie aus der Ferne)' 들려오듯 아스라한 회상으로 다시 등장하는 순환 구조가 바로 그 방증일 것입니다. 아서 그린은 슈만의 분광된 자아들처럼 짧게 교차하는 이 미세한 흔들림과 감정의 조각들을 단단한 호흡으로 엮어냈습니다. 특히 8번 'Frisch'의 생동감에서 출발해 9번을 지나 10번 'Balladenmäßig sehr rasch'로 치달아가는 구간은 몰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침없는 전개와 숨 막히는 강약조절은 흩어지던 빛의 산란이 한순간 폭발하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안기며 듣는 사람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기억(Memory) : 14번 '부드럽고 노래하듯이' (Zart und singend)
어린 시절의 '멜로디'로 시작된 기억의 서사는 14번 곡에 이르러 가장 깊고 고요한 곳으로 가라앉습니다. 이 곡은 흐트러지는 여러 자아들 중에서도, 서정적인 오이제비우스의 목소리가 가장 맑고 온전하게 들려오는 대목입니다.
2년 전 내한 무대에서 앙코르로 선보인 이 곡을 아서 그린이 '기억'이라 명명했듯, 그는 팽팽했던 긴장을 거두고 피아노가 부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조심스레 노래했습니다.
이 14번째 곡에서 그는 첫 번째 도돌이표를 생략했습니다.
피아노가 빚어내는 선율이 너무 아름다웠기에 반복 없이 지나간 찰나가 못내 아쉬웠지만, 어쩌면 그 비워둠은 음악이 멎은 뒤에도 오랫동안 맴돌 다음의 '기억'을 위해 남겨둔 의도적 여백이 아니었을까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모든 연주가 끝난 뒤, 그에게 쉼 없이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에 커튼콜 사진 한 장조차 남기지 못했습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아쉬움마저도 마음속 좋은 여백과 기억으로 삼아보겠습니다.
오늘 프로그램들은 개인적으로 너무나 사랑하는 곡들입니다.
이 엄청난 곡들을 하나의 무대에서 하나의 시간에 감상할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아서 그린의 다음 내한이 벌써부터 고대되는,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을 'Memorable(기억할 만한)' 하루를 만들어주신 아서 그린과 하우스콘서트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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