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4회 하우스콘서트 신년음악회] 새해의 시작은, 역시 하콘이지
  • 등록일2026.01.22
  • 작성자장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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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내 손으로 바흐를 택할 날이 올까? 싶었는데,
맙소사, 그런 날이 오고야 말았으니.

당신은 바흐를,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아시는가? 클래식에 관심이 전무해도, 그의 곡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이 작곡가만큼은 상식처럼 알고 배웠다. 물론 비슷한 수준으로 익숙한 인물은 몇 명 더 있을 텐데,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바흐, 하이든, 베토벤, 모차르트 같은 사람들 말이다.

클래식을 듣는다고, 좋아한다고 기꺼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방금 나열한 이름 아래에 놓인 수많은 명곡들을 이미 섭렵했을 것 같지만, 나에게 그들은 여전히 ‘클래식을 알린 몇 명의 위인’들 중 ‘몇 명’으로만 머물러 있다.

작곡가의 명성과 대중적 유명세를 기준 삼기보다는, 지금 만나고 있는 공연들 속에서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연주가들의 ‘pick’을 따라 듣다 보면, 어느새 여러 시대의 음악을 자유분방하게 오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대형 오케스트라든 소규모 실내악이든 여러 형태의 공연을 접해 왔지만, 내가 만났던 연주자들이 바로크 시대, 그러니까 바흐나 하이든을 고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작년 12월 말쯤이 되어서야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샤콘느를 실연으로 처음 마주하게 됐고, 그전까지는 그를 가까이에서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접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작년 9월,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시민관객단 3기로 활동하며 첫 관람으로 배정받은 공연이 바로 ‘바흐의 메아리’라는 제목의 헤이리챔버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였다.

공연명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그냥 메아리도 아니고, ‘바흐’의 메아리라니. 거기다 첫 곡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 G장조, BWV 1048.

귀로만 친해지기 바빴던 나의 나날들 앞에, 기다란 이름과 제목, 알다가도 모를 숫자까지. 클래식은 재밌다고 스스로 되뇌면서도, 이런 명칭 앞에서는 여전히 잠깐 멈칫하게 된다.

그때의 나는 처음 만나는 바흐 협주곡을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했던가. 다행히, 써 둔 글이 있다.

바흐가 아니던가. 연주자들에겐 너무나 중요한 인물이지만, 나에겐 여전히 ‘미지의 인물’이다.

아직 적극적으로 친해지고 싶은 단계는 아닌데, 이상하게도 다들 바흐의 곡은 한 번씩 꼭 하고 지나가니까 결국 피할 수 없는 눈맞춤 같은 존♡까. 그는 클래식이 왜 ‘교양’으로 불리는지를 온몸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사람인 것 같다.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형식으로 음악을 쌓았는지 알아야, 이 방대한 작품들을 조금이라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우리가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미술관에 들어서면 “도대체 이게 뭐길래 다들 유심히 보는 거지?”라는 물음만 머릿속에 동동 뜨지 않는가.

바흐의 곡이 나한테 딱 그렇다.

2026년의 나는 지금도 2025년 9월의 나에게 동의하고 있다. 다만, 그때보다 바흐와 며칠 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알게 된 점이 하나 있다. 그는 결국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필요한 존재라는 것.

여기서 ‘우리’는 연주자와 관객으로 나뉜다. 직접 악기와 오랜 시간 공명해 본 입장은 아니지만, 공연을 다니다 보니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라는 이름이 연주자들에게 여전히 ‘신성’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이상적’ 존재임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작년 12월만 해도 그렇다. 그때의 나는 최인아 책방에서 바흐와 이자이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교차 형식으로 연주한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이런 질문을 건넸다.

바흐가 좋아요, 이자이가 좋아요?

답은 거의 바로 돌아왔다. 바흐였다. 현대 음악 여정을 오래 지켜본 나로서는 당연히 ‘이자이’가 돌아올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ㅂ’으로 시작하는 답에 나도 모르게 “엥? 진짜요?” 하고 되물었다.

그는 매우 당연하다는 듯—마치 평생 이자이는 바흐를 이길 수 없을 것처럼—고개를 끄덕였다. 바흐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만큼 분명한 존재라는 건 그때 처음 체감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연주가에게 중요한 바흐는 그렇다 치고, 관객에게 그는 왜 중요할까. 그는 다른 곡들이 주지 못하는 무언가를 분명히 전한다.

몇 번 그의 곡을 들어보니 ‘명상’이 따로 없다. 사람을 ‘제자리’에 세워 두려는 의도 같기도 했다. 뭘 말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그 모르는 게 정답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바흐를 듣고 있자면 이상하게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관한 생각을 잊게 된다. 망각하려고 애쓰는 것도 아니고, 내려놓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삭제된다.

그 상태로 끌려간다. 눈을 깜빡깜빡이며, 그가 음표로 향하고 있는 길에 나의 하등 쓸모없는 불필요한 불순물들을 내려놓고, 얌전히 두 손 모아 앉아 있게 된다.

기분 좋은 황금빛 권위가 사방을 드리우고 있는데, 거기서 내가 “나 잘 몰라요” 하고 엄살 부릴 틈도 없다. 애초에 기다려 줄 생각도, 이해해 줄 생각도 없이 음악이 알아서 제 갈 길을 가버리니, 시냇물처럼 같이 흘러가느라 바쁘다.

그래서 좋다. 사소한 일들이 나를 귀찮게 해서 은근히 신경 쓰이고 있었는데, 마침 등장한 나의 뒷배가 이토록 화려하고 성대한 연주단이라니.

생각만 해도 이것 참 든든하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바흐라는 인물에 약간의 낯선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의 신성한 멜로디에 오묘함을 느끼면서도, 그가 내게 꽤 유익한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내 지갑을 열 정도는, 내 발걸음을 이끌 정도는 아니었다.

(…) 분명 아니었는데, 이상하다. 내 검지손가락이 여러 가지 명분들을 뒷배 삼아 마우스의 왼쪽 버튼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디, 무슨 변명거리를 쌓아 올렸는지 한 번 볼까.

신년의 시작은 바흐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하콘에서 올해의 첫 막을 열어 봐도 좋잖아. 새해 인사도 하러 가고.

일전에 헤이리챔버오케스트라 공연 좋았잖아. 마침 전곡 연주라네? 그때 첫 곡이었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 G장조, BWV 1048이 듣기 좋았는데, 이번에도 또 한다잖아.

그러니 나는 2026년의 시작을 바로크로, 그것도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으로 하기로 작정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3번 G장조, BWV 1048

예술가의 집 하우스 콘서트에서 맞이한 첫 번째 브란덴부르크 3번은, 유난히 색달라 그 느낌을 음미하느라 바빴다.

마룻바닥 위에서 만나는 바흐의 현악기와 하프시코드(건반 악기)의 조합이라니. 어쩐지 평소의 콘서트와는 결이 달랐다. 일상의 공연 도입부라기보다는, 분위기 자체를 바흐의 음악 위로 띄워놓는 순간에 가까웠달까.

8:11의 고상하면서도 묘한 긴장 어린 느낌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실내악이 악기와의 대화라면, 이곳은 보다 음표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10:02, 하프시코드와 첼로, 바이올린이 음을 쌓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아니면 흘러가고 있다고 느끼는가. 브란덴부르크 3번은 문장을 내려놓을 틈도 없이 앞을 향해 달려간다.

소리와 카라멜빛 악기만이 우리가 ‘음악’을 듣고 있음을 설명해 준다. 하프시코드가 홀로 노래할 때와 12:36, 옅은 바람이 스며드는 그 길 중 무엇이 당신 안에 더 깊이 각인되었는가.

3악장에 이르니 분위기는 더욱 높게 날아오른다. 미소도 몇 군데 나뉠 것이다.

검은색 복장의 연주자들이 소리를 모아 하얗게 나아갈 때, 그 흐름은 여러 갈래로 흩어지지 않고 모두 한 줄기 형태 안에 존재한다. 누구 하나 튀어나오지 않은 채, 그가 허용한 범위 안에서 들여놓을 수 있는 가장 미적인 드라마틱을 절제된 형태로 정직하게 내어놓는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 D장조, BWV 1050

처음 인사하는 브란덴부르크 5번, 그리고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의 조합을 목격하니 정말 내가 ‘하우스 콘서트’에 왔구나 싶었다.

알지도 못하는 이름 모를 귀족 어르신의 전원주택에서 열린 공연에 초대받으면—다만 좌식으로 앉아야 하는—이런 기분이 아닐까, 괜히 상상해 보게 된다.

관객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누군가는 오늘의 곡 악보를 들고 와 연주와 음표를 함께 살피느라 눈이 반짝였고, 누구는 고개를 든 채 소리를 음미하고, 누구는 악기 사이에서 가만히 잠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 모습을 흘끗 지켜보는 다정한 옆모습의 고개도 있다.

각기 다른 표정으로 나와 같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개와 고개 사이로 보이는 클라리넷과 비올라, 그리고 첼로를 눈에 담았다.

무대와 관객석이 가까운 하콘의 장점 덕분에 지휘자의 악보가 이쪽에서도 보였다. 한 곡의 마지막 페이지를 뜻하는 흰 여백이 나타나면, 아, 곧 끝나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어 오히려 감상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특히 26:57, 하프시코드가 홀로 노래하던 순간에 가만히 그 건반 소리 곁에 서 있던 연주자들이 떠오른다. 현악기를 손에 쥔 그들이 조용히 건반 악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다림’이 이상하게 보기 좋았다. 29:57, 기다리고 나면 딱 이런 소리를 내어주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6번 B♭장조, BWV 1051

비올라가 중앙에서, 내가 느끼기엔 첫 곡이었던 3번보다 더 재미와 투지 어린 기색을 보여주니, 그날 들었던 곡 중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정 구간에서 소리가 밀고 당겨지는데,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밀당’ 같은 쫀득한 느낌보다는 무섭지 않게, 다만 집중도 있게 몰려오는 순간들에 자꾸 시선이 쏠린다.

이를테면 49:06, 한순간에 흐름이 밀집되는 모습을 바라보시라. 49:29, 이렇게 담담한 기운으로 흘러가다가도, 49:49, 보다 서정적인 마음을 들여놓는 순간에도 남모를 긴장감이 어려 있다.

언제 또 재미난 지점이 올까 기대하던 순간, 50:53, 바로 나타난다. 악보를 모르고, 악보를 바라볼 수 없으니 서프라이즈로 만나는 나만의 극적 포인트는 늘 즐겁다.

2악장은 보다 차분하게,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느리다. 54:09, 비올라와 하프시코드 이전에 소리의 뒷면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짙은 저음에 귀 기울여 보시라. 거북이의 발걸음 같기도 하고, 감기에 걸려 무거워진 머릿속을 감싸주는 하얀 베갯잇만 같다.

3악장이 시작되는 58:18, 경건한 천진난만함이 이리 머물 수 있는가. 58:40, 두 대의 악기가 나눠 갖는 대화를 목격하시라.

1:00:06, 소리가 또박, 또박, 신년을 맞이한 나보다 앞서 씩씩하게 걸어 나가고 있으니, 뒤처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1:02:41, 두 대의 악기, 또 다른 두 대의 악기, 그리고 재미를 들여놓는 1:03:00. 결국 우리가 공연장에 발을 들이는 이유는 소리가 내 눈앞에서 직조되는 현장을 직관하는 재미, 바로 이런 장면들 덕분이 아니겠는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1번 F장조, BWV 1046

1:14:49, 연주자들로 가득 찬 하우스 콘서트의 한 장면이다. 조금 더 축제의 현장 같아졌다. 특히 신기했던 건, 오보에 연주자들이 서로 합을 맞출 때나 악기의 끝을 높게 들어 올릴 때의 모습이었다.

1:16:27, 저렇게 연주자들이 안정된 소리 안에서 웃음까지 함께 얹어낼 때, 관객의 흥은 더욱 높게 오른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들려오는 대로 들어내면 그만이다.

다만 2악장에서는 잠깐 생각에 잠겨도 좋겠다. 아득한 풍경 하나를 그려낸다. 가만 길을 따르다 1:21:26에서 물러났다 다가오는 현의 소리를 응시하면, 1:22:01, 오보에가 중심을 잡아 줄 것이다.

장난스러운 구름이 관악의 부름으로 다가오는 3악장에 이르면, 확실히 현악기와는 다른 둥근 형태의 소리가 감상의 포인트가 되어 준다.

1:24:08에서 보이는 두 오보에 연주자의 액션을 보시라. 아래에서 위로. 아래에서 위로. 그다음 장면에서 나타나는 1:24:16의 바이올린은 옆으로, 대각선으로, 사방으로 연주를 응해 낸다.

1:27:06 긴장을 풀어낼 수 있는, 음악 안에서 가장 편해질 수 있는 구간이 아닐까. 움츠러든 어깨를 내려놓고, 어색한 발동작으로라도 앞으로, 또 뒤로 물러나고 나아가 보는 그런 즐거움을 스스로에게 선사할 수 있다.

1:29:10, 작은 둥글둥글한 소리 동그라미가 하나씩 툭, 툭, 내려놓아진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어떨까. 처음의 바람과 닮은, 다만 조금 더 부드러운 기색을 닮은 분위기가 되돌아온다. 그리워하는 장면이 늘 멀지 않은 곳에서, 몇 번의 바람으로 다시 돌아온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2번 F장조, BWV 1047

가장 밝은 횃불이 켜진 것만 같은 활기찬 모습으로 시작한다. 거기다 처음 보는, 특이한 모양새의 트럼펫과 짙은 갈색의 리코더라니.

리코더의 소리를 무대 위에서 만난 건 실로 처음이었는데, 뭔가—1:41:20, 소리는 크지 않지만 음색이 확실히 튀었다. 오묘하게 기세를 보이는 소리와 높은 곳을 찔러내는 트럼펫이 섞여 드니, 그 자체로 하나의 조합이 된다. 오보에와 리코더, 바이올린, 하프시코드가 나누는 대화도 한눈에 담긴다.

3악장은 어떨까. 분주하게 나아가는 것들이 한가득이지만, 조급하지는 않다. 그냥 역할이 많아 각자의 갈 길이 바쁠 뿐이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4번 G장조, BWV 1049

리코더 두 대의 등장이라니. 2번보다 조금 더 중앙에서 노래하니, 가까이서 인사할 수 있어 반갑다. 1:55:53에서 물러나는 바이올린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시라.

1:57:49는 또 어떠한가. 바이올리니스트만이 전해 줄 수 있는 투쟁적인 면모를 맛볼 수 있다. 리코더가 노래하면 이런 평온함을 만날 수 있구나.

2:01:50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비애가 나타나 놀랐다. 지금껏 만났던 것 중에서도, 가장 구덩이 안쪽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2악장이었으니. 그렇다고 우는 얼굴도, 좌절하는 모양새를 닮아 있지는 않다. 가라앉은 채로 마주해야 할 것들이 있으니, 그냥 그 자리, 그 속으로 공간 이동을 한 것뿐일 것이다.

2:05:54, 거의 두 시간에 가까운 여정을 정리하기 시작하는 3악장이다. 리코더는 분주한 길을 걸어도 소리 자체의 다정함 덕분에, 안정되지 못한 것들을 보듬어 줄 여력이 충분해 보인다.

2:07:22, 치밀하게 나아가는 바이올린을 지켜보자. 2:09:24, 소리와 함께 재미난 롤러코스터를 타며 흥미롭게 이별을 맞이하는구나. 6번이 아니라 4번이기에 만날 수 있는, 즐거운 안녕이다.



저녁 8시에 시작해 밤 10시가 훨씬 넘어서야 이 전곡 연주가 끝이 났다. 더군다나 우리의 하콘은 와인 파티 시간까지 내어 주시니.

집 근처에 도착할 즈음엔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처음 공연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때도 이미 하늘은 어둑했고, 그때부터 밤은 깊어지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 하콘을 누구보다 애정하시는 대표님께 쫄랑쫄랑 다가가 오늘 무대에 관한 후기를 여쭈었는데, “산뜻했다”고 기꺼이 감상을 나눠 주셨다. 공연의 여정을 다시 걸어온 이 시점에서,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겠다. (끄덕끄덕)

참, 어쩔 수 없는 클래식 사랑단이 아니겠는가. 평일, 그것도 월요일 밤 늦게까지 무려 바흐의 협주곡 전곡 연주를 듣고도 “산뜻하다”는 감상을 남기는 우리라니.

클래식 공연을 보기 위해 해가 넘어간 시간에 나섰다가, 다음 날이 되기 직전에 돌아오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면 이런 뻔한 문장이 떠오른다.

정말로, 나 클래식을 좋아하나 봐!

작년의 나는 바흐와 마냥 거리감을 두며, 조금은 느긋하게 친해져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올해는 어떤가. 신년을 그로 맞이했으니 이제는 조금 더 속도를 붙여도 되지 않겠는가.

여전히 Presto(매우 빠르게)는 어렵고, adagio(매우 느리게)도 너무 느리니, 이번엔 andante(걷는 속도)쯤이 딱 좋겠다.

저 나름, 걷는 속도 빠른 편입니다만?
호다닥!




댓글

1개의 의견이 등록되었습니다.
하콘 2026-02-02 17:11:41
하콘의 2026년 산뜻한 출발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흐와 더 가까워지는 계기 되셨길 바라고... 앞으로도 andante로 천천히 스며 들어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