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불꽃과 허무의 미학 — 오연택의 겨울밤
- 등록일2025.12.16
- 작성자문수복
- 조회10

어느덧 12월, 대학로의 가로수들은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고 '절대 고독'의 형상으로 서 있었다. 나는 이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도망치듯 예술가의 집 마룻바닥 위에 앉았다. 저녁 8시, 공기는 차갑게 식어 있었으나 건반 앞에 앉은 피아니스트 오연택의 옆모습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지적 열기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안토니오 솔레르의 소나타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차가운 대리석 위에 떨어진 은화처럼 맑고 고결했다. 18세기 스페인의 햇살을 머금은 듯한 투명한 타건은 내 안의 번잡함을 씻어냈고, 나는 그 명징한 소리들 사이에서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치열한 자기 부정의 산물인가를 생각했다.
이어진 슈베르트의 소나타 7번(D.568)은 긴 유랑의 기록이었다. 2악장 'Andante molto'의 그 느릿한 흐름 속에서 나는 보았다. 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건반 위에 쏟아붓는 처절하고도 순수한 투쟁을. 이어지는 라헨만의 변주곡은 슈베르트의 주제를 현대적 해체주의로 끌고 가며, '슈베르트의 고독'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내 안의 고정관념을 서늘하게 타격했다. 그것은 지적인 충격이자 고통스러운 각성이었다.
공연의 후반부, 라흐마니노프의 시간은 그야말로 감정의 연소(燃燒)였다. 회화적 연습곡(Op.33, No.7)의 강렬함에 이어, 소나타 2번의 그 장엄한 폭풍우는 내 영혼을 사로잡았다. 특히 마지막 3악장의 'Allegro molto'에서 오연택이 보여준 폭발적인 타건은, 마치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내뿜는 불꽃처럼 강렬했다. 그것은 파리 15구의 어두운 주택가 골목에서 느꼈던 지독한 향수와 고독을 단숨에 녹여버리는 뜨거운 외침이었다.
마지막 여운이 가시기도 전, 시작된 앙코르, 필립 글래스의 에튀드 2번은 이 모든 뜨거움을 정화하는 마침표였다. 무한히 반복되는 미니멀리즘의 선율은 집요하게 내 의식을 잠식했고, 나는 비로소 완전한 평온을 맞이했다. 그것은 생의 소란스러움을 모두 털어버린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투명한 허무였다.
연주가 끝나고 정적이 돌아왔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오늘 밤 내가 만난 것은 한 명의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자신의 생을 건반 위에 남김없이 연소시킨 하나의 '불꽃'이었음을.
"그리고 아무 갈망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 고결한 소리들만이 내 안에서 영원히 메아리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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