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하콘 400회 관람후기.
  • 등록일2014.06.07
  • 작성자이정원
  • 조회1279

 
    공연문화와 클래식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제가 박창수씨가 쓰신 ‘하우스 콘서트, 그 문을 열면…’이라는 책을 읽은 것은 아마 2010년도였을 겁니다. 그 때 저는 처음 하콘을 알게 되었고, 실제로 하우스콘서트를 정기적으로 연다는 아이디어와, 어렵지만 매주 꾸준히 연주회를 열고 계신 그 열정에 반했습니다. 그 후로 하콘을 마음속으로만 좋아하고 있다가, 한 번(피아노 윤아인), 두 번(콘트라베이스 성민제, 성미경) 오게 됐고 세 번째로 운 좋게 이번 400회 콘서트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다소 독특하다고 느끼는 박창수씨의 진행은 오늘 유난히 감명 깊고도 즐거웠습니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와 독일에 두 번 공연이 있었을 때 그 사이에도 하콘을 진행하러 꼭 오셨다고 조용히 말씀하시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멈추시고, "그런데 제 말 무슨 말인지 아시냐"고 물으셨을 때는 모두가 ‘빵터졌’었지요. 오늘은 연주자가 많아 자리 문제를 걱정했는데 역시나 딱 맞는 인원이 와주셔서 좋다고 했을 땐 저도 매번 느꼈던 것 같아 신기했고, “하콘 하길 정말 잘했죠?” 하고 마지막으로 질문하셨을 때 모두가 웃으면서 “네!”라고 대답했을 땐 정말 감동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전에 하콘에 왔을 때는 연주자가 한 명 또는 두 명이었기 때문에 그 분들에만 오롯이 집중했는데, 이번에는 연주자 분들이 꽤 많으셔서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악기, 저 악기가 각기 다르게 연주되는 모습, 서로 눈을 맞추고 호흡을 맞추시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게 정말 흥미로웠고, 가뜩이나 친숙함이 떨어지는데 멀리서만 볼 수 밖에 없었던 그룹구성의 클래식 연주를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어서 정말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첫 곡도 정말 좋았지만 두 번째 곡은 더 많은 연주자 분들이 참여하여 새롭고(저는 콘트라베이스 공연을 보러 하콘에 왔었지만, 그렇게 두꺼운 줄을 자세히 본 것도 그렇고 그 줄을 퉁퉁 파워풀하게 퉁기는 모습을 본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다채로운 연주를 보여주셨는데, 친숙한 곡이라 좋았고 이 때와 앵콜곡 때 연주자 분들 고유의 색깔을 좀 더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웃으면서 즐겁게 연주를 하시는데 저도 너무 신이 나서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었고, ‘뻔하다’고 생각했던 "사계"의 한 부분을 연주하실 때는 그 긴장감과 열정으로 한 박자, 한 박자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을 정도로 온몸으로 음악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특히, ‘부에노스아이레스 사계’라는 곡을 이번 연주자 분들을 통해서 통해 알게 된 것은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관객으로서 나름대로, 언젠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여행하러 가는 길에 이 곡을 들으면 너무너무 기분이 좋을 것 같다는 상상을 했고, 열정적인 사랑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려보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변에서 조용히 앉아 가끔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며 연주를 듣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고, 다른 관객들의 표정변화를 보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하콘 공연 실황 녹음 CD 100장 세트와 5장을 각각 한 명씩에게 추첨을 통해 선물해주셨습니다. 제가 당첨이 되지 않아 좀 아쉬웠지만 진행이 정말 재미있었고, 100장 세트가 너무 멋져서 당첨되신 다른 분이 받으실 때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또 이번 공연을 통해 알게 된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 분과 SNU 비르투오지의 매력을 느끼게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하콘의 CD에 대해 더욱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끝나고 와인과 다과를 함께하며, 저와 같이 온 친구도 오늘이 최고였다고 정말 좋아했습니다. 이 친구와는 하콘에 학생 때 처음 같이 와서 이번에 세 번째 함께 오게 됐습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막내 교사로 바쁘게 일하고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이번 주 금요일에 하콘 보러 갈래? 400회라는데’ 라는 짧은 문자에 금방 ‘당연히 가야지! 하우스콘서트 얼마나 좋은데!’라고 답을 보내온 또 다른 하콘 팬이기도 합니다. 하콘에서 평소보다 더 신경 써서 준비하셨다는 다과를 즐기며, 오랜 시간 함께해준 고마운 친구와 정말 좋은 장소에 있다는 생각에 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또 하나의 서프라이즈가 있었습니다. 다과 중간에 클래식 기타를 치시는 연주자 한 분이 통기타 연주를 하신 것입니다. 그 분의 매우 겸손하고 센스 있는 시작으로 분위기가 다시 집중되었고, 처음 선을 퉁기는 소리부터 마음이 녹아 내렸습니다. 어쩜 그렇게 아름답게 연주를 하시는지! 또한 기타연주로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곡이라는 로망스까지 듣고 나서, 놀랍게도 이경선 바이올리니스트께서 예전에 배운 기억이 있다면서 정말 해맑은(이런 단어를 써도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존경합니다!!) 표정으로 손을 드시는데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공연 내내 그 분을 멀리서 보며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계속 간직하시는 멋진 분이라는 박창수씨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 때도 그 순간들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는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주가 멋졌던 것은 물론입니다.) 기타리스트 분께서 마지막으로 연주하셨던 곡도 어딘가 익숙하면서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이렇게 이번 하콘 공연도, 바쁘게 지내면서 잊고 있었던 음악의 힘을 느끼게 하고 저의 음악에 대한 사랑에 불을 지핀 정말 멋진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과 시간에 친구가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면서 저에게 ‘꿀팁’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건 바로 마음에 드는 남자를 데리고 하콘에 오는 것입니다. 잘 안 풀리는 연애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던 저에게 조언 식으로 한 이야기였는데, 여기 오면 분위기도 좋고 기분도 좋고 정말 좋은 음악도 있어서 술술 대화도 풀리고 ‘백퍼 성공’할 거라는 겁니다. 듣고 나서 막 웃었지만 정말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하콘을 좋아하는 만큼 자주 찾지 못했고, 매번 같은 친구와 왔었습니다. 그것도 정말 좋았지만 하콘이 처음 만들어진 의미와 상통하게,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다 가는 관객이 아니라, 좋아하는 만큼 조금 더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관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하콘을 소개하고, 저도 좋아하는 사람이랑 좋은 시간을 보내고… 생각만 해도 설렙니다. 다음에는 ‘그 사람’이랑 오게 될까요?





하콘 400회를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항상 한결같은 모습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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