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회] 비와 함께한 일요일 저녁 따뜻하고 포근했던 김태형님의 연주
  • 등록일2014.05.27
  • 작성자제다정
  • 조회1220
조금 늦었지만 관람하고 난 느낌을 나누고 싶어 글을 시작합니다.


처음으로 참석한 하우스 콘서트였습니다. 이전 일정을 마치고 시간을 못 맞출것만 같아 기숙사에서 율하우스까지 택시를 타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달렸더랍니다. 비가 조금씩 내려서 하늘은 약간 어둡고 살짝은 시원한 공기에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제가 59분에 도착해서 거의 마지막 정시 입장이었어요. 선택권 없이 바로 문앞에 앉았는데 위치가 피아노 정면에서 그다지 떨어져있지 않아서 우려와는 달리 음량이 엄청 좋았습니다. 확실히 가까이에서 좌식으로 앉아 마이크를 거치지 않은 피아노의 울림을 소리와 진동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게 그 어느 연주회장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더라구요. 한 음 한 음 음 사이 공간까지도 모두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박창수 님의 소박하면서도 소소하게 위트있는 소개가 있고 드디어 태형 님이 등장했습니다. 음악을 줄곧 생각하다 들어오신듯 매 곡 할때마다 거의 바로 시작하시더군요. 태형 님 공연 보는 거 이번이 다섯번짼가 그랬지만 이번 공연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유롭게 음악을 음미하고 표현하시는거 같더라구요. 귀가 쫑긋 서서 소리를 따라가느라 얼굴을 항상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곡조에 따라 표정과 움직임까지 풍부하신 게 정말 음악의 느낌이 더 다가왔습니다. (...귀여웠어요...!)

구구절절히 곡들에 대한 소감을 늘어놓고 싶습니다만 밤은 깊었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폐가 되고 싶지 않으니 전체적인 느낌 중심으로 얘기를 해야겠네요. 제가 김태형 님의 피아노를 (비록 아마추어지만 많은 실황 공연을 다녀본 사람으로서 하는 말로) 가장 좋아한다고 한 치의 의심없이 말하는 이유는 그의 음악이 말하는 그라는 사람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의 피아노에는 아직 대가라는 이름이 붙기 전 청년기를 지나는 젊은 피아니스트가 보여줄 수 있는 울렁거리는 열정이 있습니다. 원숙하지 않아도 사람이 함께 덩달아 흥이 오르게 만드는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어요. 그러면서 굉장히 진지하고 눈을 똑바로 뜨고 있고 겸손합니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라고 많은 분들이 얘기하시는 그것, 진중하면서도 열과 성을 다 하는 겸손함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편안하고 어떤 전환부에서도 거슬림이 없습니다. 스타일에서도 정말 매력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곰이 앞발을 내려놓듯 강렬하고 시원하게 표현하고 그러다가도 반짝이는 유려한 패시지에서는 피아노 건반이밑바닥 없이 구슬로만 이루어졌다는 듯 한없이 영롱한 음색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때묻지 않은 순수라기보다는 오랜 시간 모래와 바람 속에서 숙고하고 또 감내한 뒤 마침내 찾아오는 인생에 대한 포용에서 오는 그래서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순수입니다.

이번 공연의 레파토리에서 그의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났습니다. 슈베르트 아다지오는 그의 아름다운 음색과 그 부드러우면서도 풍부한 해석이 느껴지는 좋은 서막이었습니다. 슈베르트klavierstucke에서는 (제가 율리아나 실황으로 듣고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남자 피아니스트가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맘껏 뽐내면서도 슈베르트 특유의 반복을 점점 성숙해지는 해석으로 끌고가는 것 셈여림의 소위 밀당을 찰지게 가져가는 것 그래서 삶에서 찾아오는 축복의 순간을 충분히 appreciate 하면서도 아픔을 달관으로 감내하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충실히 표현해내는 것이 돋보였습니다. 쇼팽 폴로네에즈는 자칫 느끼해지기 쉬운 쇼팽을 담백하게 살려내셨던 정말 잘 어울리는 폴로네에즈였습니다. 마지막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은... 정말 슈베르트 3개의 소품과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잘 어울리고 곡도 너무 좋았던 개인적으로 너무나 감사하게 들었던 곡이었습니다. 드뷔시마냥 솜털이 쭈삣 서도록 애간장을 녹이는 아름다움에 특유의 기묘한 화성이 신비로움을 더하는 라벨의 곡 자체도 좋았고 그 음악을 특유의 음색으로 미려하게 표현해내는 김태형 님은 감동이었습니다.

광택이 조금 덜한 목재의 재질이 느껴지는 피아노, 벽면의 곡선과 천장의 직선들이 만들어내는 편안한 공간, 포근한 조명 아래 바깥의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들의 느낌과 함께 간만에 심장이 울리는 따뜻함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음악을 사랑해서 그 저녁 한 자리에 모여 아빠다리 또는 쭉 뻗은 다리를 하고 앉아 가만히 음악에 귀기울이는 사람들, 그 공간을 마련해주신 박창수 선생님과 모든 스탭 분들, 다 같이 함께 해서 혼자 갔어도 어색하지 않은 느낌이었네요. 좋은 공연 마련해주신 박창수 선생님과 스탭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멋진 연주를 선물해주신 김태형 님은 말할 것도 없구요.

행복했습니다. 시간 날때마다 찾아다닐 것만 같은 기분이 드네요.

p.s. 와인 파티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
p.s. 시끄러운 피아노곡 치면 혼나냐는 제 우문에 따듯하게 현답을 주셨던 카메라 스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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