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때 그 선율들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 등록일2014.04.06
  • 작성자김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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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살롱음악회에 있었던 이들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새로운 시도라는 것이 언제나 성공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는 아니지만

이정도면 "성공"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때로는 의문스러움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럼에도 즐거움이 넘쳐났다. 그럼 됐다.





첫 번째 곡은

피아노로 연주 된 5개의 짧은 소품들,  

메인 테마격인 첫 번째 ‘로망스’는 분홍색이 생각나는 곡이었다.



어쩌면 작곡가가 작품을 작곡했던 당시의 사연을 듣고 곡을 감상했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단지 얼마전 벚꽃을 봤기때문일까? 로망스는 분홍색의 벚꽃이 흩날리는 기분이었다.



이어진 "간주곡"은 라벨의 느낌이 났고,

세 번째 "노을"은 네이밍 그대로 해질 무렵 지하철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모습이 떠올랐다.

넘실거리는 물결에 빛나는 황금색의 그것.



"회전목마"는 쉽고 편안했다. 빙그르르 돌아가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회전목마처럼

곡이 진행되면서도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은 "파사칼리아", 회전목마의 연장선 같았다.

마치 꼬리잡기를 하는 기분이랄까.





이어진 추분의 소묘2 – 가을의 끝자락에서는 플롯의 독주곡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난해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그는 무엇을 본 것일까?



곡의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영화의 OST가 생각났다. 이를테면 ‘히치콕’의 작품 속의 음악 말이다.

곡의 중반으로 넘어가서는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을 들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감성도 느껴졌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초등학교 5학년때 작곡했다는 4개의 소품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전주곡 1번은 왠지 모르게 슈만도 생각나고 쇼팽도 떠올랐다.



지독하게 슬프다고 하기엔 ‘다행스럽게도’ 약간 부족하고,

지독하게 아름답고 하기에도 약간 부족했다.

곡 자체가 부족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이 과다하게 표출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사실 굉장히 섬세하고 균형이 잡혀있는 곡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구태의연한 표현이지만, ‘형식미’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좋았다.



이어진 전주곡 2번. 모르겠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듣는 내내 드뷔시와 거쉰이 떠올랐다.

잔잔한 호숫가에 돌을 던져 커다랗게 퍼져나가는 동그란 원을 보는 기분이었다.

조금씩 감동이 몰려왔다. 서정적이고 담백했다. 동시에 단단했고.



곡이 끝나가는 과정에 있어 다양한 변화가 느껴져서 흥미로웠다.





프로그램이 약간 변경됐지만, 바로 이어진 곡은 ‘피아노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무한한 후광’



무한한 후광 그 자체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 후광을 찬양하는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무한한 후광이 나오기 전까지의 고난과 고통 혹은 가치 있고 유의미한 여정을 담아낸 것인지 모르겠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나로서 이 곡은 난해했다. 아름답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깨어진 불협화음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름다움의 정의가 귀가 편안한 것과

동의어는 아니지만 듣는 동안 혼란 속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슈바빙의 스케르초는 기발하고 참신한 동시에 즐거웠다. 환상적이고 기묘한 느낌이었다.

클라리넷과 피아노가 대단히 상보적이었다. 클라리넷은 왼팔, 피아노는 오른팔 같았다.



얼마 전 본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서로 쫓고 쫓기는. 클라리넷이 큰 길을 만들고 앞장서 나가면 피아노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따라가는 느낌이었다.





즉흥 연주를 제외한 마지막 작품은 전주와 디도의 비가.

짧지만 짙은 애수가 느껴진 작품이었다.

연주가 더 길었다면, 오히려 슬픔이 반감되지 않았을까?





마지막 즉흥곡은 마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는 느낌이었는데 경쾌하고 가벼웠다.

즉흥연주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정해진 구조 안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기분이었다.

페달 사용을 절제하며 여러 유명 작품들의 코드와 선율을 모티브삼아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멜로디들은 귀를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391회 하우스 콘서트는 선선하고 신선한 새벽공기같은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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