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흥의 순간
- 등록일2013.07.15
- 작성자candy
- 조회1809
원 데이 페스티벌이 열린 7월 12일,
율하우스는 여느 때와 다름 없었다. 무척 많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는 것만이 조금 특별했다.
빗소리와 함께 듣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트리오와 피아졸라의 사계는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습한 공기 때문에 한층 무거워진 악기 소리가 나를 기억의 밑바닥으로 끌어당기는 기분이었다.
홀 바깥에서 리셉션을 준비하며 하콘과 함께 해온 날들을 곱씹었다.
10여년 전 처음 하콘을 만났다. 하콘 대장 박창수 선생님의 공연이었다.
나는 그때 음악이 나를 어루만지고, 내 손으로 음악의 손을 붙잡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아름답게 치장된 커다란 홀들은 매력을 잃었다.
그 이후로 나는 하콘의 공연들을 보면서 종종 커다란 스타인웨이 아래 누워 연주를 듣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몇년 전 본공연이 끝나고 수많은 스탭들과 관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작곡가 손일훈이 연주를 했고, 밀도 높은 피아노의 진동 속에 완전히 붙들리는 경험을 했다.
언젠가 갈라 콘서트가 끝나고 스태프들이 마룻바닥에 야식을 펼쳐놓고 허기진 배를 채우는 동안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베토벤 소나타와 바흐의 골든 베르크를 연주한 적이 있다.
우리는 너무 배를 주렸던 나머지 연주가 끝나고 박수 대신 소주잔을 그에게 헌사했지만, 사실 그 연주는 평생 들었던 연주 중에 손에 꼽을만큼 아름다웠다. 약간의 취기를 포함하여.
분리된 공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하콘에서는 언제나 연주자들이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훌륭한 연주자들은 악기를 조율할 때부터 남다른 소리를 낸다. 특히나 현악기들이 자신의 온몸을 비틀며 내는 소리는 압권이다.
그런 연주자들을 만나면 악기가 의미있는 선율을 만들기 전부터 마음이 평온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
내 음악에 대한 사랑은 그런 식으로 자라왔다. 은밀한 곁눈질 같은 것.
2013년 7월 12일 오후 7시 30분,
분명, 어디에선가 누군가, 처음으로, 그런 사랑의 감정을 깨달았을 것이다.
하콘에서는 그 누구도 음악을 가르치지 않는다.
음악을 듣는 법을 가르치지도 않고, 그 음악에 대한 무의미한 존경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관객들의 마음에 음악의 씨앗을 심는다.
관객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 씨앗이 관객들을 무대의 일부로, 음악의 일부로 묶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콘에 있어서 악흥의 순간이란 연주되는 음악을 넘어서 하콘이 벌어지고 있는 그 순간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작년 이맘 때도 큰 비가 내렸다.
일주일 간의 전국 공연을 마치고 부산으로 달리는 차창의 와이퍼는 무용지물이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겪은 고생들은 죄다 잊히고, 오로지 그 비를 뚫고 스태프들과 하코너들이 모여 있는 부산의 숙소에 무사히 닿는 것만이 최후의 고비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빗소리에 질세라 더 큰 목소리로 전국 방방곡곡에서의 공연 무용담(?)을 늘어놓았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비로소 화창한 하늘을 보게 되었다.
빗물이 떨어지는 관객들의 우산을 받아들면서, 전국에 흩어져있는 스태프들의 젖은 발이 걱정되었다.
물론 내 걱정과는 달리 남부는 엄청난 폭염으로 또다른 고초를 겪어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려운 길만 골라서 가는 하콘 아니랄까봐, 하콘은 자신의 기념일조차 궂은 날씨 속에 묶어두고 있다.
이미 고정된 하콘의 기념일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쩌면 내년 7월 12일이나 내후년 같은 날에도 하콘은 폭우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하콘이 관객들의 마음에 심은 씨앗이 언젠가 울창하게 자라 푸르고 무성한 잎으로 그 비를 가려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겠지만, 하콘이 그날까지 지치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믿어의심치 않는다.
앵콜곡으로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언이 울려퍼졌다.
망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함께 기억하기를 염원한다면.
하콘은 그렇게 더 많은 연주자, 관객과 함께 소중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콘 곁에서 그 기억의 일부를 함께 지켜나갈 수 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커다란 행운이다.
율하우스는 여느 때와 다름 없었다. 무척 많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는 것만이 조금 특별했다.
빗소리와 함께 듣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트리오와 피아졸라의 사계는 사람을 감상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습한 공기 때문에 한층 무거워진 악기 소리가 나를 기억의 밑바닥으로 끌어당기는 기분이었다.
홀 바깥에서 리셉션을 준비하며 하콘과 함께 해온 날들을 곱씹었다.
10여년 전 처음 하콘을 만났다. 하콘 대장 박창수 선생님의 공연이었다.
나는 그때 음악이 나를 어루만지고, 내 손으로 음악의 손을 붙잡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아름답게 치장된 커다란 홀들은 매력을 잃었다.
그 이후로 나는 하콘의 공연들을 보면서 종종 커다란 스타인웨이 아래 누워 연주를 듣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몇년 전 본공연이 끝나고 수많은 스탭들과 관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작곡가 손일훈이 연주를 했고, 밀도 높은 피아노의 진동 속에 완전히 붙들리는 경험을 했다.
언젠가 갈라 콘서트가 끝나고 스태프들이 마룻바닥에 야식을 펼쳐놓고 허기진 배를 채우는 동안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베토벤 소나타와 바흐의 골든 베르크를 연주한 적이 있다.
우리는 너무 배를 주렸던 나머지 연주가 끝나고 박수 대신 소주잔을 그에게 헌사했지만, 사실 그 연주는 평생 들었던 연주 중에 손에 꼽을만큼 아름다웠다. 약간의 취기를 포함하여.
분리된 공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하콘에서는 언제나 연주자들이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훌륭한 연주자들은 악기를 조율할 때부터 남다른 소리를 낸다. 특히나 현악기들이 자신의 온몸을 비틀며 내는 소리는 압권이다.
그런 연주자들을 만나면 악기가 의미있는 선율을 만들기 전부터 마음이 평온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
내 음악에 대한 사랑은 그런 식으로 자라왔다. 은밀한 곁눈질 같은 것.
2013년 7월 12일 오후 7시 30분,
분명, 어디에선가 누군가, 처음으로, 그런 사랑의 감정을 깨달았을 것이다.
하콘에서는 그 누구도 음악을 가르치지 않는다.
음악을 듣는 법을 가르치지도 않고, 그 음악에 대한 무의미한 존경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관객들의 마음에 음악의 씨앗을 심는다.
관객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 씨앗이 관객들을 무대의 일부로, 음악의 일부로 묶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콘에 있어서 악흥의 순간이란 연주되는 음악을 넘어서 하콘이 벌어지고 있는 그 순간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작년 이맘 때도 큰 비가 내렸다.
일주일 간의 전국 공연을 마치고 부산으로 달리는 차창의 와이퍼는 무용지물이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겪은 고생들은 죄다 잊히고, 오로지 그 비를 뚫고 스태프들과 하코너들이 모여 있는 부산의 숙소에 무사히 닿는 것만이 최후의 고비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빗소리에 질세라 더 큰 목소리로 전국 방방곡곡에서의 공연 무용담(?)을 늘어놓았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비로소 화창한 하늘을 보게 되었다.
빗물이 떨어지는 관객들의 우산을 받아들면서, 전국에 흩어져있는 스태프들의 젖은 발이 걱정되었다.
물론 내 걱정과는 달리 남부는 엄청난 폭염으로 또다른 고초를 겪어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려운 길만 골라서 가는 하콘 아니랄까봐, 하콘은 자신의 기념일조차 궂은 날씨 속에 묶어두고 있다.
이미 고정된 하콘의 기념일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쩌면 내년 7월 12일이나 내후년 같은 날에도 하콘은 폭우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하콘이 관객들의 마음에 심은 씨앗이 언젠가 울창하게 자라 푸르고 무성한 잎으로 그 비를 가려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겠지만, 하콘이 그날까지 지치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믿어의심치 않는다.
앵콜곡으로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언이 울려퍼졌다.
망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함께 기억하기를 염원한다면.
하콘은 그렇게 더 많은 연주자, 관객과 함께 소중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콘 곁에서 그 기억의 일부를 함께 지켜나갈 수 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커다란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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