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태형 in 하남문화예술회관
  • 등록일2013.04.08
  • 작성자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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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하콘의 공연장습격작전 때도 경험이 있었지만 율하우스가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의 하콘은
묘한 기분을 주었습니다. 하남문화예술회관에서 있었던 피아니스트 김태형은
항상 다양한 프로그램을 들려주어 이번에는 또 어떤 연주를 들려줄까 기대하게 하는 피아니스트인데
재작년 독주회에서 리스트의 곡으로만 이루어진 프로그램을 매우 인상깊게 들었던터라
이번 연주회에서 들려주는 리스트 초절 기교 연습곡 더욱 기대되었습니다.

공연장 무대에는 이미 많은 관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입구를 지나 객석 통로를 걸어내려와 무대에 올라가는 계단을 올라서
걸을 때마다 자박자박 소리가 나는 나무 무대 위에서 걸음을 옮기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피아노가 중앙에 놓인 무대를 향해 걸어나오는 연주자의
시각을 경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은 붉은 객석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지만
저 좌석에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 앉아서 수천개의 시선이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쭈삣쭈삣 설 정도입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박창수 선생님의 소개말씀이 있으신 후에
피아니스트 김태형님이 등장하였습니다. 피아노 앞에 자리를 잡고
체조선수가 발구름판을 딛고 하늘 높이 뛰어오르기 전에
가볍게 발구르기를 하듯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내어 시작한 바흐 연주는
정갈하고 담백하면서 밝은 봄바람같은 음악이었습니다.
바흐와 스카를라티 모두 찰랑찰랑한 터치감이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작고 아늑한 살롱에 옹기종기 모인 친밀한 관객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봄꽃의 꿀을 따먹기 위해 작은 날개를 재빠르게 파닥이는 벌새의 날개짓처럼
빠르고 정교하지만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트릴이 곡 전체에
잘 어울리게 하는 봄햇살같이 화사하게 빛나 마음이 따끈따끈해졌습니다.
이런 섬세한 소리까지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연주자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작고 소박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호사스런 무대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은 처음 알게되었을 때, 제목한번 정말 절묘하게
지었구나했습니다. 작곡가의 엄청난 자의식이 있어야하지 않을까합니다.
전주곡부터 거대한 피아니스트의 등장을 예고하듯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피아니스트의 오른손과 왼손이 각각 무대를 만들고 위태로운 춤을 추는 듯하기도 하고
힘껏 내달릴 때 느낄 수 있는 긴장감과 바람을 가르며 머릿칼이 흩날릴 때 느껴지는 쾌감 등이 느껴질만큼 아주 짜릿하고 때로는 연극적인 음악이 피아니스트의 열개의 손가락에서 펼쳐졌습니다.
향수 어린 서정적인 곡에서는 아름다운 줄기멜로디를 따라 반짝이는 수많은 섬세한 음표가
서로서로 빛을 발하기도 하고, 음악은 백조가 되어 아름답게 날아오르기도 했습니다.
무대 가장 뒷편에 앉아있다가 곡 후반부에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세워서
피아노와 둥글게 모여있는 관객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는데
그때의 감흥이 오늘 하우스콘서트의 가장 인상적인 단상이었습니다.
붉은 객석을 배경으로 검은 피아노와 연미복을 입은 피아니스트는 무대의 조명을 받아
밝게 빛나고 피아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과 표정은 모두 한 곳으로 빨려들듯
쏟아지고 있는 그 느낌이 잠시 숨을 멈추게 할 정도였습니다.
어린이 관객들이 부모님 품에 안겨서 듣는 모습은 제가 하콘에서 가장 좋아하는 풍경인데,
이렇게 사적인 모습으로 최고의 연주와 순간을 함께하는 가족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피아니스트 김태형님이 연주회에서 앵콜곡으로 즐겨 연주하는 슈만-리스트의 "헌정"을
다시한번 들을 수 있어 매우 기뻤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음악보다 로맨틱하고 가슴을 뛰게
하는 곡이지만 김태형님이 연주하는 헌정은 들으면 들을수록 맛이나는 미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다정하고 정중하지만 그 이면에는 뜨거운 열정으로 흘러 넘칠듯 말듯한
낭만의 정수를 담아 들려주는 연주입니다.

연주가 모두 끝나고 연주자의 사인회 시간에 줄지어 선 사람들 옆에서 구경을 하는데,
연주자에게 사인을 받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 어린이가 엄마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에
또다시 즐거워졌습니다. 아이의 엄마가 그렇게 좋으냐고 웃으면서 물었을 때
꼬마 아가씨의 팔을 크게 벌려 크게 원을 그리며 "정~말 좋았다"며  
또랑또랑한 목소리의 대답이 오늘의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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