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회, 가깝고도 먼, 멀고도 가까운 봄을
  • 등록일2013.03.10
  • 작성자candy
  • 조회2222
봄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는 늘 느리게 되돌아오고, 한편으로는 우리의 예상보다 너무 빨리 우리를 급습한다.

스무살 때부터 함께한 친구와 봄마다 찾아오는 계절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봄은 늘 우리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이토록 초라한 나에 비해 봄은 지독히도 찬란하고 아름답게만 보이곤 했다. 우리는 절대로 꽃들과는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 꽃에 대적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결코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봄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봄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의 초라함은 당연한 것이니, 기왕이면 더욱 찬란한 봄을 맞이하고 싶다.

봄밤, 아직 수줍은 십대 소녀의 연주를 들으며 그에게 찾아 올 봄을 생각했다.

윤아인의 연주는 나를 무척이나 초조하게 만들었다. 긴장과 떨림이 그대로 음악을 통해 전해졌다. 기대했던 연주가 아니었다. 그는 곡도 곡을 연주하는 자신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쉬웠다. 평소 같았다면 나는 크게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윤아인이 느끼고 있을 초조함과 불안에 마음이 동요했다. 맑고 깨끗한 음색을 만들어내는 타건과 몇번의 실수가 없었더라면 관객들을 흥분시켰을 테크닉에 내가 이미 매료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년 전, 윤아인이 하콘에서 들려주었던 연주가 얼마나 많은 관객들을 사로잡았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도 거의 남지 않은 공연장의 피아노 앞에 윤아인이 다시 앉았다. 그리고 그는 본공연 때보다 훨씬 아름다운 연주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연주용 드레스가 아닌 편안한 복장으로 피아노 앞에 앉은 그는 그 누구에게도 인정을 호소하지 않는다는 듯, 마치 자신의 집이나 연습실 피아노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마음의 여유와 담대함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거장으로 불리는 연주자, 그 노년의 연주를 상상해보자. 건반을 때릴 기운도 없고 미스터치도 많아질 게 분명하다. 그러나 관객은 그의 연주에서 벌어지는 실수까지도 그 음악을 완성하는 일부분으로 느끼게 된다. 하콘에서 많은 연주를 들어오며 악기를 다루는 솜씨나 기술, 악곡에 대한 뛰어난 이해만으로는 정말로 아름다운 연주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기준이나 조건이 아니다. 그 불가해한 요소들이 실은 모든 예술을 완성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윤아인은 지난 공연을 통해 음악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명석함, 뛰어난 테크닉을 보여주었다. 이번 공연이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에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가 결코 주눅들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뛰어넘기 위한 또다른 고비에 진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장하고 있는 연주자들을 위한 무대를 마련하고, 그들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들은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추호도 하고 싶지 않았을 실수를 하게 되지만, 그걸 뛰어넘어 놀랍게 변화해간다.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건 큰 행운이다. 꼭 나이가 어리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예술가의 운명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실패의 쓴 맛을 보고, 그걸 극복하는 순간 새로운 한계에 봉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겨울과 봄이 끊임없이 반복해 되돌아오는 것처럼.

그에게 이번 연주는 추운 겨울 같았을는지도 모른다. 무대 위에서 자신을 활짝 꽃피울 날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사실 그가 스스로 이미 몇번의 봄과 겨울을 지나 여기에 도착해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원래 봄은 늘 가깝고도 멀고, 멀고도 가깝다. 이 겨울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끼는 어느 날, 불현듯 그에게 찾아 올 찬란한 봄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내 삶의 옹색함이 무색해지도록 밝고 경쾌하게 찾아올 나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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