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회 화려하고 또 화려한 피아노, 피아니스트 장성
  • 등록일2012.12.16
  • 작성자배정현
  • 조회2810
요즘 세상이 시끌시끌합니다. 큰일이 있으니 그런게 당연하다만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시야에 들어오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을 피할 수 없는 때에
내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일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이리도 기쁜 것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처음 프로그램이 일정에 나왔을 때부터 달력에 표시해놓고 공연을 손꼽아 기다려왔답니다.
베토벤,쇼팽, 슈만, 리스트 그리고 라벨.
이 모든 음악을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데 어찌나 좋던지요.

이번에는 화려한 곡이 많아서 흑백의 건반 위를 움직이는 연주자의 손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주 탁월한 위치 선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연주회에 가면 의례 연주자가 등장해서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 위에 손을 올리고 음악을 연주를 합니다.
아주 당연한 일이지만 오늘 연주를 들으면서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쳐야 음악이 있을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일이 아주 엄청난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그만큼 화려한 타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피아니스트가 눌렀던 건반이 내려가고,
손가락이 다른 건반으로 옮겨가면 건반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피아니스트는 건반을 매섭게 내려치기고 하고, 아주 부서지기 쉬운 물건을 다루듯 조심조심
어루만지는 모습 또한 음악의 일부처럼 보였습니다.
순식간에 엄청난 음표를 쏟아내듯 건반 위를 내달리면서도, 소리가 뭉개지지 않고 한음 한음 또렷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슈만의 Fantasiestuecke의 첫 소절을 연주할 때는 온 공연장이 화사한 꽃안개 속에
둘러쌓인듯한 따스한 기분이 정말 좋았답니다.요즘 날씨가 너무 추워서
어딘가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했는데,
하콘에서 잠시나마 혹한 속에 꿈꿔왔던 휴가의 기분을 맛보았어요.

프로그램 중에 가장 기대를 많이 했던 곡은 라벨의 La Valse였습니다.
관현악곡, 피아노곡 둘 다 정말 좋아하는데, 음악이 화려할 수 있는 최상을
보여주는 듯한 곡을 더할나위 없이 화려하게 연주하는 관현악 편곡을
건반 위에서 그대로 구현해 낸다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곡 후반부에 긴장을 더해가면서 강약을 쥐었다 풀었다 하는 파트에서는
관객의 귀를 끌어당기게 하고, 다함께 손을 꼭 쥐게하는 피아니스트의 밀고 당기는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연주가 모두 끝나고 박창수선생님께서 장성님이 몸이 많이 좋지 않았다는 말씀을 해주시는데
처음에 등장할 때부터 창백했던 얼굴과 연주내내 땀을 많이 흘리던 모습,
악장 사이에 숨을 고르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어 음악을 들려주셔서 참 고마웠습니다.
앵콜은 어렵겠구나 했는데, 마지막까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화려한 터키행진곡을 들려주셨습니다.

와인파티 시간에 다시 등장한 장성님은 방금전까지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피아노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들어오던 사람이
맞을까싶을 정도로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연주를 끝내고 긴장을 벗어던진 기분이어서 그렇겠지요?
이것이 하콘 와인파티의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관객 한사람 한사람에게 상냥하게 인사해주시는 모습이 참 따뜻하고 고마웠습니다.
잠시 인사를 나누면서 프로그램이 쇼팽 에뛰드에서 스케르쵸로 바뀌었는지 여쭤봤더니
몸이 너무 좋지 않아 무리여서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이런 멋진 연주를 들려주신 분께 이런 말씀을 들었다는게 죄송하기까지 하더군요.
하지만 가까운 시일내에 피아니스트 장성님의 쇼팽 에뛰드도 꼭 듣고 싶은 바램은 남아있답니다.

연주를 듣는 중간에 시선을 돌려 관객들의 표정을 관찰하는 것도 다른 공연장과는 다른 하콘의 또다른 즐거움입니다.
오늘 관객분 중 가족들과 함께 온 꼬마 아가씨들의 표정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빠의 무릅 위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객석에서 베토벤을 듣는 부녀의 모습
손을 예쁘게 모아 맞잡고 앉은 모습, 이마를 피아노 가까이 기울이고 몸을 쭉 빼고 빨려들어갈 듯한 모습의 꼬마 아가씨들이
그렇게 깜찍하고 예쁘게 보일 수 없었습니다.
이번 겨울이 지나고, 또다시 시간이 지나면 여러 추억에 뒤엉켜 언젠가는 오늘이 희미해질지 모르지만
추운 겨울 따뜻한 나무 빛깔로 둘러쌓인 작은 공연장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던 시간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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