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콘, 국악의 장단과 가락에 놀아나다.
  • 등록일2012.05.20
  • 작성자candy
  • 조회2445
311회 하콘, 앙상블 시나위의 공연을 기대한 이유는 그들이 보내온 프로필 때문이었다.
퓨전이나 크로스오버보다 전통의 것을 극대화시키겠다는 취지가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살면서 국악을 제대로 들을 기회가 흔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전통음악의 퓨전이나 크로스오버라고 하는 음악치고 제대로 된 음악을 들을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
그 음악들은 새롭게 해석된 전통이라기보다는, 서양음악에 국악을 억지로 끼워맞춘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모든 경우에 다 그러했던 것은 아니지만 간혹 어떤 음악들은 듣기 낯부끄럽거나 유치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국악을 대중화하거나 탈바꿈하지 않겠다는 그 태도에도 불구하고 앙상블 시나위의 음악은 충분히 전통적이면서 충분히 현대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그것은 전통악기와 음악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수차례의 실험이 수반된 결과일 것이다.
스터디를 목적으로 만난 팀이라는 사실에서도, 그들이 그저 주어진 것을 연주하는 팀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전통음악을 서양악기로 연주한다고 해서, 서양음악을 전통악기로 연주한다고 해서 그것을 전통의 재해석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예술 분야에서 전통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는 걸 볼 때마다 그 단어가 얼마나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단어인지 깨닫게 된다.
재해석은 새롭게 할 대상을 계승하느냐, 그에 도전하느냐에 상관없이 그것이 가진 미적, 역사적 가치를 존중해야만 한다.
과거의 가치를 훼손하거나 폄하하지 않으면서 과거에 도전하는 것, 앙상블 시나위의 음악에서는 그런 숙고의 과정과 에너지가 느껴졌다.
서양 악기인 피아노와 심벌은 결코 가야금과 아쟁의 아름다운 소리를 해치지 않았고, 어떤 곡에서 아쟁은 첼로의 음색처럼 들려오기도 했으며, 현대적인 선율을 관통하는 우리 장단은 관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이제는 상투적으로 들리는 온고지신이라는 말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대화를 나눈다는 의미가 아닐까.
현재는 과거의 누적이지만, 과거는 현재에 의해 다시 읽히며, 과거의 다시 읽기는 미래의 바탕이 된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역사는 가정을 허락하지 않지만, 아마도 예술의 공간에서 역사에 대한 가정은 상상력과 창조력의 원천이 될 것이다.
앙상블 시나위, 전통음악의 현실을 떠나 많은 생각의 단서들을 던져준 공연이었다.
물론 그 생각들은 앙상블 시나위가 들려준 흥겨운 장단과 서정적인 가락의 경험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어쩐지 이번 공연을 한 마디로 정리하려니 조금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해야 할 것 같다.
하콘, 국악의 장단과 가락에 놀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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