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4회 하우스 콘서트 후기
- 등록일2012.02.26
- 작성자전필승
- 조회2805
안녕하세요? 전필승입니다.
지난해 칸초네의 밤 이후 처음으로 하콘을 다시 관람하였습니다.
현악기 연주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저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던 데다가
제가 좋아하는 김소옥씨의 연주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려
마치 입사 지원서를 제출하듯 떨리는 마음으로 예약 신청을 하였습니다.
프로그램은 소장파 연주자 위주의 전반부와 노장 위주의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클라리넷 주자가 이날 연주자군의 연령층과 국적 스펙트럼이 넓다는 지적을 서두에 하였는데,
연령에 의한 연주 스타일의 차이는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연주였습니다.
전반부에서는 역시 백주영과 김소옥의 프로코피에프 듀엣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프로코피에프의 곡을 들을 때마다 마치 분자나 원자의 세계를 보는 것처럼
크고 작은 입자들이 규칙적으로, 때로는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서로 부딪치기도 하는
그러한 광경을 연상합니다. 특히 피아노 소나타를 들을 때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이 곡에서는 아무래도 단선율의 찰현악기인 바이올린 두 대 만으로 연주되다 보니
입자보다는 강한 원색의 선들이 움직이는 것이 연상되었습니다.
특히 건실한 중저음으로 무게를 잡아준 김소옥의 연주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프로코피에프에서 혈기왕성함을 느꼈다면 모차르트 퀸텟에서는 관록을 보았습니다.
전성기의 연주자들이 내는 소리에서 느껴지는 빛나는 소리, 세련된 느낌은 아니었으나
따뜻함, 그리고 수묵화 톤의 둥근 소리가 어우러지는 앙상블이었습니다.
이렇듯 소리의 느낌이 다른 것은 20세기 중반과 후반에 각기 교수법이라든지
추구하는 연주 스타일이 달랐던 것에서 주로 기인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표현의 깊이는 삶의 경험이 음악에 투영된 것이서 비롯된 것이었겠습니다만..
퀸텟의 연주에서 들려준 소리는 분명 우리시대가 추구하는 것이 아닌 듯하였습니다.
같은 모차르트를 연주하더라도 우리시대 연주자들은 더 깔끔하고 분명하게 하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그 폭 넓고 느린 비브라토와 다소 둔중하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운궁 속에서
따뜻함과 인간미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그 순간, 그들의 연주는 이미 스타일이라든지
기교의 쇠퇴를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감상자들이 최신 콩쿠르 우승자들의 화려한 연주에 열광하면서도, 가끔은
모노럴 LP녹음을 꺼내어 들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여주는 그런 연주였습니다.
덤으로 들은 생일축하 변주곡은 다소 심심하게 끝난 마지막 곡을 대신한 훌륭한 마무리였습니다.
연주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생일 축하가 아닌가 합니다.
아쉬웠던 점은, 관객들이 사진을 너무 많이 찍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또르릉 하는 소리가 연주에의 몰입을 심각하게 방해하였습니다.
연주가 좋으면 차라리 녹음을 해가는 것이 어떤가 생각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아쉬웠던 점은 하콘의 무척 큰 매력이라고 생각되는,
연주자와의 와인 파티가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할아버지들이 나왔다면 영어 울렁증으로 얼어버렸겠지만...
***하콘에 정경화 선생이 출연하신다면 매봉역에서 율하우스까지 삼보일배 하겠습니다.
지난해 칸초네의 밤 이후 처음으로 하콘을 다시 관람하였습니다.
현악기 연주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저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던 데다가
제가 좋아하는 김소옥씨의 연주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려
마치 입사 지원서를 제출하듯 떨리는 마음으로 예약 신청을 하였습니다.
프로그램은 소장파 연주자 위주의 전반부와 노장 위주의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클라리넷 주자가 이날 연주자군의 연령층과 국적 스펙트럼이 넓다는 지적을 서두에 하였는데,
연령에 의한 연주 스타일의 차이는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연주였습니다.
전반부에서는 역시 백주영과 김소옥의 프로코피에프 듀엣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프로코피에프의 곡을 들을 때마다 마치 분자나 원자의 세계를 보는 것처럼
크고 작은 입자들이 규칙적으로, 때로는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서로 부딪치기도 하는
그러한 광경을 연상합니다. 특히 피아노 소나타를 들을 때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이 곡에서는 아무래도 단선율의 찰현악기인 바이올린 두 대 만으로 연주되다 보니
입자보다는 강한 원색의 선들이 움직이는 것이 연상되었습니다.
특히 건실한 중저음으로 무게를 잡아준 김소옥의 연주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프로코피에프에서 혈기왕성함을 느꼈다면 모차르트 퀸텟에서는 관록을 보았습니다.
전성기의 연주자들이 내는 소리에서 느껴지는 빛나는 소리, 세련된 느낌은 아니었으나
따뜻함, 그리고 수묵화 톤의 둥근 소리가 어우러지는 앙상블이었습니다.
이렇듯 소리의 느낌이 다른 것은 20세기 중반과 후반에 각기 교수법이라든지
추구하는 연주 스타일이 달랐던 것에서 주로 기인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표현의 깊이는 삶의 경험이 음악에 투영된 것이서 비롯된 것이었겠습니다만..
퀸텟의 연주에서 들려준 소리는 분명 우리시대가 추구하는 것이 아닌 듯하였습니다.
같은 모차르트를 연주하더라도 우리시대 연주자들은 더 깔끔하고 분명하게 하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그 폭 넓고 느린 비브라토와 다소 둔중하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운궁 속에서
따뜻함과 인간미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그 순간, 그들의 연주는 이미 스타일이라든지
기교의 쇠퇴를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감상자들이 최신 콩쿠르 우승자들의 화려한 연주에 열광하면서도, 가끔은
모노럴 LP녹음을 꺼내어 들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여주는 그런 연주였습니다.
덤으로 들은 생일축하 변주곡은 다소 심심하게 끝난 마지막 곡을 대신한 훌륭한 마무리였습니다.
연주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생일 축하가 아닌가 합니다.
아쉬웠던 점은, 관객들이 사진을 너무 많이 찍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또르릉 하는 소리가 연주에의 몰입을 심각하게 방해하였습니다.
연주가 좋으면 차라리 녹음을 해가는 것이 어떤가 생각하였습니다.
두 번째로 아쉬웠던 점은 하콘의 무척 큰 매력이라고 생각되는,
연주자와의 와인 파티가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할아버지들이 나왔다면 영어 울렁증으로 얼어버렸겠지만...
***하콘에 정경화 선생이 출연하신다면 매봉역에서 율하우스까지 삼보일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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