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회, 리코더와 챔발로의 괴상하고 흥미로운.
  • 등록일2012.02.12
  • 작성자ca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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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규모의 고악기 편성 연주는 대체로 작은 공간에서 연주되었을 때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것 같다. 세종체임버홀에서 피에르 앙타이가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을 연주했던 적이 있다. 원래 챔발로를 위한 곡을, 그것도 세계적인 챔발리스트의 연주로 들을 수 있다는 기대에 공연을 손꼽아 기다렸다. 헌데 연주의 완성도와는 관계 없이 처참한 기분으로 공연장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피에르 앙타이가 배탈이 나 화장실에 오래 앉아있는 바람에 공연 시작이 지연된 것은 두고두고 즐거운 기억이 되었지만) 볼륨의 폭도 크지 않고, 여음도 그다지 길지 않은 챔발로가 연주되기에는 홀이 너무 컸다.

오늘처럼 리코더나 챔발로 같은 프로그램을 하우스 콘서트에서 본다는 건 정말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의미가 확장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소규모 실내악도 마찬가지다. 좋은 음악은 얼마든지 있지만, 적합한 공간이 연주를 더욱 훌륭하게 완성한다는 걸, 요즘 같이 대규모 공연 공간에 익숙한 사람들이 느낄 기회는 많지 않다.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다소는 신경질적인 챔발로 소리와 다루기 까다로운 악기임이 분명한 리코더의 떨리는 음색, 그것은 천진난만함과 화려함 뒤에 낮게 가라앉은 바로크적 긴장과 불안의 요소들을 여실히 들려주는 것 같았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짧은 소견에 바로크 음악의 가장 매혹적인 부분은 그 모순에 있는 것 같다. 현대적인 악기로 연주하는 바로크 음악들은 고악기가 들려주는 것만큼은 그 기묘한 모순을 들려주지 못한다. 비발디니 헨델이니 바흐니 하는 작곡가들의 연주가 흔히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음악에 꼽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경증적인 불안을 그대로 드러내놓은 것 같은 현대곡들이 함께 연주되는 것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비발디와 윤이상이 이토록 서로 가까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 있을 거라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하나의 악기를 통해서 전혀 다른 화법의 불안이 공유되는, 괴상하고 흥미로운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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