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맛이 나는 300회 하콘 갈라콘서트
  • 등록일2011.12.26
  • 작성자배정현
  • 조회3051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콘과 함께한 이 시간을 어떻게, 얼마나 좋았는지 이야기를 꺼내자니 참 어렵네요. 저처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어려우니까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이 많은가봅니다. 이렇게 하면 일단 이야기는 꺼낼 수 있으니까요.

  이날 날씨가 참 추웠죠.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공연장 문이 열리기도 전에 하콘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선 걸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들 발을 동동 구르면서 공연장이 열리기를 기다리시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 한적한 길에 무슨일일까하며 궁금해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친구와 딱딱 떨리는 이를 앙물면서도, 잔뜩 들떠서 신나게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기다렸지요. 하콘의 문이 열리고 좋아하는 자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아까 줄을 섰을 때 바로 뒤에 계시던 분이 옆자리에 계셨습니다. 알고보니 이분께서는 무려 연희동에서부터 하콘을 보셨던 하콘의 오랜 관객이셨더군요. 300회 공연에 이렇게 하콘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신 분의 옆에서 공연을 보는 행운까지 누렸습니다.

  갈라콘서트의 즐거움은 평소 때 쉽게 듣기 어려웠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것을 빼놓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날 공연에서 하모니카라는 악기를 내가 알고 있던게 맞나 싶었습니다. 어릴 때 견출지를 붙여 음계를 표시해서 불러본 적도 있던거 같은 15센티미터 정도 되는 하모니카는 맞는데 정말 새로운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라틴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열정적인 연주에서는 감탄을, 애절한 클레멘타인에서는 코 끝이 찡해졌습니다.

세상의 수없이 많은 슈베르트 즉흥곡 연주와 레코딩이 있지만 이날 들을 김예지님의 연주는 저만의 명연으로 오래도록 기억할 듯합니다.  연주를 마치고 퇴장할 때,  김예지님의 안내견 찬미에게 속삭이듯 "찬미야 가자 가자"하면서 함께 나가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2년동안 안내견 찬미는 김예지님과 언제나 함께 하며 그녀의 모든 연주를 들었겠구나 싶더군요.  오늘처럼 멋지게 무대 위에 오르기까지 힘든 연습시간이 있었을텐데 그 옆의 피아니스트의 안내견의 삶은 어떨까하는 생각도 문득 듭니다.

  이날 공연에는 멋진 첼리스트들이 많았네요. 멘델스존 피아노 트리오를 연주해주신 김연진님,  예쁜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자기의 키만큼 큰 첼로를 들고 등장해서 진지하게 연주를 하고는 연주를 마치자 마자 벌떡 일어나 어린이다운 깜찍한 무대매너를 보여준 천사같은 한예린양, 묵직하고 선굵은 현으로  숨막힐 듯 멋진 슈만 환상곡을 들려주신 문웅휘님.

하찌와 애리가 등장했을 때는 깜짝 놀랬습니다. 프로그램을 몰랐기 때문에 연주자가 스텝들의 도움을 받아 자리를 잡을 땐 몸이 불편하신 분인가 했는데, 오늘 사고를 당하셨다고 하시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연주 들려주셔서 참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워낙 즐거운 분위기라 하찌님이 다치신건 입장 퇴장할 때만 알 수 있었어요. 달콤하고 즐거운 연주를 듣는 내내 ‘아… 하와이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기분좋은 바람, 하얀 백사장과 에머랄드 빛 바다, 야자수 그늘아래 묶인 해먹에 적당히 기대어 누워있는 기분이 대략 이런걸까하는 기분 좋은 음악이었어요. 하찌님 빨리 완쾌하시길 기도할께요.

정말 아름다운 캐롤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참 좋았습니다. 예쁜 목소리와 타악기, 그리고 귀여운 율동이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기분이었어요. 마치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집집마다 찾아가며 캐롤을 불러주는듯한 분위기였어요. 풋풋하고 예쁜 모습 때문에 이날 오신 모든 분들이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감상하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음악은 여러가지 느낌으로 공간을 채우는듯 합니다. 짙은 커피에 하얀 크림이 섞여들어가듯 퍼지는가 하면, 좁은 협곡을 지나는 바람처럼 관객 사이사이를 휘돌아감기는 음악도 있습니다. 장유진씨와 김태형씨가 연주는 음악이 공연장을 꽉 채우다 못해 천장을 들어올릴만큼 열정이 넘쳤습니다. 폭발적이면서도 두 연주자의 호흡이 꼭 맞는 앙상블이 정말 멋졌습니다.

이번 갈라공연을 보면서 구조를 잘 생각하면서 들으라고 하셨던 오프닝 덕분에 여러 관점으로 생각하면서 공연을 음미하였습니다. 박창수선생님은 뷔페와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예고편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편의 영화 중에서 가장 극적이고 감각적인 영상을 고르면서도, 한편의 영화를 보고 싶게끔 호기심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면에서 맥락이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대비가 아주 강한 여러가지 요소가 하나의 공연에서 잘 어우러지지 않았나 싶어요. 익숙함과 새로움, 나이의 많고 적음, 옛것과 새것, 서양과 동양, 출연자와 관객 이런 요소들이 멋지게 적재적소에 있었던 공연 같습니다.

이번에도 정말 큰 즐거움을 한아름 안고갑니다. 연주자가 등장할 때까지 모르고 있는 것도 기대감을 더 크게 해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한손으로는 눈을 가리고 다른 한손으로는 큼직한 사탕 통속에 손을 넣어 사탕을 꺼내고는, 맛을 볼 때까지 무슨 맛인지 모르는 그런 기분인것 같습니다.  
이런 즐거운 시간을 선사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내년에도 더욱 멋진 무대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댓글

0개의 의견이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