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에 빠진 주말.
  • 등록일2011.11.07
  • 작성자한미애
  • 조회3405


연주회가 끝나고 2부 연주자와의 시간. 끼있는 세 젊은 연주자들. 사진 찍는 모습도 남다른..





현존하는 최고의 반도네온 연주자의 솔로 앨범. 연주하는 모습 자체에서 인생이 묻어난다. 





바렌보임의 음반 Mi Buenos Aires querido. 내사랑 부에노스 아이레스

거장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탱고 선율과 반도네온과 베이스가 빚어내는 정말 아름다운 선율들



금요일저녁. 보통때처럼 아니 조금 이른 시간에 매봉역에 도착. 모처럼 아들과 라면아닌 식사를 좀 해볼까 하고 느긋하게 식사와 너무 더운 날씨 탓에 맥주 한잔.

시원한 맥주의 맛을 음미하고 있는 데 갑자기 날라온 카톡메세지...

7시인데 사람들이 벌서 줄을 섰어요~~



아니 ! 이건 뭐지??

고상지씨 공연이라고  사람이 많을 건 예상했지만 7시부터 줄이라니...



마음이 다급해진 아들과 저는 허겁지겁 나머지 식사를 끝 내고 하콘으로 달려갔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줄을 서있더군요.

그것도 계단 아래가 아니고 도로 변까지 이미 줄이 나와 있는 겁니다.

오늘 공연 만만치 않겠네 ...



역시나..

늘 1등으로 도착해서 맨 앞자리를 고수 하곤 했는데

열혈 팬클럽 분들인듯한 젊은 분들께 앞자리를 빼앗기고

그래도 앉은 곳이 고상지씨바로 앞자리..



이어 공연 시작전 들어오신 박창수 선생님의 말씀

이미 140명이 들어와 있노라고.

너무 안오는 날도 고민 너무 많이 와도 고민이신 선생님의 표정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런표정.



반도네온은  DVD영상을 통해서 처음 접한후 늘 마음속에 꿈의 악기로 자리잡아왔습니다.

배워 볼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저 꿈이었고.

실제 연주를 본적도 없었기에

이번 하콘에서의 고상지씨의 연주는 오래전부터 제 마음을 설레이게 하였습니다.

예습을 좋아하는 편인 저는 고상지씨의 음반이 있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아쉽게도 아직이었고

유튜브를 통해 동영상을 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악기의 무게가 버거워 보이는 갸냘픈 몸매였지만

당차고 솔직하고 쾌활한 모습에 매력이 철철 넘쳐 나시더군요.



프로필에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반도네온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부분은 사실 너무 부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런 용기와 열정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다니던 대학이 평범 한 대학이 아니었음 을 알고는 더욱 놀랐죠.



Kon님의 사회로 음악회는 친숙하고 서로 소통할수 있었습니다.



가을 밤 반도네온과 집시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들려주는 탱고의 선율은 몸과 마음을 휘감고

머리와 가슴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알게된  반도네온 주자는 피아졸라 이후 현존하는 최고의 반도네온 연주자라는

Rodolfo Mederos였는데 이 멋진 할아버지는

탱고로 표현하지 못할 인생이란 없다고 말씀 하셨죠.

왜 요요마나 기돈 크레머나 다니엘 바렌 보임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자들이 결국 탱고로 돌아가는지 조금 이해가 될것도 같습니다.



하콘연주회의 후유증으로

몇장의 음반을 사서

주말내내 그 음악을 들으며 보냈습니다.

마침 주말에 내린 비로

가을의 색은 더 짙어지고

거리엔 은행잎이 비처럼 내리고

길가의 세워둔 차들은 은행잎 눈으로 뒤덮인 가을날

탱고는 제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반도네온 없이는 탱고를 말하지 말라....



반도네온은 악마의 악기라고 할말큼 배우기가 까다롭다고 하더군요.



고상지 님의 열정어린 연주에 감사를...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인생을 담아 더욱 멋진 연주자의 길을 가시기를..





제가 산 음반중 다니엘 바렌보임과 반도네온의 메데로스와 베이스의 콘솔이 함께 한 음반에 다니엘 바렌보임이 쓴 글귀를 옯겨봅니다



내 인생의 첫 9년을 나는 아르헨티나에서 보냈고, 그때까지 아르헨티나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세계의 나머지는 아득히 멀리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모든것이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코스모폴리탄적인 의식이나 세계적인 사고는 아직 움트지 않을 때였다.

내기 숨쉬었던 공기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였고,내가 썻던 언어는 스페인어였으며, 내가 춤추었던 (비유적으로 말해서...) 리듬은 탱고였다.

내 우상은 카를로스 카르델이었다,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 나는 아르헨티나로, 나의 어린 시절로, 특히 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쿠에리도",그외 이 감동어린 음반에 포함된 멋진 선율들로 다시 돌아왔다.

댓글

0개의 의견이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