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회 하우스 콘서트 관람기
- 등록일2011.04.11
- 작성자양희민
- 조회3702
0.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280회 하우스 콘서트 작곡가였던 양희윤의 가족입니다.
1. 가볍게 수고했다, 인사하기에는 이 친구가 발표회를 위해 보낸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또 그 기간의 노고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학부시절 들었던 교양과목 수업 레포트용으로 썼던 전형적인 미사여구를 잔뜩 늘어놓았던 감상문같이 적어내는 것 또한 탐탁치가 않습니다. 이 글이 무엇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공연에 대한 저의 감상을 한 번쯤은 이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게 말로 제대로 전달되긴 어려웠을 겁니다. 가족 간의 대화는 핵심적이지 못할 때가 많을 뿐더러, 저는 친절한 화자는 커녕 말하는 데에 재주가 없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나거든, 또는 시간에 떠밀려 그 날의 기억이나 느낌이 조금 멀어질 때, 차분히 되짚어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 수고가 많았다고.
2. 작곡가 시리즈 중 한 파트로 소개되는, 10대의, 검증되지 않은, 클래식 혹은 현대 음악의 작곡가로써의, 단독 발표회. 관객에게는 크지 않은 기대감을 주고,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무거운 단어들로 소개가 되었습니다. 작곡 발표회라곤 예술의 전당 아카데미의 정기 발표회와 학부 시절 수업 때문에 의무적으로 봤던 발표공연이 전부였던 제게는, 이 친구가 제 가족이 아니었더라면 그저 가볍게 볼 수 있었을 발표회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 발표회를 준비하는 사람의 가까운 사람인 만큼 이 발표회가 가지는 중량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친구가 그 무게감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발표를 위해 작년부터 올해까지 부지런히 곡들을 준비했습니다. 죽을 만큼 부지런히, 라고는 못 하겠지만 아플 만큼 부지런히 준비했습니다.
3. 사실 저는 이 친구의 일상의 부분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작곡에 관해 정확히 어떤 공부를 어느 수준으로 얼만큼 진행하고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일상적인 잔소리를 할 때에도 이 친구의 전공에 대한 배려는 그저 일상에 그치는 정도입니다. 조금 더 집중해라, 조금 더 서둘러라, 등의 기본적이면서도 지겨운 잔소리 뿐이죠. 이 친구가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이 친구가 자정이 넘도록 화성학 책을 앞에 두고 끙끙대거나, 오선노트를 펼쳐두고 인상을 쓰고 있거나, 반쯤 감긴 눈으로 기보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컴퓨터 모니터를 대면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때 뿐입니다. 쓰고, 듣고, 지우고, 또 쓰고, 듣고, 고치고, 다시 한 번, 또 한 번, 확인해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곳이 있다고 투덜대기도 했고, 울상인 채로 잠에 들곤 했습니다. 방과 후 왕복 2-3시간이 넘는 곳으로 수업을 다녀오거나 연주자를 만나고 와서는 새벽이 되도록 악보를 붙들고 고민을 했습니다. 종종 곡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땐 부모님과의 대화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빠듯한 일정에 풀죽은 모습을 하고 문을 나서는 이 친구에게 고 3이니까 어쩔 수 없다, 라는 상투적인 말로 윽박지르기도 하고, 좋은 공부가 될 것이라며 달래기도 했습니다.
4_1. 믿음과 걱정이 반반 섞인 시선으로 어둑해진 공연장에서 첫 곡이었던 피아노 솔로곡을 들으면서, 아플 만큼 부지런히 해왔구나, 하고 확인했습니다. 이 친구가 선호하는 특유의 리듬이나 프레이즈를 느끼면서, 동시에 수많은 화성을 단조롭지 않게 배치, 혹은 한정된 마디 안에 가능한 한 다양하게, 마치 어떻게든 우겨 넣으려고 했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이루어 온 것보다 이루어 갈 것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에 첫 곡을 들으면서 조금은 숨이 막혔던 것 같습니다. 제 표현이 영 엉망인데, 이 친구의 최선이었고, 저 같은 문외한이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물론, 고슴도치 이론(!)일 수도 있겠습니다.
4_2. 선으로 날카롭게 대립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들으면서 몇 년 전 투박한 음질로 녹음했었던 이 친구의 첫 듀오 소나타를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바이올린의 묵직하게 치고 올라가는 선율과는 달랐다라는 느낌만 남았습니다. 쥐고 있는 것을 놓으면 새로운 것을 손에 익혀볼 수 있지만,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지켜본 바로는, 쥐고 있는 것을 놓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친구는 리듬을 강조하는 힘찬 진행이나 낭만적인 선율의 전개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포개어지지 않은 채로 날이 선 듯 달리고 맴도는 두 악기의 조합을 보면서, 이 친구가 좋아하던, 그래서 익숙해하던 부분을 많이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했구나, 생각했습니다.
4_3. 목관 5중주가 가능할까, 기보 프로그램을 통해 플레이되던 가상의 연주를 들으면서 이게 실제에서는 어떤 느낌일까 싶었습니다. 예전에 지나가는 이야기로 다정하게 오솔길을 걷는 신사와 숙녀분을 떠올려보면서 적어보라고 개인적으로 요청했었는데, 이 친구가 그 요청을 기억이나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따뜻한 소리 5개가 다정하고 경쾌하게 어우러지는 것에 아, 듣기 쉽구나, 단순하면서도 즐거운 감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4_4. 공감각적인 표현은 표현력을 확장시키거나 의도하는 바를 확실하게 하지만, 맛과 소리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요리를 하는 소리라던가 음식의 향이나 모양새가 아닌, 맛 자체는 가장 직접적인 감각이고, 동시에 맛을 표현할 수 있는 보편적인 코드는 없으니까요. 이 친구는 떫지만 달콤한 맛을 대표적으로 생율이라고 설명하더군요. 글자 그대로 떫다, 와 달콤하다, 를 떠올려보니, 가장 직접적이어야 할 맛이라는 감각이, 급격히 추상적으로 변했습니다. 이 친구가 어째서 머리를 쥐어뜯어가면서 징징댔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일반 주법과 피치카토를 오가던 곡은 스토리라인이 있었다기 보다는 이미지를 조각내서 섞어붙인, 두 가지의 다른 질감으로 붙여 만든 생율 그림 같았습니다.
4_5. 개인적으로 piano 4hands를 들으면서 두 번째의 오리들의 춤을 들을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이 친구가 처음 작곡을 배워나가던 시절, 첫 아카데미 발표곡인지, 아니면 그 발표회를 준비하면서 만든 곡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그 때 이 곡은 오리들의 물장난이라는 이름의 피아노 솔로곡이었고, 나중에 실내악으로 편곡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참 좋겠다고 얘기했었죠.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아카데미 과정 수료할 때 발표했던 트리오 곡 특유의 리듬감과 경쾌함이 탱고에서 읽혀졌습니다. 5개의 짧은 악장들을 지나는 동안 이 친구가 작곡공부를 하면서 마주쳤던 여러번의 시작들이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4_6. 드럼의 소리가 작은 규모의 실내에서 다른 악기를 압도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저의 쓸데없는 걱정으로 밝혀졌습니다. 탬버린, 트라이앵글과 같은 모양마저도 누구에게나 친숙한 악기에서부터 마라카스나 에그쉐이커와 같은 생소한 악기까지, 소리가 날 때마다 이번엔 어느 악기에서 나는 것일까 찾아보고, 지휘자분과 연주자분들이 눈으로 주고받는 신호나 호흡마저 볼 수 있었던 것은, 초점에서 벗어나긴 하지만, 이것 역시 하우스 콘서트만의 장점이겠죠. 박자가 변하고 느닷없이 끼어드는 악기들이 끌어가던 시간의 끝에 마침내 모든 악기가 소리를 내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5. 소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귀로 지나가버린 악보들은 이 친구에겐 거대한 도전이었고, 반쯤은 짐이었으며, 반쯤은 새롭고 유쾌한 경험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차근하지만 치열하게 쌓아온 일상이 많은 스탭분들과 여러 연주자분들의 손을 거쳐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냈습니다. 가능성과 확장성. 수많은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고맙고 소중한 한 시간 남짓의, 후텁지근 했던, 차분하고 경쾌했던 나무색의 실내 공간에서 보고 들었던 것을 축약하자면 그렇습니다.
앞으로 한참 더 다듬어지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을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생소한 악보로도 멋진 음을 만들어주신 연주자분들께 감사드리고, 멋진 무대를 기획하고 도와주신 스탭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박창수 선생님,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가능성을 보고 공연장을 찾아주신 관객여러분들께도,
가족으로써, 감사드립니다.
1. 가볍게 수고했다, 인사하기에는 이 친구가 발표회를 위해 보낸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또 그 기간의 노고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학부시절 들었던 교양과목 수업 레포트용으로 썼던 전형적인 미사여구를 잔뜩 늘어놓았던 감상문같이 적어내는 것 또한 탐탁치가 않습니다. 이 글이 무엇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공연에 대한 저의 감상을 한 번쯤은 이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게 말로 제대로 전달되긴 어려웠을 겁니다. 가족 간의 대화는 핵심적이지 못할 때가 많을 뿐더러, 저는 친절한 화자는 커녕 말하는 데에 재주가 없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나거든, 또는 시간에 떠밀려 그 날의 기억이나 느낌이 조금 멀어질 때, 차분히 되짚어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 수고가 많았다고.
2. 작곡가 시리즈 중 한 파트로 소개되는, 10대의, 검증되지 않은, 클래식 혹은 현대 음악의 작곡가로써의, 단독 발표회. 관객에게는 크지 않은 기대감을 주고,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무거운 단어들로 소개가 되었습니다. 작곡 발표회라곤 예술의 전당 아카데미의 정기 발표회와 학부 시절 수업 때문에 의무적으로 봤던 발표공연이 전부였던 제게는, 이 친구가 제 가족이 아니었더라면 그저 가볍게 볼 수 있었을 발표회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 발표회를 준비하는 사람의 가까운 사람인 만큼 이 발표회가 가지는 중량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친구가 그 무게감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발표를 위해 작년부터 올해까지 부지런히 곡들을 준비했습니다. 죽을 만큼 부지런히, 라고는 못 하겠지만 아플 만큼 부지런히 준비했습니다.
3. 사실 저는 이 친구의 일상의 부분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작곡에 관해 정확히 어떤 공부를 어느 수준으로 얼만큼 진행하고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일상적인 잔소리를 할 때에도 이 친구의 전공에 대한 배려는 그저 일상에 그치는 정도입니다. 조금 더 집중해라, 조금 더 서둘러라, 등의 기본적이면서도 지겨운 잔소리 뿐이죠. 이 친구가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이 친구가 자정이 넘도록 화성학 책을 앞에 두고 끙끙대거나, 오선노트를 펼쳐두고 인상을 쓰고 있거나, 반쯤 감긴 눈으로 기보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컴퓨터 모니터를 대면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때 뿐입니다. 쓰고, 듣고, 지우고, 또 쓰고, 듣고, 고치고, 다시 한 번, 또 한 번, 확인해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곳이 있다고 투덜대기도 했고, 울상인 채로 잠에 들곤 했습니다. 방과 후 왕복 2-3시간이 넘는 곳으로 수업을 다녀오거나 연주자를 만나고 와서는 새벽이 되도록 악보를 붙들고 고민을 했습니다. 종종 곡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땐 부모님과의 대화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빠듯한 일정에 풀죽은 모습을 하고 문을 나서는 이 친구에게 고 3이니까 어쩔 수 없다, 라는 상투적인 말로 윽박지르기도 하고, 좋은 공부가 될 것이라며 달래기도 했습니다.
4_1. 믿음과 걱정이 반반 섞인 시선으로 어둑해진 공연장에서 첫 곡이었던 피아노 솔로곡을 들으면서, 아플 만큼 부지런히 해왔구나, 하고 확인했습니다. 이 친구가 선호하는 특유의 리듬이나 프레이즈를 느끼면서, 동시에 수많은 화성을 단조롭지 않게 배치, 혹은 한정된 마디 안에 가능한 한 다양하게, 마치 어떻게든 우겨 넣으려고 했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이루어 온 것보다 이루어 갈 것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에 첫 곡을 들으면서 조금은 숨이 막혔던 것 같습니다. 제 표현이 영 엉망인데, 이 친구의 최선이었고, 저 같은 문외한이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물론, 고슴도치 이론(!)일 수도 있겠습니다.
4_2. 선으로 날카롭게 대립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들으면서 몇 년 전 투박한 음질로 녹음했었던 이 친구의 첫 듀오 소나타를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바이올린의 묵직하게 치고 올라가는 선율과는 달랐다라는 느낌만 남았습니다. 쥐고 있는 것을 놓으면 새로운 것을 손에 익혀볼 수 있지만,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지켜본 바로는, 쥐고 있는 것을 놓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친구는 리듬을 강조하는 힘찬 진행이나 낭만적인 선율의 전개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포개어지지 않은 채로 날이 선 듯 달리고 맴도는 두 악기의 조합을 보면서, 이 친구가 좋아하던, 그래서 익숙해하던 부분을 많이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했구나, 생각했습니다.
4_3. 목관 5중주가 가능할까, 기보 프로그램을 통해 플레이되던 가상의 연주를 들으면서 이게 실제에서는 어떤 느낌일까 싶었습니다. 예전에 지나가는 이야기로 다정하게 오솔길을 걷는 신사와 숙녀분을 떠올려보면서 적어보라고 개인적으로 요청했었는데, 이 친구가 그 요청을 기억이나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따뜻한 소리 5개가 다정하고 경쾌하게 어우러지는 것에 아, 듣기 쉽구나, 단순하면서도 즐거운 감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4_4. 공감각적인 표현은 표현력을 확장시키거나 의도하는 바를 확실하게 하지만, 맛과 소리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요리를 하는 소리라던가 음식의 향이나 모양새가 아닌, 맛 자체는 가장 직접적인 감각이고, 동시에 맛을 표현할 수 있는 보편적인 코드는 없으니까요. 이 친구는 떫지만 달콤한 맛을 대표적으로 생율이라고 설명하더군요. 글자 그대로 떫다, 와 달콤하다, 를 떠올려보니, 가장 직접적이어야 할 맛이라는 감각이, 급격히 추상적으로 변했습니다. 이 친구가 어째서 머리를 쥐어뜯어가면서 징징댔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일반 주법과 피치카토를 오가던 곡은 스토리라인이 있었다기 보다는 이미지를 조각내서 섞어붙인, 두 가지의 다른 질감으로 붙여 만든 생율 그림 같았습니다.
4_5. 개인적으로 piano 4hands를 들으면서 두 번째의 오리들의 춤을 들을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이 친구가 처음 작곡을 배워나가던 시절, 첫 아카데미 발표곡인지, 아니면 그 발표회를 준비하면서 만든 곡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그 때 이 곡은 오리들의 물장난이라는 이름의 피아노 솔로곡이었고, 나중에 실내악으로 편곡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참 좋겠다고 얘기했었죠.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아카데미 과정 수료할 때 발표했던 트리오 곡 특유의 리듬감과 경쾌함이 탱고에서 읽혀졌습니다. 5개의 짧은 악장들을 지나는 동안 이 친구가 작곡공부를 하면서 마주쳤던 여러번의 시작들이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4_6. 드럼의 소리가 작은 규모의 실내에서 다른 악기를 압도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저의 쓸데없는 걱정으로 밝혀졌습니다. 탬버린, 트라이앵글과 같은 모양마저도 누구에게나 친숙한 악기에서부터 마라카스나 에그쉐이커와 같은 생소한 악기까지, 소리가 날 때마다 이번엔 어느 악기에서 나는 것일까 찾아보고, 지휘자분과 연주자분들이 눈으로 주고받는 신호나 호흡마저 볼 수 있었던 것은, 초점에서 벗어나긴 하지만, 이것 역시 하우스 콘서트만의 장점이겠죠. 박자가 변하고 느닷없이 끼어드는 악기들이 끌어가던 시간의 끝에 마침내 모든 악기가 소리를 내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5. 소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귀로 지나가버린 악보들은 이 친구에겐 거대한 도전이었고, 반쯤은 짐이었으며, 반쯤은 새롭고 유쾌한 경험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차근하지만 치열하게 쌓아온 일상이 많은 스탭분들과 여러 연주자분들의 손을 거쳐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냈습니다. 가능성과 확장성. 수많은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고맙고 소중한 한 시간 남짓의, 후텁지근 했던, 차분하고 경쾌했던 나무색의 실내 공간에서 보고 들었던 것을 축약하자면 그렇습니다.
앞으로 한참 더 다듬어지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을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생소한 악보로도 멋진 음을 만들어주신 연주자분들께 감사드리고, 멋진 무대를 기획하고 도와주신 스탭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박창수 선생님,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가능성을 보고 공연장을 찾아주신 관객여러분들께도,
가족으로써,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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