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일의 하우스콘서트
  • 등록일201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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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답게 약도들고 조금 헤매주다가 겨우 도착한 하우스콘서트.
하지만 헤맬 것을 예상하고 충분히 일찍 출발한터라..아직 공연장이 번잡하지 않을 때 들어갈 수 있었다.
박창수 선생님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벽 쪽 모서리에 기대앉아 몸을 쉬게 해주었다.
공연 날 아침부터 왠지 마구 설레여서, 오는 내내 매우 긴장상태였기 때문에.. 심신이 지쳐있었다.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정화가 필요했다. 몇 주 전부터 머릿속에 돌멩이 하나가 들어있는 듯한 답답한 느낌이 있어왔다.
하도 답답해서 그 돌멩이를 없애보려고 방에서 혼자 머리를 마구 흔들어보기도 했지만.. 당연히 무지 어지럽기만 했고....
아마도 이 돌멩이는 요즘의 긴장과 경직이 조금씩 쌓여 만들어진 것 일거다.
긴장은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했을 때 생긴다. 그런 구분이 나 아닌 것을 경계하게 했고..
이런 내게 필요한건 음악이었다. 음악을 들을 때만큼은 내 몸이 어디까지인지가 애매해지니까..
눈을 떴을 땐 자기 얼굴을 제외하곤 전부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린 눈으로 ‘보이는 건 너, 안 보이는 건 나’ 하는 식으로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게 된다.
그런데 음악을 들을 땐 눈이 그닥 쓸모가 없어진다. 그 때 눈을 살짝 감아주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내가 어디까지고 내가 어디있는건지.. 내가 사람인지 소리인지.. 경계가 없어지며 하나가 된다.
하우스콘서트는 그런 합일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작곡가 박용실님의 등장. 당당하게 신발을 신고 들어오셔서 당당하게 신발을 벗으시는 모습이 좋았다.
작곡가 시리즈 중...어떤 공연을 볼까 많이 고민했었다. 그러다 결국 박용실님의 공연에 찾아간 이유는.. 하콘 책과 박창수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언뜻 암시된 모습들이 굉장히 강력(?)해 보였기 때문..
요즘 나의 유약한 모습에 조금 질려서.. 불같이 펄펄 타오르면서도 묵직한? 힘있는 사람을 한번쯤 보고 싶었다. 그리고 왠지 박용실님이.. 그런 분 아닐까? 하고 멋대로 기대하고 이번 공연에 온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는 예상이 되지 않았다. 그 분의 음악에 대해선 아는 것이 전무했다.
막연히.. 여태 들어왔던 음악처럼 띠리링 또로롱 따단~~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큰 오산이었다.

첫 곡 aoctave가 시작할 때...소리가 눈에 보였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부우~하는 첫 음이 흘러나왔을 때 눈앞에 뭔가 일렁이면서 지나갔다.
눈을 감자, 소리가 보이는 걸 넘어서 거의 만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소리와의 가까운 거리가 하콘의 강점일 것이다.
소리가 옆으로 돌아서 왔다가.. 뒤에서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높은 음을 들을 땐 머리 쪽이 조여지다가.. 낮은 음을 들을 땐 다리 쪽에서부터 뭔가 징~~ 하고 올라오고..
음악을 귀가 아닌 몸으로 들었다. 머릿속에 돌멩이가 생긴 이후로부터 줄곧 이런 것을 원해왔었다.
예쁜 멜로디를 들으며 머릿속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 그 이미지에 감동하는 것은 이제 머리아프고 지겨웠다.. 나는 상상이 아닌, 지금 당장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강한 촉감을 원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여기있는 내 몸을 관통하는 것, 살아있는 느낌..
의미는 수동적인 것, 의도는 직접적인 것.. 박용실의 음악은..‘의미’가 아닌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저 앞에 걸려서 ‘생각해보세요~’하는 수동적인 이미지가 아닌, 말 따위 건너뛰고 여기에 직접 달려와서 직접 끌고 가는 행동력을 느꼈다.

다음 곡이 시작 할 때도 나는 다시 눈을 감았으나..
심히 조심스러운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한참 긴장이 되었을 때, 갑자기 등장한
‘콰광!!!!!!!!!!!!!’
소리에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눈만 뜨인게 아니라.. 너무 놀라서 몸도 한 2센티미터 정도 펄쩍 뛰었던 것 같다..
긴장하다가.. 깜짝!! 다시 긴장하다.. 또 깜짝!!! 이것을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퍼커션소리에 적응이 되었다..마치 방을 때려 부수는 소리 같았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가.. 몰래몰래 살갗을 긁는 것이었다면.. 퍼커션은 박치기?
극명히 대비되는 두 소리가 서로의 색깔을 더욱 강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가장 집중할 수 있었던 곡..

그다음인 세 번째 곡이 나는 그날 들었던 다섯 곡 중 제일 좋았다..
그날 내 목표(?)였던 ‘음악 몸으로 듣기, 소리와 하나 되기’를 가장 잘 실현시킬 수 있었던 곡..
쏟아지는 소리들 가운데에서 눈을 감고 있자, 앉아있던 나는 붕 떠서 없어지고 내가 있던 자리에 소리만 남았다. 내가 소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소리니까, 저렇게 정신없이 움직이는 소리들처럼 나도 움직이고 싶었다. 그치만.. 정말로 막 춤춰버렸다면 무슨 사태가 벌어졌을지..
내 음악감상법이 이상한 걸까.. 음악을 가만히 앉아서 듣는 일이 가끔 내겐 너무 이상하게 느껴진다. 특히 이런 음악은 가만히 앉아서 귀로만 듣는 건 거의 고문일수도 있다. 이럴 때 만큼은 나를 완전히 놓아버리고 싶은데..

관람기를 일요일 자정까지 써야하니.. 나머지 두 곡의 감상을 쓸 시간이 없을 것 같다.
소리를 소리 자체만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나는 대상을 통해 나 자신, 내 생각을 봤을 뿐이었을것이다..좀더 순수한 눈과 귀를 갖고 싶다.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기대했던 와인파티가 시작!
소주 두 잔만 마셔도 얼굴이 온통 시뻘겋게 되는 나는 오기전부터.. 와인은 한 잔만 마시리라 생각했지만,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어느새 세 잔째.. 과자도 너무 맛있어서 계속계속 퍼다먹고..
열심히 먹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사진으로만 봤던 작곡가 양희윤이 있었다. 말을 걸고 싶었으나 소심해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작곡가 시리즈 중에 두 번째로 가장 보고 싶었던 공연이 양희윤님의 공연이었다.
운좋게도.. 집에 가기 전에 양희윤의 피아노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와인을 세 잔 씩이나 마시길 잘 한 듯.
테이블 쪽에 앉아계셨던 박창수 선생님께도 가기 전에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과자에 정신이 팔려있다보니 어느새 사라지셨다..
그래서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나와서 역으로 향했는데..역시 길치답게 길을 좀 헤매다보니, 양희윤님을 길에서 다시 마주쳤다. 저분의 곡은 어떤 색깔일까?
근처에 있던 공원에 앉아, 와인으로 벌게진 얼굴을 식히며 여운을 느꼈다.
이번에는 혼자 와서 집중과 긴장을 할 수 있었지만, 다음은 편안한 사람과 함께 와 공감과 이완을 느끼고 싶다...라며 콘서트가 끝나자마자 어느새 또 올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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