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쉬는 인형들의 무대, 사탄의 인형이 아니예요.
  • 등록일2010.09.05
  • 작성자candy
  • 조회3863
인형을 살아있는 것처럼 여기던 시절이 있다. 그 시절에는 인형들을 위해 서툰 바느질과 테이핑으로 옷을 만들었고, 낡은 상자들을 가져다 집을 지었고, 고무지우개를 짓이겨 식사를 준비했다. 인형들에게는 각자의 이름과 성격이 있었고, 우리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제법 많이 나누었다. 그 시절에 내가 인형들에게 부여한, 혹은 인형들이 저절로 갖게 된 그 생명력은 정말로 강력한 것이어서, 어느 순간엔 그것들이 나의 의지 밖에서도 움직일 것만 같았다. 귀걸이를 잃어버린 인형의 귀에 색색의 압정을 꽂아주었다가 밤새 압정 다발을 손에 쥔 인형들에게 쫓기는 꿈을 꾸었다는 친구의 꿈 때문에, 나는 선물로 받은 독일제 인형을 다른 친구의 손에 넘기기도 했다. 인형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가 이름을 아는 것, 또는 우리가 아직 이름을 모르는 것들에게 쉽게 생명을 불어넣었고, 그것들이 우리에게 거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좀 당연한 수순의 이야기겠지만, 이미 이름 붙여진 것들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그것을 하나의 고유명사로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 최근에 강아지 인형 하나를 선물로 받았고, 선물해 준 사람의 이름을 따서 카즈코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나는 녀석이 가끔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낄 때 조차 그 눈을 외면하게 된다.

그래서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있는 마츠자와 카요의 인형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버려진 헝겊들로 섬세하게 만들어진 인형들에 환호하면서도 그것들은 여전히 인형, 그 이상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 공연의 주인공이라면 인형들의 이름에 걸맞는 영혼을 불어넣은 쿠로타니 미야코를 꼽아야 할 것이다. 작은 체구, 백발의 머리에 얼굴에 온통 흰 분칠을 하고,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쿠로타니 미야코는 그 자신이 인형인 것처럼 인형들 사이에 앉아있었다. 쿠로타니 미야코의 연기는 단순한 인형극이 아닌 일종의 가면극 형태에 가깝다. 인형을 조종하는 손이나 인형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인형사의 몫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전신을 빌어 연기한다. 가면은 가면을 쓰는 자에게 가면이 가진 인격을 부여한다. 가면을 쓴 사람이 가면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연기가 뛰어나면 뛰어날 수록 연기를 하는 사람의 인격은 지워지고 가면의 인격이 더욱 역동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쿠로타니 미야코가 인형을 들어올리는 순간, 인형들의 얼굴에 표정이 드러나고, 그녀는 인형들의 압도적인 존재 밑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그녀가 왜 굳이 얼굴에 온통 흰 분칠을 하고 무대에 등장해야 했는지가 명료해지는 순간이다. 그녀는 자신의 호흡을 기꺼이 인형들에게 내어준다. 인형만이 아니다. 관객들이 내놓은 온갖 물건들, 멋대로 구겨지는 종이에도 그녀는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고, 그들이 그녀를 마음대로 이용하도록 내버려둔다.

인간의 언어로 말하지 못하는 것들과 대화하기를 일찍이 포기해버린 사람들에게, 그녀의 인형극은 더더욱 놀랍고 기이하게 느껴진다. 마츠자와 카요의 인형들을 더이상 버려진 헝겊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처럼, 쿠로타니 미야코가 연기하는 인형들은 이제 단순히 인형이라고만은 부를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녀의 손에서 벗어난 인형들은 마룻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지만, 언제라도 스스로의 발로 문을 향해 걸어나갈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2003년 하라다 요리유키의 연주를 처음 들었고, 그 이후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연주를 들어왔다. 힘으로 구조를 압도하고, 관객에게 판단의 중지를 요구하는 것만 같은 하라다의 연주는 쿠로타니의 몸짓이 익숙한 이야기의 흐름에 갇히지 않도록 때로는 그녀가 연기하는 장면을 따라가고, 때로는 벗어나면서 기묘한 아이러니를 연출하고는 했다.

그들이 만든 인형극은 동심과 조우한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다. 인형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쿠로타니 미야코의 인형극은 창조적인 몸짓과 상상력으로 이미 이름붙여지고 결정된 역할과 도구의 관점에서 벗어나 모든 사물의 자리를 새롭게 펼쳐보인다는 점에서, 어떻게는 감히 시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필요에 의해 수집되고 쌓인 사물들로 가득 찬 이 방 안에서, 이제는 간혹 소란스러운 수다를 듣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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