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기] 소리가 들어오다
- 등록일2009.12.27
- 작성자정기연
- 조회4096
- 너무나 개인적인, 그러나 소리가 들어온 밤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나는 음악을 모른다.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음악을 죽도록 많이 들은 매니아도 아니다.
오히려 음악을 거의 듣지 조차 않았다.
최근 읽은 최영미씨의 에세이집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에서 거의 절대적인 동감이 간 문장 하나가 있었다.
"오랫동안 내 귀는 막혀 있었다. 내 속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느라 바깥 세계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 4년 전쯤, 친구 하나가 물었다.
"너 음악 안듣지?"
내가 대답했다.
"응."
아니야! 나도 듣는다구! 뭔가 항의하듯 방어하듯 말하고 싶었지만 역시 나는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게 사실이었다.
어릴때부터 텍스트와 영상에는 매몰되어 있었다. 나 만의 방에서. 잡다하게 손에 잡히는 데로 보고 읽었다.
하지만, 음악은 아주 가끔 내 의식 혹은 방어벽을 느닷없이 뚫고 훅 들어오는 소리들이 가끔 있었을 뿐, 그 외에는 적막이었다.
아무 소리도 없는 침묵 상태가 가장 편했다.
귀에 음악이 들어오지 않아 콘서트에 가지도, 씨디를 틀지도, 라디오를 듣지도 않았다.
내겐 음악은 들어오지 않는 세계였고, 모르는 세계였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내게 소리는 없었다.
그런 내가 한 4년 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일렉 기타를 계속 연주하고 싶다던 그 친구가 내게 Pat Metheney, Jeff Beck, Thelonius Monk, Jimi Hendrix, Miles Davis, Mahavishnu Orchestra ....
자기가 좋아하는 재즈 플레이어들의 씨디를 내게 무더기로 던져주었다.
아 놔, 완죤 초짜한테 너무하잖아.
"그냥 들어 봐. soul 이 느껴지지 않냐."
다소 오바스러운 제스쳐와 말투에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다.
뭐야, 왜 자기 취향을 나한테 들이대고 난리야.
근데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허풍이라고 느낀 외피 안에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린 소년이 들어 있었다. 침묵에서 위안을 얻었던 나와는 반대로 음악에서 위안을 얻었던 그 어린 소년을 만난 이후로, 난 그가 추천해주는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좋았다.
그 외에 그 음들을 내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냥 좋았다.
그 친구가 강추하며 빌려줬던 재즈 만화 <Jazz it up!>을 읽으며 뉴욕의 한 음악 빠에서 잼 세션을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음악으로 대화를 한다는 건 어떤걸까. 그들의 소리가 내게도 전해져 올까? 알아들을 수 있을까? 못알아듣지 않을까?
2-3년 전 쯤에 또 한 언니를 만났다.
언니가 꾸며놓은 작은 공간과 물건들이 마음에 들어 쥔장과 손님으로 만났는데, 내게 조금씩 조금씩 음악을 틀어줬다.
Iggy Pop, Janis Joplin, Goran Gregovic, Nick Drake, Rufus Wainwright, Ry Cooder, Tom Waits, Bob Dylan, Mikis Theodorakis, Francoise Hardy...
매일 아침마다 언니는 블로그에 음악을 올렸고, 나는 언니가 틀어주는 대로 들었다.
언니가 올리는 음악과 사진을 통해 오늘 언니의 기분과 컨디션을 가늠해보면서.
언니 오늘은 기분이 좋은가봐, 오늘은 좀 우울한가, 오늘은 잘 모르겠네?
언니는 나의 알프레도, 나는 언니의 토토, 하면서.
그리곤 박창수의 하우스 콘서트를 알게 되었다.
작은 집에서 음악을 만날 수 있는 시간, 예전 연희동에서 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한 번 가 보고 싶다.. 하다가 몇 년을 넘겼다.
기회가 닿지 않기도 했고, 왠지 뻘쭘하기도 할 거 같아서..
클래식은 지루하지 않을까? 하기도.
요번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찾다가 뻘쭘한 다른 큰 공연장 공연들을 제꼈다.
큰 공간이 아닌 작은 공간에서, 대형 기획사가 아닌 한 사람 그리고 그를 도우는 여러 스탭들로 이루어진 소소한(소소하지만은 아닐수도 있지만) 음악 공동체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연말 갈라 콘서트라 그런지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정신이 없고 바람이 통하지 않아 숨이 막혔다.
미리 5만원을 내고 예약을 했지만(예약 오픈 23분만에 예약 종료! 난 2분만에 예약했는데, 30번째였다는-_-), 어떤 음악을 들을지, 어떤 연주자들이 나올지, 전혀 공개하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방에 앉아있었다.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고도 5만원을 요구하는데, 생전 초짜인 나 같은 사람이 잘 알지도 보지도 못한 어떤 한 사람의 느낌과 안목을 믿고 간다는 건, 뭘까. 나도 그게 뭔진 모르겠고,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그렇게 해버렸다.
그래도 될 거 같았다.
아카펠라, 클래식, 국악, 성악, 가요, 즉흥 연주 ..
이 곳에서 그 동안 함께해왔떤, 혹은 앞으로 함께할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좋았다.
이 단순하고 성의없어 보이는 단어 하나 밖엔.
사람 목소리, 피아노, 가야금, 비올라, 바이올린, 기타, 드럼들을 미리 공개하지 않은 그래서 더 궁금궁금 기대했던 소리들.
꽃별과 강산에님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숨겨둔 발견.
마리화나를 깊이 들이마신다면 이런 느낌일까, 마약 보다 더 귀한 선물.
Jeux d"enfants. 아이들의 놀이 라는 제목 처럼, 어린 소년 둘이 피아노를 가지고 노는 유쾌한 놀이였다.
바깥 쪽에 앉아있던 어린 소년의 감수성이 눈에 확 띄었다.
저 아이의 연주를 더 들어보고 싶다.
공식 프로그램 2부까지 끝나고 3부에서 자유연주를 하는데 "스읍 스읍" 침소리까지 내가며 몰입하는 연주를 들었다.
꼬마의 재기발랄함과 저토록 뛰어난 재능 사이의 균형을 어쩜 저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지니고 있을까.
김선욱씨의 피아노 소리는 혼을 두드리려는 시도
푸르고 노란 달빛에 물들어가는 물결
달 빛 받은 돌담 위에 잔잔하게 출렁이는 물결 그림자
저렇듯 젊은 나이에 이렇듯 깊고 잔잔한 소리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
피아노와 사랑을 나눈다면 그와 같을까
떠벌리는 기교, 보여주는 으스댐 없이 어찌 저렇게 피아노를 조용한 열정으로 어루만질 수 있을까
그의 차분한 피가 낮게 들끓는 온도로 그의 손을 타고 올라와 건반을 두드리다가 내 핏줄 안으로 스며들었다
송정아씨의 가야금
25현 가야금이었나?
추적추적 한 스럽게, 그리고 또르르르 하프 스럽게 한 오백년이 울었다
박창수씨와 김책님의 피아노-드럼 즉흥 연주
우왓 저것이 Jazz it up 만화에서 침 줄줄 흘리던 연주자들 사이의 즉흥 연주?
피아노와 드럼의 대화
실험적인 놀이
서로 귓속말 하다가, 겨드랑이와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다가, 온갖 물건들을 다 깨트릴 정도로 으르렁대다가, 또
논다.
박창수님의 강렬하고 노련한 연주가 신선했지만 동시에 내겐 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으나, 김 책님이 드럼을 갖고놀며 피아노 변화에 잔뜩 집중하여 맞추어가는 모습이 재밌었다.
강산에씨는 늘 느끼는 거지만, 리듬, 언어, 이야기, 기타를 자유자재로 갖고 논다.
유쾌하게 애잔하게
달래면서 휘두르며
저잣거리 중이나 음유시인의 몇 백년 전 얼굴이 그의 얼굴과 닮았을까.
노래를 부르며 도를 닦아가는걸까.
꽃별의 히칸바야에선 꽃별보다 꽃별과 함께 연주한 유웅렬씨의 기타 줄 소리가 뼈를 건드렸다.
작고도 길고도 가는 뼈를 손으로 타는 걸까.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건 공식 프로그램 1 & 2부가 끝나고
담백한 간식과 자몽주스, 와인을 마시고
비공식 아무것도 정해져있지 않은 3부!
9시 30분부터 차가 끊길 걱정에 더 듣고 싶어도 종종걸음으로 나와야했떤 11시 15분 정도까지 이어지던 남은 연주자들의 자유 연주.
와인 한 병을 자기 앞에 갖다두더니 홀짝 홀짝 비우고 다시 나가서 치던 김선욱님의 슈베르트 연주(맞나?).
빛을 어루만지던 고요한 소년의 손길이 저토록 세월을 경험한 어른의 손이 될 수도 있구나.
꼬맹이 둘이 치던 애 중 한 명의 또 다른 즉흥 연주(조성진).
스읍 스읍
피아노를 처음 연주하는 듯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아무것도 모르지만 손만은 무언가를 아는 듯한 표정으로 피아노를 만지던 아이.
조성진의 음악을 앞으로 더 듣고 싶다.
스트라빈스키 음악이라 소개하며, 클라리넷을 불던 소년
숲 속의 초식동물 처럼 두리번두리번 눈빛과 스윽스윽 몸짓으로 후우후우 소리를 내던 소년.
아 전철이 새벽까지 있다면 좋을 걸
벽에 기대어 앉거나 누울수 있는 자리를 찜해둘 걸
장롱면허지만 차를 한 번 가지고 올까, 이 참에.
아쉬웠다
더 듣지 못한 것이
더 알지 못하는 것이
더 알지 못하는 것 보다는 더 듣지 못하는 것이.
6시부터 11시까지 후끈한 다섯 시간을 지내고 나오니
밖은 아직, 겨울이었다
찬 바람을 맞으며 처음 들었던 생각
아 꼭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지 않아도 그런 듯한 시간이 있구나.
이 순간들을 어떻게 지속하게 할 수 있을까.
술과 담배와 음악에 의지하지 않고 나 혼자만의 시간에도 이 느낌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는걸까.
오늘 아침, 친구에게 물었다.
좋은 노래가 있으면 내게 전화를 해 "이건 숙명 가야금 25현 변주곡 도라지고, 이건 티벳 스님들의 노랫 소리고, 이건 내가 좋아하는 여자 보컬 수잔 베가 목소리야." 라며 다짜고짜 들으라고 연결해주던 자칭타칭 원서동 DJ.
"어젯 밤에 소리가 몸으로 들어왔어요. 어떻게 이 느낌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친구가 나한테 답했다.
"노력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 상태로 있으면 노력하지 않아도 그 느낌도 망가지지 않는다우. 잡으려하면 달아나는 나비 처럼."
소리가 몸에 들어온 밤이었다.
오랫동안 막혀 있던 귀가 뚫렸다.
2009. 12. 24
하우스 Gala 콘서트 관람 후기
나는 음악을 모른다.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음악을 죽도록 많이 들은 매니아도 아니다.
오히려 음악을 거의 듣지 조차 않았다.
최근 읽은 최영미씨의 에세이집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에서 거의 절대적인 동감이 간 문장 하나가 있었다.
"오랫동안 내 귀는 막혀 있었다. 내 속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느라 바깥 세계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 4년 전쯤, 친구 하나가 물었다.
"너 음악 안듣지?"
내가 대답했다.
"응."
아니야! 나도 듣는다구! 뭔가 항의하듯 방어하듯 말하고 싶었지만 역시 나는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게 사실이었다.
어릴때부터 텍스트와 영상에는 매몰되어 있었다. 나 만의 방에서. 잡다하게 손에 잡히는 데로 보고 읽었다.
하지만, 음악은 아주 가끔 내 의식 혹은 방어벽을 느닷없이 뚫고 훅 들어오는 소리들이 가끔 있었을 뿐, 그 외에는 적막이었다.
아무 소리도 없는 침묵 상태가 가장 편했다.
귀에 음악이 들어오지 않아 콘서트에 가지도, 씨디를 틀지도, 라디오를 듣지도 않았다.
내겐 음악은 들어오지 않는 세계였고, 모르는 세계였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내게 소리는 없었다.
그런 내가 한 4년 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일렉 기타를 계속 연주하고 싶다던 그 친구가 내게 Pat Metheney, Jeff Beck, Thelonius Monk, Jimi Hendrix, Miles Davis, Mahavishnu Orchestra ....
자기가 좋아하는 재즈 플레이어들의 씨디를 내게 무더기로 던져주었다.
아 놔, 완죤 초짜한테 너무하잖아.
"그냥 들어 봐. soul 이 느껴지지 않냐."
다소 오바스러운 제스쳐와 말투에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다.
뭐야, 왜 자기 취향을 나한테 들이대고 난리야.
근데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허풍이라고 느낀 외피 안에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린 소년이 들어 있었다. 침묵에서 위안을 얻었던 나와는 반대로 음악에서 위안을 얻었던 그 어린 소년을 만난 이후로, 난 그가 추천해주는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좋았다.
그 외에 그 음들을 내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냥 좋았다.
그 친구가 강추하며 빌려줬던 재즈 만화 <Jazz it up!>을 읽으며 뉴욕의 한 음악 빠에서 잼 세션을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음악으로 대화를 한다는 건 어떤걸까. 그들의 소리가 내게도 전해져 올까? 알아들을 수 있을까? 못알아듣지 않을까?
2-3년 전 쯤에 또 한 언니를 만났다.
언니가 꾸며놓은 작은 공간과 물건들이 마음에 들어 쥔장과 손님으로 만났는데, 내게 조금씩 조금씩 음악을 틀어줬다.
Iggy Pop, Janis Joplin, Goran Gregovic, Nick Drake, Rufus Wainwright, Ry Cooder, Tom Waits, Bob Dylan, Mikis Theodorakis, Francoise Hardy...
매일 아침마다 언니는 블로그에 음악을 올렸고, 나는 언니가 틀어주는 대로 들었다.
언니가 올리는 음악과 사진을 통해 오늘 언니의 기분과 컨디션을 가늠해보면서.
언니 오늘은 기분이 좋은가봐, 오늘은 좀 우울한가, 오늘은 잘 모르겠네?
언니는 나의 알프레도, 나는 언니의 토토, 하면서.
그리곤 박창수의 하우스 콘서트를 알게 되었다.
작은 집에서 음악을 만날 수 있는 시간, 예전 연희동에서 한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한 번 가 보고 싶다.. 하다가 몇 년을 넘겼다.
기회가 닿지 않기도 했고, 왠지 뻘쭘하기도 할 거 같아서..
클래식은 지루하지 않을까? 하기도.
요번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찾다가 뻘쭘한 다른 큰 공연장 공연들을 제꼈다.
큰 공간이 아닌 작은 공간에서, 대형 기획사가 아닌 한 사람 그리고 그를 도우는 여러 스탭들로 이루어진 소소한(소소하지만은 아닐수도 있지만) 음악 공동체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연말 갈라 콘서트라 그런지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정신이 없고 바람이 통하지 않아 숨이 막혔다.
미리 5만원을 내고 예약을 했지만(예약 오픈 23분만에 예약 종료! 난 2분만에 예약했는데, 30번째였다는-_-), 어떤 음악을 들을지, 어떤 연주자들이 나올지, 전혀 공개하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방에 앉아있었다.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고도 5만원을 요구하는데, 생전 초짜인 나 같은 사람이 잘 알지도 보지도 못한 어떤 한 사람의 느낌과 안목을 믿고 간다는 건, 뭘까. 나도 그게 뭔진 모르겠고,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그렇게 해버렸다.
그래도 될 거 같았다.
아카펠라, 클래식, 국악, 성악, 가요, 즉흥 연주 ..
이 곳에서 그 동안 함께해왔떤, 혹은 앞으로 함께할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좋았다.
이 단순하고 성의없어 보이는 단어 하나 밖엔.
사람 목소리, 피아노, 가야금, 비올라, 바이올린, 기타, 드럼들을 미리 공개하지 않은 그래서 더 궁금궁금 기대했던 소리들.
꽃별과 강산에님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숨겨둔 발견.
마리화나를 깊이 들이마신다면 이런 느낌일까, 마약 보다 더 귀한 선물.
Jeux d"enfants. 아이들의 놀이 라는 제목 처럼, 어린 소년 둘이 피아노를 가지고 노는 유쾌한 놀이였다.
바깥 쪽에 앉아있던 어린 소년의 감수성이 눈에 확 띄었다.
저 아이의 연주를 더 들어보고 싶다.
공식 프로그램 2부까지 끝나고 3부에서 자유연주를 하는데 "스읍 스읍" 침소리까지 내가며 몰입하는 연주를 들었다.
꼬마의 재기발랄함과 저토록 뛰어난 재능 사이의 균형을 어쩜 저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지니고 있을까.
김선욱씨의 피아노 소리는 혼을 두드리려는 시도
푸르고 노란 달빛에 물들어가는 물결
달 빛 받은 돌담 위에 잔잔하게 출렁이는 물결 그림자
저렇듯 젊은 나이에 이렇듯 깊고 잔잔한 소리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
피아노와 사랑을 나눈다면 그와 같을까
떠벌리는 기교, 보여주는 으스댐 없이 어찌 저렇게 피아노를 조용한 열정으로 어루만질 수 있을까
그의 차분한 피가 낮게 들끓는 온도로 그의 손을 타고 올라와 건반을 두드리다가 내 핏줄 안으로 스며들었다
송정아씨의 가야금
25현 가야금이었나?
추적추적 한 스럽게, 그리고 또르르르 하프 스럽게 한 오백년이 울었다
박창수씨와 김책님의 피아노-드럼 즉흥 연주
우왓 저것이 Jazz it up 만화에서 침 줄줄 흘리던 연주자들 사이의 즉흥 연주?
피아노와 드럼의 대화
실험적인 놀이
서로 귓속말 하다가, 겨드랑이와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다가, 온갖 물건들을 다 깨트릴 정도로 으르렁대다가, 또
논다.
박창수님의 강렬하고 노련한 연주가 신선했지만 동시에 내겐 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으나, 김 책님이 드럼을 갖고놀며 피아노 변화에 잔뜩 집중하여 맞추어가는 모습이 재밌었다.
강산에씨는 늘 느끼는 거지만, 리듬, 언어, 이야기, 기타를 자유자재로 갖고 논다.
유쾌하게 애잔하게
달래면서 휘두르며
저잣거리 중이나 음유시인의 몇 백년 전 얼굴이 그의 얼굴과 닮았을까.
노래를 부르며 도를 닦아가는걸까.
꽃별의 히칸바야에선 꽃별보다 꽃별과 함께 연주한 유웅렬씨의 기타 줄 소리가 뼈를 건드렸다.
작고도 길고도 가는 뼈를 손으로 타는 걸까.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건 공식 프로그램 1 & 2부가 끝나고
담백한 간식과 자몽주스, 와인을 마시고
비공식 아무것도 정해져있지 않은 3부!
9시 30분부터 차가 끊길 걱정에 더 듣고 싶어도 종종걸음으로 나와야했떤 11시 15분 정도까지 이어지던 남은 연주자들의 자유 연주.
와인 한 병을 자기 앞에 갖다두더니 홀짝 홀짝 비우고 다시 나가서 치던 김선욱님의 슈베르트 연주(맞나?).
빛을 어루만지던 고요한 소년의 손길이 저토록 세월을 경험한 어른의 손이 될 수도 있구나.
꼬맹이 둘이 치던 애 중 한 명의 또 다른 즉흥 연주(조성진).
스읍 스읍
피아노를 처음 연주하는 듯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아무것도 모르지만 손만은 무언가를 아는 듯한 표정으로 피아노를 만지던 아이.
조성진의 음악을 앞으로 더 듣고 싶다.
스트라빈스키 음악이라 소개하며, 클라리넷을 불던 소년
숲 속의 초식동물 처럼 두리번두리번 눈빛과 스윽스윽 몸짓으로 후우후우 소리를 내던 소년.
아 전철이 새벽까지 있다면 좋을 걸
벽에 기대어 앉거나 누울수 있는 자리를 찜해둘 걸
장롱면허지만 차를 한 번 가지고 올까, 이 참에.
아쉬웠다
더 듣지 못한 것이
더 알지 못하는 것이
더 알지 못하는 것 보다는 더 듣지 못하는 것이.
6시부터 11시까지 후끈한 다섯 시간을 지내고 나오니
밖은 아직, 겨울이었다
찬 바람을 맞으며 처음 들었던 생각
아 꼭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지 않아도 그런 듯한 시간이 있구나.
이 순간들을 어떻게 지속하게 할 수 있을까.
술과 담배와 음악에 의지하지 않고 나 혼자만의 시간에도 이 느낌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는걸까.
오늘 아침, 친구에게 물었다.
좋은 노래가 있으면 내게 전화를 해 "이건 숙명 가야금 25현 변주곡 도라지고, 이건 티벳 스님들의 노랫 소리고, 이건 내가 좋아하는 여자 보컬 수잔 베가 목소리야." 라며 다짜고짜 들으라고 연결해주던 자칭타칭 원서동 DJ.
"어젯 밤에 소리가 몸으로 들어왔어요. 어떻게 이 느낌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친구가 나한테 답했다.
"노력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 상태로 있으면 노력하지 않아도 그 느낌도 망가지지 않는다우. 잡으려하면 달아나는 나비 처럼."
소리가 몸에 들어온 밤이었다.
오랫동안 막혀 있던 귀가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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