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기다린 하콘 세미나
  • 등록일2009.12.07
  • 작성자김주희
  • 조회4192
12월.

아직 크리스마스 트리도, 캐롤송도 흐드러지진 않았지만
가는 해가 아쉬워 올해의 남은 날 동안이라도 무언가 ‘의미 있는’
그리고 ‘재미난’ 시간으로 보내야겠다는 다짐으로 충만한 날들이다. .

그런 12월의 어느 날에, 매년 하우스 콘서트의 세미나가 열린다.
신명 나는 콘서트도, 그렇다고 조용하고 감동스런 음악회도 아닌 세미나!
그것도 단순히 ‘철학~ 어쩌고 저쩌고’라고 소개된 올해의 이 세미나에 누가 갈까 싶었다.
하지만 언제든 사람들은 조용히 찾아온다.

각 연사들의 소개와 박창수 선생님과의 인연, 그리고 음악과 관련된 여러 일화들이 소개되었다.
다소간 잡담으로도 느껴졌지만 우리는 저 사람들이 누군지,
왜 하우스 콘서트의 세미나에서 우리와 만나게 되었는지 알아야만 했다.

철학인지 신학인지 이름조차 생소한 여가학인지,
영국의 철학인지 프랑스의 철학인지, 혹은 중국의 철학인지..
클래식인지 재즈인지 혹은 대중음악인지..

어떤 정해진 틀에 맞추어 넣을 수 없는 수 많은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음악은 그들 각자에 의해 의미가 부여되거나 혹은 이미 내재된 어떤 의미가
그들의 깊고 넓은 안목으로 알아내지고, 해석 되어져 끊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멀 것만 같은 동서양의 음악과 그에 관한 생각은 ‘통’해 있었고
짧은 대중음악의 역사(적어도 클래식 음악에 비해서라도)는 우리 사회, 우리 대중의 역사와 닮아 있었으며
근대이니, 현대이니, 소음이니 등의 음악에 관한 사소한 단어들 조차 재해석 되고 있었다.

음악은 연사 각자의 주 관심사(전공분야라 할 수 있는)에 걸 맞는 생각으로 해석되어져
단순히 음악에 대한 정의와 관련된 지식보다는
그 음악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사회의 반응에 이야기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는 연사들의 해박한 지식과 거침없는 입담으로 조금도 지루할 틈 없었던 이어졌고
이에 조용하지만 날카롭고, 연사들만큼이나 자기 주장으로 가득 찬 관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 자리를 통해 어떠한 것을 얻고자 했거나 무엇인가를 느끼고자 했던 우리들은
분명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쏟아진 이야기들이 딱히 이해가 되지 않게 어려운 것만도 아니었는데
내가 알고 있던 지식, 내가 수긍했던 지식, 내가 가졌던 생각,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세미나를 통해 그들과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깊은 생각만큼이나 쉽게 융화될 수 없었던 그들과 우리, 혹은 우리들 간의 의견이
다소간의 불꽃을 튀기기도 했지만
이러한 충돌의 소중한 가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수동적으로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능동적인 생각을 동시에 이끌어 낼 수 있었던 뜻 깊은 시간이었다.

오늘의 연사, 그들이 학창시절 ‘노상’ 그랬던 것처럼,
(술이라도 한 잔 하며) 밤 새 듣고, 떠들고, 묻고, 부딪히고, 화해졌더라면
오늘의 세미나는 네 명의 빛나는 연사들과 함께 무엇보다 충만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에는 술잔도 없는, 그들과 밤을 새울 용기도 없었던 우리들은
하우스 콘서트의 조용하지만 특별한 세미나를 찾아온 것임을 그들이 조금만 더 알아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2시간이 넘었던 그 시간을 소리로만 돌이켜 본다면
시종일관 강력하고, 끊임없고 그래서 때론 정신 없고 빠져들었다 의구심에 고개를 드는,

그것은 내가 철학이란 것에 대해 얄팍하게 느끼고 있던 인상,
철학의 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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