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성
  • 등록일2009.11.15
  • 작성자BONA
  • 조회3837
도시의 밤 하늘을 날아 본 적이 있다. 매우 황홀한 경험이었다.
기류를 탄 것도 아니고 날개를 단 것도 아니다. 맨 몸으로 그냥 날았다.
수 년전 단 한 번 꾸었던 꿈인데 마치 겪었던 일처럼 지금도 생생하다.

빌딩으로 빼곡한 도시의 밤은 때로 천박함을 숨기고 있지만
현실과 환상이 교차되는 매혹적인 공간이다.
연주홀의 음향 반사판이 아닌
전면 유리 가득 밤의 도시를 담아낸 황홀한 무대에서 음악회가 있었다.
그 매혹적인 무대에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얼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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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하우스 콘서트를 찾게 된 건 얼후라는 악기 때문이었다. 음반을 통해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얼후의 음색을 실제로, 무엇보다 가까이 느끼고 싶었다. 그러한 바람을 훌쩍 넘어 뛰어난 연주자를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러한 기회는 하우스 콘서트가 아니면 불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후를 설명으로만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해금을 떠올리며 갔다. 얼마 전에 기막힌 연주로 해금 연주를 들었는데 그 전까지는 제대로 된 연주를 들어 볼 기회가 없어 그 울음소리 같은 음색을 그저 특징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야금과 함께 한 그 날의 해금 연주는 도드라지지 않게 조용히 울며 소리를 삼키고 있었다. 음악 이면의 깊은 감정을 느꼈다.

어제 연주에서는 피아노 트리오의 바이올린 자리를 얼후가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편성이지만 낯 설 것 없이 자연스럽고 소리의 조화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내는 얼후의 음색이 대단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첼로만큼 끌어안는 악기는 아니지만 지아펭팡의 모습은 연주라기보다 악기와 교감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한 없이 부럽고..... 아름다웠다.

사람의 목소리가 성격과 삶을 담아내듯 악기도 만들어진 배경과 역사를 담는다. 그렇기에 목소리의 어울림이 있는 것 처럼 악기도 어울림이 있다. 때때로 조화롭지 않게 편성되거나 편곡된 크로스오버나 퓨전 연주를 듣다보면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전에 얼후의 정통 연주를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없긴 하지만, 이 날 연주에서 들었던 모든 곡이 악기와 상당히 잘 어울렸다. 중국의 전통 악기로 연주하는 재즈와 탱고가 그렇게 멋질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프로그램의 모든 곡이 좋았음에도 얼후만의 음색을 깊이 있게 느껴 볼 수 있는 곡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마침 나와 같은 바람을 가졌던 청중의 요청으로 특별한 앵콜 한 곡을 들을 수 있었다. 악기를 통해 특정한 소리를 모방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지만 얼후의 경주마 소리는 감탄스러웠다. 슈베르트의 "마왕"이 말발굽 소리를 흉내냈다면 얼후의 말발굽 소리는 거의 모사에 가까웠다. 곡의 마지막 부분 악기에서 흘러나온 말의 울음소리는 잠시 환청을 들은 듯 착각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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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옮겨 다니는 공연장을 찾아다니는 일이 불편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날 공연에서 만난 특별한 무대를 경험하면서
앞으로 어떤 새로움과 만나게 될지 기대하게 되니 설렌다.
어제 공연에서 밤의 도시를 무대로 황홀한 음악에 취해있는 동안
천공의 성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전에 도시의 밤 하늘을 날았던 꿈과 교차되어
이후로는 현실과 혼동되는 묘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이런 설렘을 늘 준비해 주시는 분들에 대한 감사한 기억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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