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순이 후기
  • 등록일2009.06.04
  • 작성자이루미
  • 조회4619
안녕하세요? 6월 2일 연주때 박종화 교수님의 page turner를 했던 이루미입니다.
관객석에서 감상한 것이 아니고 연주하시는 교수님의 손과 악보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온 신경을 악보 넘기는데 쏟아부었으니 "관람기"라기보다 "넘순이후기"가 맞겠다 싶네요.
사실 박창수 선생님께 이런저런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많아서 쓰는 개인적 편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

우선 그날, 본의 아니게 연주자들보다 훨씬 일찍 혼자 도착한 덕분에 박창수 선생님과 개인적인 대화의 시간을 몇분 가진 영광을 누렸습니다. "하우스콘서트"책을 읽은 후 참 멋진 일 하신다,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 어떤 분인지 궁금하다, 하는 생각에 지난 224회 연주를 처음 갔었는데 제 생각과 달리 박창수 선생님은 물론 연주자들과도 개인적으로 대화를 하거나 친밀함을 느낄 기회는 없더군요. 그랬는데 이번에 그렇게 대화할 기회가 있어서 기뻤습니다.
책 읽으면서 학교 선배이신 것에 괜시리 반가웠었는데, 제가 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민정 선생님과 동기이시라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랐고 더 반가웠습니다. 제가 조금 더 붙임성이 좋고 말주변이 있었더라면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나중에는 본격적으로 리허설 및 연주 준비를 하시느라 바쁘실 것 같아서 저는 조용히 대기실의 피아노를 띵똥거리며 혼자 놀았더랬죠...^^;;

연주에 관해서는 저도 다른 분의 후기가 기다려집니다. 저희 교수님의 연주이다보니 다른 분들이 어떻게 들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옆에서 본 제가 느낀 바로는 멀리서 온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연주한다는 자체로 교수님께서 다른 때보다 한결 들뜨시고 매우 즐거우셨던 것 같습니다. "하우스콘서트"라는 공간과 그 컨셉에도 굉장히 스스로 빠져들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연주 시작을 5분정도 앞두고 대기실에 있었는데 문득 교수님과 바이올리니스트의 발을 보니 두분 다 맨발인거예요. 그래서 교수님께 말씀드렸죠.
"선생님, 이제 구두 신으실거죠?"
"아니, 맨발로 할건데"
"연주자들은 마루에 구두신고 서도 돼요~"
"아니 우리가 그냥 맨발로 하기로 했어"(매우 신난 표정을 지으시며)
"그, 그럼 저는..... 그냥 구두 신어도 되죠?"
"우리 다 맨발인데 너만 신으려고?"
".......네 저도 구두 벗을게요" ㅠ_ㅠ
이리하여 다리도 굵어서 하이힐을 생명의 축으로 여기는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맨발의 page turner가 되었답니다.

게다가 연주자들이 끝나고 대기실에서 떠날 채비만 하다가 슝 가버린게 조금 실망스러웠던 224회 연주와는 달리, 이번 연주 후에는 오히려 모든 관객들이 다 떠난 뒤에도 자기들끼리 신나서 피아노치고 놀며 자리를 뜰 줄 모르던 연주자들 때문에 박창수 선생님께서 난감하셨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박종화 교수님이 참 천진한 분이세요...^^;;

마지막으로 이번 연주를 통해 개인적인 자극을 받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프로그램을 읽으니 바이올리니스트 Daniel Garlitsky의 나이가 26세에 불과하더군요. 저보다 몇살 많지 않은.... 실력과 외모만 보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쳇
저 사람은 저 나이에 벌써 세계를 다니는 프로 연주자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부럽고 분하고(?) 뜨겁게 올라오는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참 오랜만에요. 다음달에 떠나는 유학길에 좋은 자극제가 될 것 같아요.

박창수선생님! 책에서 선생님의 기억력이 "상상, 그 이상"이라는 글귀를 읽었기 때문에 저 기억해주시라고 일부러 이렇게 글 남기는 겁니다. 저 유학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무지 훌륭한 피아니스트 되어서 돌아올건데, 그때가 되면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꼭 서고 싶습니다. 넘순이가 아닌 연주자로요.
그때까지 계속 발전하시길 바라며, 유학 가기전에 어머니 모시고 또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하콘!^^

p.s- 다시보기 동영상은 Chausson 곡을 올려주실건가요?^^ 그 곡의 2악장과 4악장 꼭 다시 듣고 싶은데 (특히나 객석에서 감상하지 못한 저로서는) 4악장은 너무 길어서 안될까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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