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불고. 아가는 자고, 우리는 흐르고...
- 등록일2009.06.03
- 작성자이숙인
- 조회4040
가끔 살아있다는 게 눈물나게 고마운 시간이 있다.
오늘 밤이 꼭 그랬다.
생애 처음 찾은 하우스 콘서트, 하필 마지막이라 했다, 물론 그 장소에서지만
조금은 섭섭했다.
집에 돌아와 홈피를 찾아 보았다.
서울이란 거대 도시에서 작고 예쁜 섬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당장 회원 가입하고 지난 사진들을 죽 보니 연희동 시절도 참 좋았겠다 싶다, 통유리가 멋지다.
그리곤 갑자기 고개를 떨군다,
세상에 난 여지껏 이 좋은 걸 왜 몰랐을까...!
아, 만시지탄이로다.
오늘 이곳을 찾은 계기 역시 자가 발전은 아니었다.
그냥 토요일마다 만나 종일 같이 뭔가를 하며 죤, 이라 부르던 한 남자, 그가 세상에 이름 난 피아니스트인 줄 이제야 첨 알게 된 나로선 경악과 흥분의 순간까지, 그런 예기치 않은 즐거운 선물까지 맛보게 된 것! 그러니까 다시 말해 죤은 나와 함께 토요일마다 여의도에서 만나 하루종일 라자 요가 티칭 코스를 하는 여러 친구들의 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적어도 오늘밤까지는. 물론 요가의 정신 안에서야 그는 늘 그저 죤일 뿐이다. 목소리가 옴, 만트라를 하기 아주 적합한, 흣.
그렇게 그의 초대로 왔다, 그런데, 그는 내게 이제부터 은인이다.
예당에서 오래 전 바로 코 앞에서 만난 요요마의 땀 범벅 연주 이후,
어느 지방 공단의 콘서트 홀, 눈 앞에서 지켜본 백 건우의 기적같은 선율 이후,
세 번째, 아주아주 오랫만에 그 연주들 결코 못지않던,
사실 생동감 하나만으론 생전 처음 맛본 굉장한 강도, 내내 눈앞에서 살아 꿈틀거리던 그 시간, 그동안 딱딱하게 굳고 터지고 아프기만 하던 앙가슴 안으로 돌연 음악이란 것이 훅, 빨려 들어와 샅샅이 아픈 몸과 마음 구석구석을 만져주고 위안하고 즐거이 노니던 시간, 꿈처럼, 믿을 수 없는 두 시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저녁 6시경, 바람은 부는데 여의나루역에서 아차산역까진 제법 멀었다.
죤은 그저 지나가는 것처럼 음악회 초대 이야길 꺼냈고 이멜을 받았을 때까지도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하우스 콘서트라는 이름을 접하자마자 갑자기 흥미가 솟구쳤었다.
혹 "이 시스템 부재의 괴물같은 나라",에도 진짜가 아직, 아니 이미, 아니 이제는, 기어이 시작되고 있는 것일까...?
명성, 규모, 수익, 폼, 근엄, 그들만의 클래식 세계, 로 박제화된 것 같던 그 세계에도 뭔가 새로운 바람이 나 모르게 진작부터 솔솔 불고 있었던 걸까. 그간의 과문과 무지를 몹시 부끄러워하며 홈페이지를 한번 훑고 어젯밤 바로 결심했다, 가 봐야지.
작고, 세심하고, 제대로이고, 천천히 가고, 진심이 배어있고, 그리고, 교감하고 나누고
같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끼리 즐거이 하나가 되고, 그리고 다시 또 우연히 조우하고, 조용히, 낮게,
천천히, 제대로...그런 좋은 예감 속에 먼 길을 나서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마룻바닥일 줄은, 세상에...그래도 나름 예를 차린다고 긴 원피스에 머플러까지 살짝 둘렀는데 나무로 된 마룻바닥은 원래 요가할 때 최고이고 나야 평소에도 애호하는 것이지만
실내악 연주회에서까지는 감히 상상을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난 평소 스타킹 거부, 면 양말 아님 맨발주의자, 당연히 구두 속에 얌전히 가려진 두 발은 날 것 그대로. 와우, 어쩌나.
하지만, 죤의 등장, 뒤이어 또다른 맨발의 바이얼리니스트 등장! 난 속으로 안도하며
춤까지 출 듯한 재미난 기분으로(세상에 나무로 된 바닥, 맨발의 연주라니!) 편안하고 안온하게 연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었던 거다.
연주가 시작되자 죤은, 하얀 셔츠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시시때때로 물구나무서기 서로 도와주던 조용한 남자가 더 이상 아니었다. 이 사람이 누군가, 할 만큼의 놀라운 포스, 전혀 새로운 모습, 기막히게 집중된 연주...! 적확하고 부드러우며 때로 거칠고 깊이 있던 그의 연주, 난 귀도 눈도 서툰 감상자이지만 혀만은 조금 발달한 터, 어떤 어휘로도 상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바이얼린 연주 또한 그 못지 않게 아름다왔다. 땀방울방울방울, 실금 하나하나까지 보이던 무수한 표정의 향연, 침 삼키는 소리, 숨 고르는 소리, 그에 따른 섬세한 리듬과 멜로디의 일치감...!악기까지 살아 움직이는 표정과 소리,아, 이게 바로 하우스 콘서트의 묘미로구나, 싶었다.
10분 동안의 휴식 중에는 죤의 초대로 함께 참석한 크리스티나와 반가운 해후, 그녀는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 조금은 놀라는 눈치였다. 이윽고 마지막 세션, 바로 뒷자리에 길게 뉘인 아가가 곤히 잠을 자며 가는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기분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네 명의 남자들이 마치 작은 군단처럼 씩씩하게 무대로 합류했다. 앗, 근사하다, 요샛말로 진짜 "간지"가 났다. 블랙 수트 앤드 역시 두 명은 맨발, 두 명은 검은 양말...자연스럽고 편안했다.
무대 쪽이 그들 여섯 남자의 기운으로 가득차면서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숨 죽여 완전히 몰입했고 잠든 아가는 더 깊이 쌔근거렸다. 이어 그들과 우리 모두의 음악은 해일처럼 공간 가득 밀려 들어와 광폭하게 때로 조화롭게 시공과, 거기 있던 모든 존재와, 악기와 악보까지도 혼연일체가 되어 때로 거칠고 또 섬세하게 콸콸 흐르기 시작했다.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후에 앵콜로도 재연되었던 시실리언,이 흐를 땐 그 미묘하고 나직한 서정성에 두 눈이 잠시 젖을 뻔도 하였다.
기가 막히다, 라는 것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어휘가 아닐까...?
네 남자의 현들은 두 남자의 선율과 완벽하게 일치되었다. 그러다간 다소 거리를 두었다 마구 뒤섞였다 노래했다 심지어 한데 어우러져 춤까지 추는 듯했다. 물아일체, 몰아지경은 역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사자성어였나 싶다. 그래, 이건 지나친 아부나 흥분이 결코 아니다, 그냥 느껴지는 대로, 평소 습관처럼 조금은 과도하게 사용되는 혀의 충고대로 술술 적어나가는 것이다.
연주회 간간이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답게 나는 생각했다.
"너무 고맙다, 이런 경험을 단돈 2만원에...!"
소박하고 정겨운 와인 파티 때 존에게 고개 숙여 감사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여기 오기 전 열흘을 꼬박 두 가지 일로 끙끙 앓았어요, 너무 끔찍한 이 나라 시국 때문에, 그리고 너무 지독한 영화 한 편 때문에, 가슴이 와르르 무너졌었어요, 그런데 오늘 그게 다 나은 거 같아요. 음악이 내 가슴으로 성큼 뛰어 들어와 날 안아주었어요. 클래식은 기본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지향하나봐요, 아무리 모던하고 아무리 불협화음을 실험하는 것이라 해도, 선율 자체가 우주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나봐요, 감사해요, 죤, 나, 오늘 연주 덕분에 그동안의 무력과 우울에서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합니다, 하콘의 모든 분들,
특별히 오늘 첫 만나 본 수채화 같은 얼굴과 웃음의 진행자, 주최자, 호스트, 고마운 박 창수님!
때로 삶은 참 살만한 것인가봐요, 아무리 우리 사는 나날이
어둡고 지리멸렬, 끝없는 터널같대도, 말입니다, ...그렇지요...?
오늘 밤이 꼭 그랬다.
생애 처음 찾은 하우스 콘서트, 하필 마지막이라 했다, 물론 그 장소에서지만
조금은 섭섭했다.
집에 돌아와 홈피를 찾아 보았다.
서울이란 거대 도시에서 작고 예쁜 섬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당장 회원 가입하고 지난 사진들을 죽 보니 연희동 시절도 참 좋았겠다 싶다, 통유리가 멋지다.
그리곤 갑자기 고개를 떨군다,
세상에 난 여지껏 이 좋은 걸 왜 몰랐을까...!
아, 만시지탄이로다.
오늘 이곳을 찾은 계기 역시 자가 발전은 아니었다.
그냥 토요일마다 만나 종일 같이 뭔가를 하며 죤, 이라 부르던 한 남자, 그가 세상에 이름 난 피아니스트인 줄 이제야 첨 알게 된 나로선 경악과 흥분의 순간까지, 그런 예기치 않은 즐거운 선물까지 맛보게 된 것! 그러니까 다시 말해 죤은 나와 함께 토요일마다 여의도에서 만나 하루종일 라자 요가 티칭 코스를 하는 여러 친구들의 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적어도 오늘밤까지는. 물론 요가의 정신 안에서야 그는 늘 그저 죤일 뿐이다. 목소리가 옴, 만트라를 하기 아주 적합한, 흣.
그렇게 그의 초대로 왔다, 그런데, 그는 내게 이제부터 은인이다.
예당에서 오래 전 바로 코 앞에서 만난 요요마의 땀 범벅 연주 이후,
어느 지방 공단의 콘서트 홀, 눈 앞에서 지켜본 백 건우의 기적같은 선율 이후,
세 번째, 아주아주 오랫만에 그 연주들 결코 못지않던,
사실 생동감 하나만으론 생전 처음 맛본 굉장한 강도, 내내 눈앞에서 살아 꿈틀거리던 그 시간, 그동안 딱딱하게 굳고 터지고 아프기만 하던 앙가슴 안으로 돌연 음악이란 것이 훅, 빨려 들어와 샅샅이 아픈 몸과 마음 구석구석을 만져주고 위안하고 즐거이 노니던 시간, 꿈처럼, 믿을 수 없는 두 시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저녁 6시경, 바람은 부는데 여의나루역에서 아차산역까진 제법 멀었다.
죤은 그저 지나가는 것처럼 음악회 초대 이야길 꺼냈고 이멜을 받았을 때까지도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하우스 콘서트라는 이름을 접하자마자 갑자기 흥미가 솟구쳤었다.
혹 "이 시스템 부재의 괴물같은 나라",에도 진짜가 아직, 아니 이미, 아니 이제는, 기어이 시작되고 있는 것일까...?
명성, 규모, 수익, 폼, 근엄, 그들만의 클래식 세계, 로 박제화된 것 같던 그 세계에도 뭔가 새로운 바람이 나 모르게 진작부터 솔솔 불고 있었던 걸까. 그간의 과문과 무지를 몹시 부끄러워하며 홈페이지를 한번 훑고 어젯밤 바로 결심했다, 가 봐야지.
작고, 세심하고, 제대로이고, 천천히 가고, 진심이 배어있고, 그리고, 교감하고 나누고
같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끼리 즐거이 하나가 되고, 그리고 다시 또 우연히 조우하고, 조용히, 낮게,
천천히, 제대로...그런 좋은 예감 속에 먼 길을 나서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마룻바닥일 줄은, 세상에...그래도 나름 예를 차린다고 긴 원피스에 머플러까지 살짝 둘렀는데 나무로 된 마룻바닥은 원래 요가할 때 최고이고 나야 평소에도 애호하는 것이지만
실내악 연주회에서까지는 감히 상상을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난 평소 스타킹 거부, 면 양말 아님 맨발주의자, 당연히 구두 속에 얌전히 가려진 두 발은 날 것 그대로. 와우, 어쩌나.
하지만, 죤의 등장, 뒤이어 또다른 맨발의 바이얼리니스트 등장! 난 속으로 안도하며
춤까지 출 듯한 재미난 기분으로(세상에 나무로 된 바닥, 맨발의 연주라니!) 편안하고 안온하게 연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었던 거다.
연주가 시작되자 죤은, 하얀 셔츠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시시때때로 물구나무서기 서로 도와주던 조용한 남자가 더 이상 아니었다. 이 사람이 누군가, 할 만큼의 놀라운 포스, 전혀 새로운 모습, 기막히게 집중된 연주...! 적확하고 부드러우며 때로 거칠고 깊이 있던 그의 연주, 난 귀도 눈도 서툰 감상자이지만 혀만은 조금 발달한 터, 어떤 어휘로도 상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바이얼린 연주 또한 그 못지 않게 아름다왔다. 땀방울방울방울, 실금 하나하나까지 보이던 무수한 표정의 향연, 침 삼키는 소리, 숨 고르는 소리, 그에 따른 섬세한 리듬과 멜로디의 일치감...!악기까지 살아 움직이는 표정과 소리,아, 이게 바로 하우스 콘서트의 묘미로구나, 싶었다.
10분 동안의 휴식 중에는 죤의 초대로 함께 참석한 크리스티나와 반가운 해후, 그녀는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 조금은 놀라는 눈치였다. 이윽고 마지막 세션, 바로 뒷자리에 길게 뉘인 아가가 곤히 잠을 자며 가는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기분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네 명의 남자들이 마치 작은 군단처럼 씩씩하게 무대로 합류했다. 앗, 근사하다, 요샛말로 진짜 "간지"가 났다. 블랙 수트 앤드 역시 두 명은 맨발, 두 명은 검은 양말...자연스럽고 편안했다.
무대 쪽이 그들 여섯 남자의 기운으로 가득차면서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숨 죽여 완전히 몰입했고 잠든 아가는 더 깊이 쌔근거렸다. 이어 그들과 우리 모두의 음악은 해일처럼 공간 가득 밀려 들어와 광폭하게 때로 조화롭게 시공과, 거기 있던 모든 존재와, 악기와 악보까지도 혼연일체가 되어 때로 거칠고 또 섬세하게 콸콸 흐르기 시작했다.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후에 앵콜로도 재연되었던 시실리언,이 흐를 땐 그 미묘하고 나직한 서정성에 두 눈이 잠시 젖을 뻔도 하였다.
기가 막히다, 라는 것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어휘가 아닐까...?
네 남자의 현들은 두 남자의 선율과 완벽하게 일치되었다. 그러다간 다소 거리를 두었다 마구 뒤섞였다 노래했다 심지어 한데 어우러져 춤까지 추는 듯했다. 물아일체, 몰아지경은 역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사자성어였나 싶다. 그래, 이건 지나친 아부나 흥분이 결코 아니다, 그냥 느껴지는 대로, 평소 습관처럼 조금은 과도하게 사용되는 혀의 충고대로 술술 적어나가는 것이다.
연주회 간간이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답게 나는 생각했다.
"너무 고맙다, 이런 경험을 단돈 2만원에...!"
소박하고 정겨운 와인 파티 때 존에게 고개 숙여 감사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여기 오기 전 열흘을 꼬박 두 가지 일로 끙끙 앓았어요, 너무 끔찍한 이 나라 시국 때문에, 그리고 너무 지독한 영화 한 편 때문에, 가슴이 와르르 무너졌었어요, 그런데 오늘 그게 다 나은 거 같아요. 음악이 내 가슴으로 성큼 뛰어 들어와 날 안아주었어요. 클래식은 기본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지향하나봐요, 아무리 모던하고 아무리 불협화음을 실험하는 것이라 해도, 선율 자체가 우주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나봐요, 감사해요, 죤, 나, 오늘 연주 덕분에 그동안의 무력과 우울에서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합니다, 하콘의 모든 분들,
특별히 오늘 첫 만나 본 수채화 같은 얼굴과 웃음의 진행자, 주최자, 호스트, 고마운 박 창수님!
때로 삶은 참 살만한 것인가봐요, 아무리 우리 사는 나날이
어둡고 지리멸렬, 끝없는 터널같대도, 말입니다,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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