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다는것...그 따듯함.
- 등록일2009.05.23
- 작성자민인기
- 조회3897
"클래식이라는 것은 너무 어렵다.
나라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다."
라는 신념을 가지고 20년이 넘은 세월을 살아왔다.
어릴적 방학숙제로 클래식 음악회를 가본 것이 전부인 나에게는
하우스 콘서트는 너무나 높은 산과 같은 곳이 였다.
그래서 매주 이핑계 저 핑계로 미루다
드디어 큰 맘먹고 이번주에 길을 나섰다.
(자의로 큰맘을 먹었다기 보다는 타의에 가까웠다..5월안에 꼭 가야 했으니까..ㅜ)
하우스 콘서트를 가는 길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설렘 약간에
먼가 내가 오면 안될 곳에 가는 초대 받지 못한 손님과 같은 기분이 지배적이었다.
"혹시 내 복장을 보고 머라고 하지 않을까? 좀 더 격식을 차리고 왔어야 하는거 아냐?
듣다가 졸면 어떻하지? 진짜 쪽팔릴텐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아차산역에 내렸다.
설명에 따라 길을 따라 걸어가다보니 눈 앞에 큰 횟집이 보였다.
약도를 따라가면 누구도 길을 찾을 수 있을 만하게 정말 큰 횟집이었다.
머 이렇게 말하면 웃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그 횟집 덕을 좀 봤다.
음악회에 대한 나의 환상이 깨졌으니까
음악회는 좀 세상과 구별되고 먼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화려한 형형 색색의 간판하며 우리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었다.
"머야? 이런 곳에서 음악회를 하네? 내가 사는 곳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곳이구나.."
용기를 내어 지하로 조심조심 내려갔다.
조금은 일찍 도착해서 맨 앞에 앉을 수가 있었다.
수업시간이고 어디고 맨 앞에 앉는 것이
듣는자의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에 앞자리에 앉았다.
참 오늘 용기를 많이 내었구나.
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앞자리에 앉는 것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연주회 앞자리가 왜 그리 비싼지 그이유를 알 것 같다.
앉아서 팜플렛을 보는데
영어로 쏼라쏼라..아는 것이라고는 도라지라는 것 뿐.
그것도 "도라지 주제를 위한 변주곡" 말이 너무 어려웠다.
한글인데도 머 이리 어렵게 써놨는지.. 라며 낙담하고 있는데
박창수 선생님 특유의 어눌하면서도 매력적인 저음의 소개와 함께
연주자분들이 앞으로 나오셨다.
선생님을 학교서 보다가 여기서 보니까 왜 그리 방갑고 멋져보이시던지..
"동서남북 들으시겠습니다."
연주자의 이 한마디가
연주가 시작되기전 낙담하며 지레 겁을 먹고 있던 나의 긴장을 느슨하게 풀어 주었다.
"알고보면 별거 아니네. 참 쉽구만. 괜히 쫄았잖아."
세상이 참 많이 좋아져
요즘은 유명한 연주자들의 연주를 집에서도 손쉽게 동영상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나도 클래식은 아니지만 다른 장르의 음악을 그렇게 접하곤 했다.
(음악을 듣기 보다는 대부분 테크닉보며 감탄하곤 했다.)
근데 연주가 시작되고 현을 튕기자 마자 첫 울림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먼가 달랐다. CD로 듣는 음악이나 집에서 컴퓨터 스피커로 듣던 음악과는 먼가 달랐다.
이건 살아있는 연주였다.
기타 연주자들의 숨소리, 그들의 온기가 기타의 선율과 함께 내 온 몸을 휘감았다.
생생하게 전해오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나를 매료시켰다.
"아...음악이라는 것이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구나...
음악은 감정을 같이 공유하는 것이구나. 함께 느끼는 것이구나..이게 진짜 음악이구나"
그런 생각과 함께 음악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어렵다거나 난해하다, 지루하다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눈을 감으니 기타 연주자들의 숨소리, 아이가 잠들어 새근새근 숨쉬는 소리, 관객들의 감탄소리..
이 모두가 함께 어우려져 하나의 음악으로 내게 다가왔다.
연주자 분께서 가끔 던지신 농담이나 자식에 대한 이야기,
자신은 손을 많이 움직여 더 힘들다던 연주자의 말이나 앙코르를 말씀하시는 농담에서..
내속에 있던 연주자는 나와는 다른사람이라는 생각의 벽이 허물어 지고
서로가 하나로 어우러져 함께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느끼고 만들어가고 있었다.
연주자가 까마득하게 보이는 그런 무대와 깍아지듯한 절벽과 같이 높은 무대 턱이 있는
무대에서는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이런 것은 하우스 콘서트 이기 때문에, 하우스 콘서트 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것이 하우스 콘서트의 매력이고
그것 때문에 하우스 콘서트가 아직도 계속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박창수라는 사람은 이런 것을 가르쳐 주고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것이 이런 것은 아닐까?
이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옛 속담의 "한번 보는 것이 백번 듣는 것보다 낫다."라는 말이 참 맞는 말인것 같다.
집이 멀어 과자도 집어먹지 못하고 바로 나왔지만
들어 갈때랑은 전혀 다른 따듯하고 포근한 여운이 집에 오는 내내 계속되었다.
너무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삶의 무미건조함에 지쳐 그 따듯함이 생각나며 그리울때
다시 한번 용기내어 찾아 가야겠다.
그때까지 그 따듯함을 품은 하우스 콘서트가 쭉 계속되길..:)
이런 소중한 경험을 선물해준 연주자 분들과 박창수 선생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P.S
선생님, 인사 못 드리고 나와서 죄송합니다.
나중에 다시 한번 하우스 콘서트에서 찾아뵙겠습니다..:)
나라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다."
라는 신념을 가지고 20년이 넘은 세월을 살아왔다.
어릴적 방학숙제로 클래식 음악회를 가본 것이 전부인 나에게는
하우스 콘서트는 너무나 높은 산과 같은 곳이 였다.
그래서 매주 이핑계 저 핑계로 미루다
드디어 큰 맘먹고 이번주에 길을 나섰다.
(자의로 큰맘을 먹었다기 보다는 타의에 가까웠다..5월안에 꼭 가야 했으니까..ㅜ)
하우스 콘서트를 가는 길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설렘 약간에
먼가 내가 오면 안될 곳에 가는 초대 받지 못한 손님과 같은 기분이 지배적이었다.
"혹시 내 복장을 보고 머라고 하지 않을까? 좀 더 격식을 차리고 왔어야 하는거 아냐?
듣다가 졸면 어떻하지? 진짜 쪽팔릴텐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아차산역에 내렸다.
설명에 따라 길을 따라 걸어가다보니 눈 앞에 큰 횟집이 보였다.
약도를 따라가면 누구도 길을 찾을 수 있을 만하게 정말 큰 횟집이었다.
머 이렇게 말하면 웃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그 횟집 덕을 좀 봤다.
음악회에 대한 나의 환상이 깨졌으니까
음악회는 좀 세상과 구별되고 먼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화려한 형형 색색의 간판하며 우리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었다.
"머야? 이런 곳에서 음악회를 하네? 내가 사는 곳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곳이구나.."
용기를 내어 지하로 조심조심 내려갔다.
조금은 일찍 도착해서 맨 앞에 앉을 수가 있었다.
수업시간이고 어디고 맨 앞에 앉는 것이
듣는자의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에 앞자리에 앉았다.
참 오늘 용기를 많이 내었구나.
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앞자리에 앉는 것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연주회 앞자리가 왜 그리 비싼지 그이유를 알 것 같다.
앉아서 팜플렛을 보는데
영어로 쏼라쏼라..아는 것이라고는 도라지라는 것 뿐.
그것도 "도라지 주제를 위한 변주곡" 말이 너무 어려웠다.
한글인데도 머 이리 어렵게 써놨는지.. 라며 낙담하고 있는데
박창수 선생님 특유의 어눌하면서도 매력적인 저음의 소개와 함께
연주자분들이 앞으로 나오셨다.
선생님을 학교서 보다가 여기서 보니까 왜 그리 방갑고 멋져보이시던지..
"동서남북 들으시겠습니다."
연주자의 이 한마디가
연주가 시작되기전 낙담하며 지레 겁을 먹고 있던 나의 긴장을 느슨하게 풀어 주었다.
"알고보면 별거 아니네. 참 쉽구만. 괜히 쫄았잖아."
세상이 참 많이 좋아져
요즘은 유명한 연주자들의 연주를 집에서도 손쉽게 동영상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나도 클래식은 아니지만 다른 장르의 음악을 그렇게 접하곤 했다.
(음악을 듣기 보다는 대부분 테크닉보며 감탄하곤 했다.)
근데 연주가 시작되고 현을 튕기자 마자 첫 울림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먼가 달랐다. CD로 듣는 음악이나 집에서 컴퓨터 스피커로 듣던 음악과는 먼가 달랐다.
이건 살아있는 연주였다.
기타 연주자들의 숨소리, 그들의 온기가 기타의 선율과 함께 내 온 몸을 휘감았다.
생생하게 전해오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나를 매료시켰다.
"아...음악이라는 것이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구나...
음악은 감정을 같이 공유하는 것이구나. 함께 느끼는 것이구나..이게 진짜 음악이구나"
그런 생각과 함께 음악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어렵다거나 난해하다, 지루하다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눈을 감으니 기타 연주자들의 숨소리, 아이가 잠들어 새근새근 숨쉬는 소리, 관객들의 감탄소리..
이 모두가 함께 어우려져 하나의 음악으로 내게 다가왔다.
연주자 분께서 가끔 던지신 농담이나 자식에 대한 이야기,
자신은 손을 많이 움직여 더 힘들다던 연주자의 말이나 앙코르를 말씀하시는 농담에서..
내속에 있던 연주자는 나와는 다른사람이라는 생각의 벽이 허물어 지고
서로가 하나로 어우러져 함께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느끼고 만들어가고 있었다.
연주자가 까마득하게 보이는 그런 무대와 깍아지듯한 절벽과 같이 높은 무대 턱이 있는
무대에서는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이런 것은 하우스 콘서트 이기 때문에, 하우스 콘서트 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것이 하우스 콘서트의 매력이고
그것 때문에 하우스 콘서트가 아직도 계속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박창수라는 사람은 이런 것을 가르쳐 주고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것이 이런 것은 아닐까?
이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옛 속담의 "한번 보는 것이 백번 듣는 것보다 낫다."라는 말이 참 맞는 말인것 같다.
집이 멀어 과자도 집어먹지 못하고 바로 나왔지만
들어 갈때랑은 전혀 다른 따듯하고 포근한 여운이 집에 오는 내내 계속되었다.
너무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삶의 무미건조함에 지쳐 그 따듯함이 생각나며 그리울때
다시 한번 용기내어 찾아 가야겠다.
그때까지 그 따듯함을 품은 하우스 콘서트가 쭉 계속되길..:)
이런 소중한 경험을 선물해준 연주자 분들과 박창수 선생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P.S
선생님, 인사 못 드리고 나와서 죄송합니다.
나중에 다시 한번 하우스 콘서트에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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