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오늘처럼 비가내렸다면
  • 등록일2008.11.15
  • 작성자정상진
  • 조회4266
송영훈, 어제 그는 연설가였다. 백색의 토가를 걸치고 수십만의 로마시민 앞에서 결의에찬 연설을 읇는 그 누군가였으리라.
콜로세움을 가득매운 시민들, 그리고 중앙에는 바로 송영훈씨와 홍소유씨가 있었다.
어제는 정말 그 뜨거운 열기. 둥그렇게 원형을 이루어낸 관객들 사이의 그들에게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콜로세움에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오늘처럼 어제도 비가 내렸다면 좀 더 운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다. 눅눅한 날씨, 탁한 공기와 치즈케익처럼 말랑한 첼로의 음색이 매력적인 색깔을 만들어 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 4차례 밖에 얼굴을 내밀지 못했던 초심자로서 항상 새로운 사람을 이끌고 와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망설여지는 때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유달리 여자 분이 많았던 어제상황에서 ‘내가 취향이 독특한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졸지에 이상한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 속에서 이 친구를 안내했다.

송영훈씨 공연은 꼭 와보고 싶었다. 탱고음악을 유독 좋아하는 나로써 그의 앨범에 감동을 받았던 이유가 첫째이다. 그리고 잘생긴 사람이 보고 싶은 것이 셋째이다. 그리고 어정쩡한 둘째이유는 첼로공연을 직접본적이 없어서이다.

여성 관객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았다. 훤칠한 키, 그리고 젊은 여성이 좋아할 의상을 갖춘 채 앞에 나타난 그를 보면서 괜스레 나조차 환호했다. DJ는 그냥 하는게 아니다. 내가 김동률씨, 유희열씨와 함께 DJ 최고의 목소리로 인정한 그 목소리에 빠져들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첼로의 음색도 좋지, 사람의 목소리도 좋지, 빽빽한 관중은 이유가 있다.

연주 목록은 진작 봤지만 공연 당일 웹서핑을 하며 단 한번 들어봤기 때문에 Shostakovich와 Rachmaninov 첼로소나타에 대한 평은 삼가겠다.
단지 Shostakovich의 음악은 자주 듣다보면 적응이 되는 것 같다. 난 그의 곡에서 기괴함, 불안함을 느낀다.

Rachmaninov의 Vocalise. 이 노래를 머릿속으로 되새기고 있자니 정말 ‘비가 왔어야했어.’ 하는 아쉬움이 더해진다. 가을의 막바지 보슬보슬 내리는 비.
스튜디오 복도 건너편 대나무가 심어진 야외 쉼터. 남녀의 진한키스 영화 위대한 유산에서 에단호크와 기네스펠트로가 비속에서 키스하는 장면과 같은 그 장면. 그리고 창 너머로 그들이 연주하는 Vocalise가 오버랩 된다.

많았던 앵콜 곡 중 하나였던 Saint-Seans의 ‘The Swan"
혹시 파트릭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 동명의 음반을 들어보신 분은 감회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묵직한 음색의 콘트라베이스에 비해 차분함이 묻어났다. 또다시 한숨을 내쉰다. ‘아무래도 비가 왔어야했어.’

선원을 칠흑같은 바다로 빠지게 하는 요정 싸이랜의 노래가 이와 같았을까?
첼로의 목소리에 빠진 우리들은 계속 그 목소리를 품으려했다. 나도 기대를 했던 리베로탱고가 객석에서 외쳐졌지만 처마의 풍경소리처럼 공허히 사라질 뿐이었던것이 아쉽다.

5살, 10살의 연주를 기억을 더듬어 연주해 주신 송영훈씨.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사무보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서울시향 팜플랫 정리작업을 하면서 발견했던 송영훈씨의 어릴 적 얼굴을 보며 웃음 짓던 기억도 떠올랐다.
나보다 연배가 많으시지만 ‘잘 자라주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 연주자이다. 연주할 때 우측 10도 상방15도정도 허공을 바라보는 그만의 연주모습을 다시 한 번 직접보길 기대한다.

영화 "Red Violin"의 악기처럼. 송영훈씨와 함께하는 수백년된 첼로는 그전에도 누군가에게, 미래에도 어떤이에게 안길 것이다. 내가 그 악기가 될 수 없지만 그 장소에 있었단 것 자체가 행복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하우스콘서트가 무궁한 발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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