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카운터테너
  • 등록일2008.10.19
  • 작성자BONA
  • 조회4490
성악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즐기지 않는 이유조차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지금 막 그럴싸한 한 가지가 떠오른다.
성악곡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려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서정적 소프라노도 아름답게 듣지 못하는 취향을 가진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음색이 카운터테너이다.
10여년 전쯤 우연한 이끌림에 의해 음반매장에서 슬라바의 음반을 사게 되었다.
아베마리아 12곡이 들어있는 음반이었는데 바흐-구노, 슈베르트, 모짜르트 의 곡을 제외하고는
전부 처음 들어보는 곡들이었다. 다양함과 아름다움에 감동받았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슬라바의 음색에 빠져들었다.

몇년 후 슬라바의 내한 소식을 듣고 반가웠지만 공연장을 찾아갈 정도로 열정을 쏟지는 못했다.
브라이언 아사와, 안드레아스 숄을 좋아했지만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는 아니었다.

시인의 사랑을 들으며 감동 받은 것은 카운터테너 코발스키의 연주를 통해서였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해외 실황녹음을 통해 듣게 된 그의 연주는 슈만을 새롭게 듣게했다.
시인의 사랑이 그렇게 아름다운 곡이라고 이전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다시 만난 카운터테너 요시가쯔 메라.
역시 이끌림에 의해 손에 넣게 된 하나의 음반을 통해 그에게 빠져들었는데
두 번의 내한 공연에 모두 가서 그의 실황을 들었다.
직접 확인한 그의 노래실력은 솔직히 나를 혼돈시켰다.
성악을 전혀 모르는 내가 듣기에도 발성이 너무 불안정했다.
물론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안정되어 가긴 했지만 그의 실력에 의심을 갖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는 내게 최고의 카운터테너이다.
너무나도 개성있고 아름다운 음색을 가지고, 온 몸으로 노래하는 그에게 매혹당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외모와 몸짓에 거북해하지만, 그로 인해 나올 수 있는 음색이라고 난 생각한다.
메라가 바흐 콜레기움 저팬과 녹음한 바로크 음반을 가장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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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늘어놓은 사람들에 대한 긴 이야기는 요약하자면
지난 금요일 하우스 콘서트에 오게된 나의 이끌림에 대한 개연성이다.
국내에도 카운터테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을 진지하게 접할 기회가 없었다.
음악과 만남은 그것과 나의 자력이 가장 강하게 작용할때 이루어진다.
이 날 음악회에 올 수 있도록 시간이 허락되었고, 무엇보다 쳄발로 반주로 들을 수 있는
카운터테너의 바로크 음악이라는 것은 흔히 듣기 어려운 대단히 매력적인 공연이었다.

그렇지만 가슴 설레여하거나 기대하면서 간 공연은 아니었다.
장시간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이미 지쳤고, 공연 시작 전에 도착하기는 틀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 부분 마음을 비우고 그저 일상을 지내듯 찾아간 곳이었다.
그랬기때문에 그렇게 대단하고 멋진 음악과 연주가 그 곳에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투자한 여러가지 조건에 비해 정말 많은 것을 담아왔다.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헨델의 곡을 두 번째 앵콜로 들려주어 결국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카운터테너는 얼마 후 유학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그 이야기 또한 나를 설레게 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어떠한 음악을 가지고 올지
기대된다. 얼마나 매혹적인 음색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을 가지고 돌아올지.

카운터테너 양동철.
그가 삶을 사랑하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길 기원한다.
그리하여 여전히 설레이는 매력적인 음악가로 다시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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