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의 판소리...
- 등록일2008.08.30
- 작성자U lee
- 조회4415
‘ART란 무엇인가?’ 2층 공연장으로 가는 길목에 걸린 마크로스코 ‘작품 포스터’가 올라가려는 내게 불현듯 다가와 당돌하게 말을 건넨다. 못 들은 척 올라와 버렸다.
“시려, 난 오늘 남원 사는 춘향이와 이몽룡의 ‘러브스토리’ 나 듣고 갈려. 춘향이 이몽룡 뒤엉킴 속에 천지 우락 장막이 다 들었는데 뭔 ‘예술’”
8시가 되고 재미난 얘기를 지지구리러 소리꾼이 들어왔다. 뒤를 이어 흥을 돋우기 위한 오케스트라(?)격 고수가 성큼성큼 따라 들어온다.
이렇게 감질 맛나게 공연 전체를 강아지 오줌 지리듯 묘사하려니 나처럼 성미 급한 놈들은 뒤로 자빠지것다. 하지만 춘향이 이몽룡 얘기라면 신데렐라만큼이나 유명(?)한데 여기서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뭐 그렇고 그런 사랑얘기지. 그런데 구태여 여기 게시판까지 기어 들어와 후기를 올리려는 심산은 또 뭐란 말인가 하고 누가 야지를 놓을지 몰라 구차하지만 작품 감상을 빙자하여 변명도 함께 늘어놓으려고 한다.
‘자연 속에는 자연이상이 들어있다’고 하면 변명이 될까. 그런데 이 때 자연은 화가 정창섭의 ‘자연’으로 나카하라 유스케가 평하듯 ‘이해되는 자연이 아니라, 교감하는 자연이다’고 하면.
(아니리) “속 모르는 소리 점점 더하는구나.”
소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소리 안에는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오늘의 소리도 그랬다. 새하얀 모시한복을 걸친 고수와 소리꾼이 낙숫물 떨어지듯 파고드는 북소리와 "기름기 없는 소담한‘ 소리를 내니 어찌 이야기뿐이었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그 ’낙숫물‘을 ’기름기 없는 소담함‘을 글로라도 묘사해 보려 여기까지 왔다. 물론,
(단중머리) “남원 한량들이 구경들 허다 ...[중략]...어린 것이 설령 잘못 헌들 저런 매질이 또 있느냐?...[중략]...모지도다. 모지도다....” 처럼 그런 기름기 없는 소담한 소리 위로 살짝 둘러쳐 자르르 흐르는 기름진 소리도 그 이야기 이상의 그 무엇이 될 수 있겠다. 소리를 듣는 내내 화선지마냥 펼쳐진 소리꾼과 고수의 도포자락 위에는 소리꾼 원미혜 님의 소리와 북소리에 맞춰 꽃이 피었다가 오뉴월 찬바람이 불기도하고 종달새, 꾀꼬리가 노래하는 것을 잊고 뛰어놀기도 하는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그렇듯 즐겁게 이야기에 푸욱 빠져있다 공연이 끝나고 내려와 보니 아래층으로 미리 내려 온 소리꾼이 시어머니 앞에 첫 음식을 내고 꾸중을 들을까 노심초사하는 며느리마냥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앞으로 기둥에 걸린 아까 그 마크로스코 ‘작품 포스터’가 다시 말을 건넨다.
"가격으로 매겨지는 교환가치에 대한 평가가 내재적 가치로 이어지고, 이때 그림의 교환가치가 폭락하면 이와 더불어 내재적 가치마저 인정받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잠재적 불안이 내게는 있노라고"( 로버트 휴즈의 마크로스코 작품 평론 중)
그래, 소리꾼의 말대로 목통이 막혀 소리가 연습하던 때만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럼 어떠한가. 이미 그런 가운데서도 참맛을 보았으면 그만인 것을. 그리고 소리꾼이 말하는 아쉬움은 다음 공연에서 다시 모여 풀어보는 것은 어떨는지. 그때는 우리 역시 소리가 무대 앞에서만 맴도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 사이의 추임새와 어우러질 수 있도록 준비된 관객이 되어봄은 어떨는지.
* 소리꾼 원미혜 님과 고수 류인상 님께 감사드립니다. *
“시려, 난 오늘 남원 사는 춘향이와 이몽룡의 ‘러브스토리’ 나 듣고 갈려. 춘향이 이몽룡 뒤엉킴 속에 천지 우락 장막이 다 들었는데 뭔 ‘예술’”
8시가 되고 재미난 얘기를 지지구리러 소리꾼이 들어왔다. 뒤를 이어 흥을 돋우기 위한 오케스트라(?)격 고수가 성큼성큼 따라 들어온다.
이렇게 감질 맛나게 공연 전체를 강아지 오줌 지리듯 묘사하려니 나처럼 성미 급한 놈들은 뒤로 자빠지것다. 하지만 춘향이 이몽룡 얘기라면 신데렐라만큼이나 유명(?)한데 여기서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뭐 그렇고 그런 사랑얘기지. 그런데 구태여 여기 게시판까지 기어 들어와 후기를 올리려는 심산은 또 뭐란 말인가 하고 누가 야지를 놓을지 몰라 구차하지만 작품 감상을 빙자하여 변명도 함께 늘어놓으려고 한다.
‘자연 속에는 자연이상이 들어있다’고 하면 변명이 될까. 그런데 이 때 자연은 화가 정창섭의 ‘자연’으로 나카하라 유스케가 평하듯 ‘이해되는 자연이 아니라, 교감하는 자연이다’고 하면.
(아니리) “속 모르는 소리 점점 더하는구나.”
소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소리 안에는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오늘의 소리도 그랬다. 새하얀 모시한복을 걸친 고수와 소리꾼이 낙숫물 떨어지듯 파고드는 북소리와 "기름기 없는 소담한‘ 소리를 내니 어찌 이야기뿐이었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그 ’낙숫물‘을 ’기름기 없는 소담함‘을 글로라도 묘사해 보려 여기까지 왔다. 물론,
(단중머리) “남원 한량들이 구경들 허다 ...[중략]...어린 것이 설령 잘못 헌들 저런 매질이 또 있느냐?...[중략]...모지도다. 모지도다....” 처럼 그런 기름기 없는 소담한 소리 위로 살짝 둘러쳐 자르르 흐르는 기름진 소리도 그 이야기 이상의 그 무엇이 될 수 있겠다. 소리를 듣는 내내 화선지마냥 펼쳐진 소리꾼과 고수의 도포자락 위에는 소리꾼 원미혜 님의 소리와 북소리에 맞춰 꽃이 피었다가 오뉴월 찬바람이 불기도하고 종달새, 꾀꼬리가 노래하는 것을 잊고 뛰어놀기도 하는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그렇듯 즐겁게 이야기에 푸욱 빠져있다 공연이 끝나고 내려와 보니 아래층으로 미리 내려 온 소리꾼이 시어머니 앞에 첫 음식을 내고 꾸중을 들을까 노심초사하는 며느리마냥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앞으로 기둥에 걸린 아까 그 마크로스코 ‘작품 포스터’가 다시 말을 건넨다.
"가격으로 매겨지는 교환가치에 대한 평가가 내재적 가치로 이어지고, 이때 그림의 교환가치가 폭락하면 이와 더불어 내재적 가치마저 인정받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잠재적 불안이 내게는 있노라고"( 로버트 휴즈의 마크로스코 작품 평론 중)
그래, 소리꾼의 말대로 목통이 막혀 소리가 연습하던 때만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럼 어떠한가. 이미 그런 가운데서도 참맛을 보았으면 그만인 것을. 그리고 소리꾼이 말하는 아쉬움은 다음 공연에서 다시 모여 풀어보는 것은 어떨는지. 그때는 우리 역시 소리가 무대 앞에서만 맴도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 사이의 추임새와 어우러질 수 있도록 준비된 관객이 되어봄은 어떨는지.
* 소리꾼 원미혜 님과 고수 류인상 님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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