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윤철희 리사이틀 관람기
- 등록일2008.05.31
- 작성자맹민호
- 조회4467
제대한 다음 한 달을 무사히 그리고 열심히 보냈다는 의미로 나 자신에게 선물을 하기로 했다. 김선욱, 권혁주 듀오 연주회 이후 두번째 가는 하우스 콘서트. 오늘은 5개의 피아노 시리즈 중 마지막인 중견 피아니스트 윤철희의 리사이틀이 열리는 날이다.
좋은 자리에서 볼려고 40분 정도 일찍 와서 연주자의 손이 가장 잘 보일만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저번보다 관객이 별로 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공연시작 약 10분 전부터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어느새 꽤 넓은 2층 마루가 관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찼다.
피아니스트 윤철희는 작년에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앙상블로 편곡해 연주한다고 해서 처음 알게 된 연주자다. 그때 비록 가보지는 못했지만, 얼마 전 교향악축제 중 군산시향과의 협연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하는 윤철희의 모습을 보았다. 비록 합창석에 자리를 예매해서 피아노 소리가 오케스트라에 약간 묻혔던 것은 아쉬운 점이었지만, 그때 보여준 피아니스트 윤철희의 테크닉과 카리스마는 내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어느새 시간은 8시가 되었고, 드디어 오늘의 연주자인 윤철희가 등장해 곧바로 모차르트의 "듀포트 미뉴엣에 의한 9개의 변주곡" 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잘 알려진 레퍼토리가 아니어서 어떤 곡일까 궁금했었지만, 작은별 변주곡보다 구조는 조금 더 복잡했지만 중간에 단조인 변주곡이 섞여 있는 점 등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피아니스트 윤철희는 이어지는 변주곡들을 망설임없이 연주해 나갔다. 저번에 들었던 윤철희의 터치가 약간은 딱딱한 느낌이 들어 나긋나긋한 느낌이 나는 모차르트의 곡을 잘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의아했었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런던 필이 포르셰 스포츠카를 연상시키는 현대적이고 힘이 느껴지는 음색으로 고전파의 곡들을 재해석해내는 것처럼 참신하고 산뜻함이 느껴지는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두번째 곡은 베토벤의 32개 소나타 중 21번인 "발트슈타인" 이었다. 1악장의 가슴을 두근두근거리게 하는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첫 소절을 듣는 순간부터 피아니스트 윤철희의 "내공" 을 느낄 수 있었다. 소리는 변함없이 맑기 그지없었지만, 단순히 음량만 커진 것이 아니라 소리에서 느껴지는 무게가 앞의 모차르트와는 비교할 수 없이 무거웠다. 베토벤을 연주할 때는 어떠한 소리를 연출해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연주자였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리흐테르는 자신이, 그리고 청중들이 곡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될까 두려워 상반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작곡가들의 곡을 한 공연에 넣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 피아니스트 윤철희의 베토벤은 앞의 모차르트와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뿐 아니라 연주의 완성도 또한 상당한 수준이었다. 클라이맥스에서 윤철희는 조금도 망설임없이 돌진해나가 화려한 음들을 흩뿌렸다. 그의 유려한 테크닉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앞의 모차르트에서 아주 가끔씩 보였던 애매한 터치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많은 음들이 숨 한번 내쉴 동안에 정확한 위치와 강도로 나열되는 모습을 보며 난 할 말을 잃었다.
3악장의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장대한 피날레가 끝나고, 음의 여운이 완전히 가시자마자, 연주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에게서 엄청난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잠깐 동안의 휴식시간 후 곧이어 2부가 진행되었다. 피아니스트 윤철희가 다시 입장해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곡은 1965년 지금은 할머니가 된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26세의 나이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직후 녹음한 음반에서 듣고 완전히 반해 버린 곡이다.
무겁고 고독한 느낌을 주는 1악장의 초반부가 연주되었고, 윤철희의 쇼팽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적으로 쇼팽을 연주할 때는 감정이 넘쳐흐르게 되기 때문에, 그 감정이 지나쳐서 연주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자신의 주법을 의식해 적당히 절제하며 연주해야 한다고 한다. 윤철희의 쇼팽은 다른 연주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절제의 미덕이 잘 깃든 듯 보였다. 페달을 쇼팽치고는 상당히 신중히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1악장이 끝난 이후, 2악장에서 현란한 음의 향연이 펼쳐졌다. 피아노라는 악기의 모든 역량을 끌어냈다는 쇼팽의 곡이 피아니스트 윤철희가 연주하는 스타인웨이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야상곡을 연상시키는 3악장 이후 4악장에서도 다시 한번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화려한 소절이 계속되었다.
윤철희는 때로는 피아노가 부서질 듯이 크지만 또한 천 근의 무게를 동반한 포르테를 들려주었으며, 때로는 보랏빛 아이스크림같이 우수에 차 있으면서도 녹아내릴 듯이 감미로운 피아니시모를 들려주었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어느 정도까지의 소리를 들려줄수 있는지에 감탄하며, 피아노가 악기의 왕이라 불리는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또한 이런 피아노의 소리를 이 정도까지 끌어낸 연주자 윤철희에 대해서도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단순한 테크닉과 물리적 효과만을 보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음악이 가슴에 흐르게 할 수 있는 정신과 영감을 가진 피아니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있는 동안 곡은 피날레로 격렬하게 치달아갔고, 간결한 화음을 남기며 마지막 음이 멎었다. 곧이어 브라보! 하는 함성과 쏟아지는 박수는 청중들이 연주자의 연주에 진심으로 빠져들었음을 보여주었다. 여러 번의 커튼콜 후 윤철희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중 느린 악장을 앵콜로 연주해 청중들의 호응에 보답했으며, 이것으로 오늘의 연주는 그 막을 내렸다.
너무 집중해서 들었던 탓인지 연주가 끝나자마자 갑작스럽게 피곤이 몰려와 집에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랜만에 관람한 연주회여서 신이 났던 탓인지 내 입은 어느새 발트슈타인 소나타와 쇼팽의 소나타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오늘 연주가 이루어진 콘서트 하우스 또한 저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음향을 들려주었다. 꽤나 가까운 거리에서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소리가 약간 크게 들리는 것 빼고는 손색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며, 피아니스트 윤철희 역시 연주 경험이 많은 연주자답게 공연장의 음향에 맞추어 자신의 연주를 최적의 상태로 조절한 듯 보였다.
9월 말에 200회 기념 연주회가 있다고 했는데, 어떤 연주자가 나와서 어떤 곡을 들려줄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날이 갈수록 참신한 기획과 높은 수준의 연주를 들려주는 하우스 콘서트 운영진들께 이 글에서나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좋은 자리에서 볼려고 40분 정도 일찍 와서 연주자의 손이 가장 잘 보일만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저번보다 관객이 별로 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공연시작 약 10분 전부터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어느새 꽤 넓은 2층 마루가 관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찼다.
피아니스트 윤철희는 작년에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앙상블로 편곡해 연주한다고 해서 처음 알게 된 연주자다. 그때 비록 가보지는 못했지만, 얼마 전 교향악축제 중 군산시향과의 협연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하는 윤철희의 모습을 보았다. 비록 합창석에 자리를 예매해서 피아노 소리가 오케스트라에 약간 묻혔던 것은 아쉬운 점이었지만, 그때 보여준 피아니스트 윤철희의 테크닉과 카리스마는 내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어느새 시간은 8시가 되었고, 드디어 오늘의 연주자인 윤철희가 등장해 곧바로 모차르트의 "듀포트 미뉴엣에 의한 9개의 변주곡" 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잘 알려진 레퍼토리가 아니어서 어떤 곡일까 궁금했었지만, 작은별 변주곡보다 구조는 조금 더 복잡했지만 중간에 단조인 변주곡이 섞여 있는 점 등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피아니스트 윤철희는 이어지는 변주곡들을 망설임없이 연주해 나갔다. 저번에 들었던 윤철희의 터치가 약간은 딱딱한 느낌이 들어 나긋나긋한 느낌이 나는 모차르트의 곡을 잘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의아했었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런던 필이 포르셰 스포츠카를 연상시키는 현대적이고 힘이 느껴지는 음색으로 고전파의 곡들을 재해석해내는 것처럼 참신하고 산뜻함이 느껴지는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두번째 곡은 베토벤의 32개 소나타 중 21번인 "발트슈타인" 이었다. 1악장의 가슴을 두근두근거리게 하는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첫 소절을 듣는 순간부터 피아니스트 윤철희의 "내공" 을 느낄 수 있었다. 소리는 변함없이 맑기 그지없었지만, 단순히 음량만 커진 것이 아니라 소리에서 느껴지는 무게가 앞의 모차르트와는 비교할 수 없이 무거웠다. 베토벤을 연주할 때는 어떠한 소리를 연출해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연주자였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리흐테르는 자신이, 그리고 청중들이 곡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될까 두려워 상반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작곡가들의 곡을 한 공연에 넣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 피아니스트 윤철희의 베토벤은 앞의 모차르트와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뿐 아니라 연주의 완성도 또한 상당한 수준이었다. 클라이맥스에서 윤철희는 조금도 망설임없이 돌진해나가 화려한 음들을 흩뿌렸다. 그의 유려한 테크닉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앞의 모차르트에서 아주 가끔씩 보였던 애매한 터치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많은 음들이 숨 한번 내쉴 동안에 정확한 위치와 강도로 나열되는 모습을 보며 난 할 말을 잃었다.
3악장의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장대한 피날레가 끝나고, 음의 여운이 완전히 가시자마자, 연주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에게서 엄청난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잠깐 동안의 휴식시간 후 곧이어 2부가 진행되었다. 피아니스트 윤철희가 다시 입장해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곡은 1965년 지금은 할머니가 된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26세의 나이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직후 녹음한 음반에서 듣고 완전히 반해 버린 곡이다.
무겁고 고독한 느낌을 주는 1악장의 초반부가 연주되었고, 윤철희의 쇼팽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적으로 쇼팽을 연주할 때는 감정이 넘쳐흐르게 되기 때문에, 그 감정이 지나쳐서 연주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자신의 주법을 의식해 적당히 절제하며 연주해야 한다고 한다. 윤철희의 쇼팽은 다른 연주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절제의 미덕이 잘 깃든 듯 보였다. 페달을 쇼팽치고는 상당히 신중히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1악장이 끝난 이후, 2악장에서 현란한 음의 향연이 펼쳐졌다. 피아노라는 악기의 모든 역량을 끌어냈다는 쇼팽의 곡이 피아니스트 윤철희가 연주하는 스타인웨이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야상곡을 연상시키는 3악장 이후 4악장에서도 다시 한번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화려한 소절이 계속되었다.
윤철희는 때로는 피아노가 부서질 듯이 크지만 또한 천 근의 무게를 동반한 포르테를 들려주었으며, 때로는 보랏빛 아이스크림같이 우수에 차 있으면서도 녹아내릴 듯이 감미로운 피아니시모를 들려주었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어느 정도까지의 소리를 들려줄수 있는지에 감탄하며, 피아노가 악기의 왕이라 불리는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또한 이런 피아노의 소리를 이 정도까지 끌어낸 연주자 윤철희에 대해서도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단순한 테크닉과 물리적 효과만을 보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음악이 가슴에 흐르게 할 수 있는 정신과 영감을 가진 피아니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있는 동안 곡은 피날레로 격렬하게 치달아갔고, 간결한 화음을 남기며 마지막 음이 멎었다. 곧이어 브라보! 하는 함성과 쏟아지는 박수는 청중들이 연주자의 연주에 진심으로 빠져들었음을 보여주었다. 여러 번의 커튼콜 후 윤철희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중 느린 악장을 앵콜로 연주해 청중들의 호응에 보답했으며, 이것으로 오늘의 연주는 그 막을 내렸다.
너무 집중해서 들었던 탓인지 연주가 끝나자마자 갑작스럽게 피곤이 몰려와 집에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랜만에 관람한 연주회여서 신이 났던 탓인지 내 입은 어느새 발트슈타인 소나타와 쇼팽의 소나타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오늘 연주가 이루어진 콘서트 하우스 또한 저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음향을 들려주었다. 꽤나 가까운 거리에서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소리가 약간 크게 들리는 것 빼고는 손색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며, 피아니스트 윤철희 역시 연주 경험이 많은 연주자답게 공연장의 음향에 맞추어 자신의 연주를 최적의 상태로 조절한 듯 보였다.
9월 말에 200회 기념 연주회가 있다고 했는데, 어떤 연주자가 나와서 어떤 곡을 들려줄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날이 갈수록 참신한 기획과 높은 수준의 연주를 들려주는 하우스 콘서트 운영진들께 이 글에서나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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