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하고도 5개월을 기다려
  • 등록일2008.01.28
  • 작성자손미영
  • 조회4951
하우스콘서트를 알게된지 3년5개월

지방에서 사는 지리적 설움을 감내해야만 하는 두 아이의 엄마 역활이 언제나 우선이었습니다.

2년째 방학마다 서울에 오면서도 금요일마다 일이 생겨

아니면 아이들이 영화보러 가지고 하면 우기질 못하고 아이들 의견을 따랐습니다.

장일범씨가 <오페라는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영상음악회를 참석한날.

아는게 없어 걸릴게 없는 나의 무지를 다 덮어주며 전율속에 멍청히 서 있게 한 안나 레트렙코와 롤랜도,

깊이있지만 재미있는 설명을 곁들이신 장일범 음악평론가.

울 남편만큼 말못하는 집주인 박창수교수와 아름다운 아내 김영희교수의 세심한 배려가

와인잔에서도 느껴지는곳을 지난주에 이어 다시 갔습니다

이번주엔 사람들이 많치 않았습니다.

열분남짓,

운명적으로 만난 두 분과 함께 아줌마 셋이서 신났습니다.

익숙한 라벨의 볼레로를 관능적인 춤과 함께 15분을 즐기고

생상의 삼손과 데릴라중  그대 목소리에 내마음 열리고는 지난주 오페라를 보고 필 받아

반디앤 루니스에서 산 세권의 책을 읽은 덕분에 내용과 장면이 이해가 됩니다.

모를때는 전율했고, 알고나니 이해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프라시드 플랑의< 카르멜파 수녀들의 대화>중 피날레는

집단 참수형을 당한 수녀들의 합창과 길로틴의  칼 떨어지는 소리가 끝나고서도 한동안

섬뜩함으로 남았습니다.

사람이 적으니 훨씬 좋더군요.

지난주에는 40명이 넘어서 앞사람 뒤통수에 가려서 안보이는 답답함이 있었는데

참석한 인원수에 상관없이  진지한 설명은 마치 모내기를 하듯이 가슴에 와 박혔습니다.

유형종씨의 해설은 독일과 프랑스 음악이 어떻게 다른지 제대로 알려 주신겁니다.

두아이가 있는지라 숙제를 해 가기 위해서도 일년에 4번은 음악회를 갔습니다.

그때마다 피곤하고 짐하나 덜었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게 아닐거라는 생각이 늘 마음속에 자리했습니다.

티켓을 제출하기 위해 시장통에서 할인표를 받아가듯 와글대는 사람들속에서 쫓기듯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런 나의 음악회에 대한 불신을 하우스콘서트는 말끔이 씻어 주었습니다.

177회 때는 너무나 충만함에 예수나 부처를 직접 만난다한들 이보다 행복하겠는가 했습니다.

178회때는 이제 여름에나 올수있는 저를 위해 사람들이 일부러 비켜준듯 했습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듯 음악과 미술, 오페라가 한꺼번에 다가옵니다.

고흐를 필두로 칸딘스키와 잔느와 모딜리아니전. 하우스콘서트에서 만난 멋진 아줌니(?)와

인사동에서 미술관 순회버스를 타고 평창동과 삼청동을 두루 누볐습니다.

삼청동 램에 들러 알게된  이영남박사의 임상역사수업에도 참여했습니다

오래 기다려 온 저를 위해 누군가가 배려하지 않고는 있을수 없는 일이지요?

보공을 채우듯 책을 봅니다

큰아이와 동생, 한의원선생님과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잊지않고 얘기를 합니다.

동생네는 다음주에 간다고 하고 한의원 원장은 끄덕이며 듣습니다.

아들과 함께 못 가는데 참말로  아쉽습니다.

자신의 집을 개방하여 일반인 누구라도 와서 느끼게 장소를 제공하고 5년간 4천만원이 넘는 손해를

묵묵히 감수한 두부부에게 인사치레로 고맙다고 말하기에는 입이 부끄러웠습니다.

자신의 일을 다 제쳐두고 봉사하는 스텝들에게도 대포라도 한잔 사고 싶었는데

음악감상이 끝나자 먼저 고급와인과 치즈를 주면서 암말도 못하게 했습니다.

해부학적으로는 마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갈비뼈와 심장사이에 있는것도 아니고 안구와 전두엽사이에 있지도 않은데

존재하지도 않는 마음 하나를 못 채워 너나없이 외로워하는 변화무쌍 한 시대에

오페라 한곡이 주체할수없는 환희로 두손을 모으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던 벅찬 기쁨을

알게 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서두없고 두서없는 글이지만 부산댁의 고백을 들어주셔서 더욱 고맙습니다.

오늘밤 꿈엔 바나나 한바구니를 사 들고 롤랜도를 찿아가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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