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평범한 20대 후반 여자의 젊음과 인생에 대한 새로운 고찰
- 등록일2007.10.19
- 작성자김영
- 조회6556
하우스 콘서트 가자 응????
미안 엄마, 너무 바빠. 내가 몇 번을 말해요.
뚝.
이런 식으로 엄마의 제안을 무참히 거부했던 나. 나는 대한민국의 아주 평범한 20대 후반의 여자이다. 졸업 후 나름대로 바쁘기도 바빴다지만, 하우스 콘서트가 뭐야라고 묻지도 않을 만큼 문화적 감수성에 그리도 메말라 있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끔찍하리만큼 관심이 없었던 것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바쁘고 중요했는지 사실 엄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편안히 받을 여유조차 없던 나였기에 하우스 콘서트라는 단어는 내 시냅스를 자극하지조차 못했던 터였다.
그 후 몇 개월이 (아니 몇 년인지도 모른다) 흐른 후 잠시의 휴식기가 드디어 나에게도 찾아왔고, 때마침 하우스 콘서트에 가자는 엄마의 제안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관심을 가진 것이었다. 그렇게 종로에서 버스를 타고 연희동 한 피아니스트의 2층집이라는 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바닥으로 떨어졌던 나의 감성 지수를 나는 깨닫지 못했었다. 대문에 걸린 나무로 만든 "하우스 콘서트" 푯말을 보고서야 살아났던 나의 고동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 하다.
영화에서나 보던 비밀 모임이라도 되는 듯이 평범한 집을 찾아내는 묘미도 쏠쏠했다. 그렇게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눈앞에는 골든 레트리버가 꼬리를 흔들고 활짝 웃어주며 나를 맞아주었다. 회사에서 얼마나 인간들에게 시달림을 당했었냐라고 치를 떨던 나에게 음악회가 열리는 장소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그렇게 들어간 현관에서 나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라는, 나에게는 새로운 역사의 흔적을 남기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르내리는 계단을 걸어 올라간 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고정관념을 탁 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방석을 깔고 바닥에 앉아있었고 앞의 무대는 그야말로 조촐했다. 아무도 예절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들 서로를 배려하며 자리를 지키는 모습 또한 가슴을 뜨겁게 했다. 그렇게 맨 앞자리를 꿰차고 앉았고 어느새 집 주인, 즉 이 음악회의 주관 및 주최자인 듯한 분이 앞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콘서트를 소개했고, 그순간 아, 잘 찾아왔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더랬다. 그분의 맑은 목소리에서 콘서트의 의미가 아로새겨졌다는 게 맞다.
조금은 애타게 기다린 연주자들의 등장은 방석을 깔고 앉아 있는 관객들 사이로 이뤄졌고(이게 보통 클래식 공연장에서 가능한 얘기더냐라는 생각에 박수를 치는 내 손은 더욱 힘차졌다) 첼리스트의 연주곡 안내와 인사말로 가을밤 3중주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베토벤의 D Major Op.8 의 1악장 Allegro로 시작한 연주는 나를 비롯한 30여명의 관객들의 눈과 귀와 온몸의 감각을 사로잡았다. 공기 뿐 아니라 마루로 전달되는 악기의 울림은 온몸으로 음악을 느낄 수 있기에 충분했고, 연주자들의 거친 숨소리와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은 그들과 내가 하나가 진정 하나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분명 내안에 그들이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몸은 앞으로 기울었고 그들과 하나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20여분간의 베토벤의 세레나데는 마치 5분도 안 된 것처럼 나의 혼을 빼앗았고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2층을 메웠다. 땀을 뚝뚝 흘리는 연주자들의 표정은 아직도 베토벤의 머릿속에서 나오지 못한 듯해 보였다. 약 10분간의 인터미션이 끝나고 다시금 성우같은 첼리스트의 멋진 목소리로 도흐나니의 작품 설명과 함께 곡 연주가 시작되었다. 베토벤 세레나데의 오마주가 아닐까라는 도흐나니의 세레나데 작품번호 10번 또한 Allegro로 시작했고 보다 잦아진 음표들과 복잡해진 화음들이 내 혼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현이 뚝뚝 끊어졌고 아리따운 비올리스트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목받침대까지 떨어졌고 첼리스트의 안경은 그의 땀으로 앞이 가려졌던 찰나, 연주회는 클라이막스를 달리고 있었다. 도흐나니의 5악장 Allergo vivace는 비올라와 첼로, 그리고 바이올린의 숨막히는 대화같았고 나 또한 연주자들과 같이 호흡하고 있었다. 흡, 하. 그렇게 도흐나니의 세레나데가 끝나고 끊이지 않는 박수와 함께 곧바로 앵콜 공연이 시작되었다. 한 관객의 요구로 연주자들은 각자 "인생은 나그네길"의 한소절을 연주하기도 했고 악기의 음색을 다시금 음미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앵콜 곡은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피아졸라의 Oblivion. 베토벤과 도흐나니가 달궈놓은 열기를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다.
그렇게 연주가 끝나고 예상치 못했던 와인 타임이 주어졌고, 하우스 콘서트를 그렇게 애타게 제안했던 엄마는 어느새 첼리스트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첼리스트와 비올리스트와의 대화를 시작했고 이런 저런 음악적인 궁금증과 이야기들로 한시간을 훌쩍 넘기게 되었던 것이다.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들과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그 어느 공연장에서 주어진단 말이냐! 이렇듯 하우스 콘서트에 대한 찬사와 감탄은 끝이 없으리라... 이런 좋은 기회를 제공하신 박창수씨와 그외 관계자 분들이 뒷풀이를 시작하시려는 듯한 모습을 뒤로하며 거의 맨 마지막으로 집을 나섰다.
아직도 땀냄새와 거친 숨소리, 그리고 마루의 울림으로 공명했던 그날의 느낌은 한장의 소박한 연주 소개 출력물과 함께 남아있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고 힘들었던 와중에서도 친절하게 관객의 마음을 헤아려주었던 강주이 비올리스트와 김우진 첼리스트의 배려도 뜨거운 기억으로 내 마음을 울린다. 한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내 깊은 감성을 무시했던 나의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고, 이번 167번째 하우스 콘서트는 그렇게 나로 하여금 젊음에 대한 재정의를 내릴 기회를 주었다. 젊음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의 에너지같은 것만은 아니라, 마음 속 순수한 곳의 뜨거운 선율을 들을 수 있는, 어쩌면 예술적인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리라.
매주 오리라는 나와의 다짐과 함께 연희동을 나서며 먼저 자리를 떠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어디야?
응, 지금 맥주 마시고 있어. 이리로 와.
응, 엄마 사랑해요..
그렇게 뒤풀이로 엄마와 맥주를 한 잔 하고 나는 엄마의 손을 꼭 붙잡았다. 오랜만에 뜨거운 엄마의 열기가 전해졌다. 인생, 뭐 있어? 하지만 인생, 뭐 있다. 인생에는 사람이 있고 예술이 있다. 이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았던 나는, 2007년 10월 17일 나와 엄마를 비춘 신촌 부근에 뜬 환한 상현달 아래서, 아직 젊은 나는 인생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본다.
미안 엄마, 너무 바빠. 내가 몇 번을 말해요.
뚝.
이런 식으로 엄마의 제안을 무참히 거부했던 나. 나는 대한민국의 아주 평범한 20대 후반의 여자이다. 졸업 후 나름대로 바쁘기도 바빴다지만, 하우스 콘서트가 뭐야라고 묻지도 않을 만큼 문화적 감수성에 그리도 메말라 있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끔찍하리만큼 관심이 없었던 것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바쁘고 중요했는지 사실 엄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편안히 받을 여유조차 없던 나였기에 하우스 콘서트라는 단어는 내 시냅스를 자극하지조차 못했던 터였다.
그 후 몇 개월이 (아니 몇 년인지도 모른다) 흐른 후 잠시의 휴식기가 드디어 나에게도 찾아왔고, 때마침 하우스 콘서트에 가자는 엄마의 제안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관심을 가진 것이었다. 그렇게 종로에서 버스를 타고 연희동 한 피아니스트의 2층집이라는 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바닥으로 떨어졌던 나의 감성 지수를 나는 깨닫지 못했었다. 대문에 걸린 나무로 만든 "하우스 콘서트" 푯말을 보고서야 살아났던 나의 고동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 하다.
영화에서나 보던 비밀 모임이라도 되는 듯이 평범한 집을 찾아내는 묘미도 쏠쏠했다. 그렇게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눈앞에는 골든 레트리버가 꼬리를 흔들고 활짝 웃어주며 나를 맞아주었다. 회사에서 얼마나 인간들에게 시달림을 당했었냐라고 치를 떨던 나에게 음악회가 열리는 장소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그렇게 들어간 현관에서 나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라는, 나에게는 새로운 역사의 흔적을 남기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르내리는 계단을 걸어 올라간 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고정관념을 탁 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방석을 깔고 바닥에 앉아있었고 앞의 무대는 그야말로 조촐했다. 아무도 예절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들 서로를 배려하며 자리를 지키는 모습 또한 가슴을 뜨겁게 했다. 그렇게 맨 앞자리를 꿰차고 앉았고 어느새 집 주인, 즉 이 음악회의 주관 및 주최자인 듯한 분이 앞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콘서트를 소개했고, 그순간 아, 잘 찾아왔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더랬다. 그분의 맑은 목소리에서 콘서트의 의미가 아로새겨졌다는 게 맞다.
조금은 애타게 기다린 연주자들의 등장은 방석을 깔고 앉아 있는 관객들 사이로 이뤄졌고(이게 보통 클래식 공연장에서 가능한 얘기더냐라는 생각에 박수를 치는 내 손은 더욱 힘차졌다) 첼리스트의 연주곡 안내와 인사말로 가을밤 3중주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베토벤의 D Major Op.8 의 1악장 Allegro로 시작한 연주는 나를 비롯한 30여명의 관객들의 눈과 귀와 온몸의 감각을 사로잡았다. 공기 뿐 아니라 마루로 전달되는 악기의 울림은 온몸으로 음악을 느낄 수 있기에 충분했고, 연주자들의 거친 숨소리와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은 그들과 내가 하나가 진정 하나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분명 내안에 그들이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몸은 앞으로 기울었고 그들과 하나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20여분간의 베토벤의 세레나데는 마치 5분도 안 된 것처럼 나의 혼을 빼앗았고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2층을 메웠다. 땀을 뚝뚝 흘리는 연주자들의 표정은 아직도 베토벤의 머릿속에서 나오지 못한 듯해 보였다. 약 10분간의 인터미션이 끝나고 다시금 성우같은 첼리스트의 멋진 목소리로 도흐나니의 작품 설명과 함께 곡 연주가 시작되었다. 베토벤 세레나데의 오마주가 아닐까라는 도흐나니의 세레나데 작품번호 10번 또한 Allegro로 시작했고 보다 잦아진 음표들과 복잡해진 화음들이 내 혼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현이 뚝뚝 끊어졌고 아리따운 비올리스트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목받침대까지 떨어졌고 첼리스트의 안경은 그의 땀으로 앞이 가려졌던 찰나, 연주회는 클라이막스를 달리고 있었다. 도흐나니의 5악장 Allergo vivace는 비올라와 첼로, 그리고 바이올린의 숨막히는 대화같았고 나 또한 연주자들과 같이 호흡하고 있었다. 흡, 하. 그렇게 도흐나니의 세레나데가 끝나고 끊이지 않는 박수와 함께 곧바로 앵콜 공연이 시작되었다. 한 관객의 요구로 연주자들은 각자 "인생은 나그네길"의 한소절을 연주하기도 했고 악기의 음색을 다시금 음미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앵콜 곡은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피아졸라의 Oblivion. 베토벤과 도흐나니가 달궈놓은 열기를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다.
그렇게 연주가 끝나고 예상치 못했던 와인 타임이 주어졌고, 하우스 콘서트를 그렇게 애타게 제안했던 엄마는 어느새 첼리스트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첼리스트와 비올리스트와의 대화를 시작했고 이런 저런 음악적인 궁금증과 이야기들로 한시간을 훌쩍 넘기게 되었던 것이다.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들과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그 어느 공연장에서 주어진단 말이냐! 이렇듯 하우스 콘서트에 대한 찬사와 감탄은 끝이 없으리라... 이런 좋은 기회를 제공하신 박창수씨와 그외 관계자 분들이 뒷풀이를 시작하시려는 듯한 모습을 뒤로하며 거의 맨 마지막으로 집을 나섰다.
아직도 땀냄새와 거친 숨소리, 그리고 마루의 울림으로 공명했던 그날의 느낌은 한장의 소박한 연주 소개 출력물과 함께 남아있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고 힘들었던 와중에서도 친절하게 관객의 마음을 헤아려주었던 강주이 비올리스트와 김우진 첼리스트의 배려도 뜨거운 기억으로 내 마음을 울린다. 한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내 깊은 감성을 무시했던 나의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고, 이번 167번째 하우스 콘서트는 그렇게 나로 하여금 젊음에 대한 재정의를 내릴 기회를 주었다. 젊음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의 에너지같은 것만은 아니라, 마음 속 순수한 곳의 뜨거운 선율을 들을 수 있는, 어쩌면 예술적인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리라.
매주 오리라는 나와의 다짐과 함께 연희동을 나서며 먼저 자리를 떠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어디야?
응, 지금 맥주 마시고 있어. 이리로 와.
응, 엄마 사랑해요..
그렇게 뒤풀이로 엄마와 맥주를 한 잔 하고 나는 엄마의 손을 꼭 붙잡았다. 오랜만에 뜨거운 엄마의 열기가 전해졌다. 인생, 뭐 있어? 하지만 인생, 뭐 있다. 인생에는 사람이 있고 예술이 있다. 이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았던 나는, 2007년 10월 17일 나와 엄마를 비춘 신촌 부근에 뜬 환한 상현달 아래서, 아직 젊은 나는 인생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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