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땀방울
  • 등록일2007.09.22
  • 작성자이예림
  • 조회6535




두 사람의 땀방울이 바닥에 흘러 내린다.  권혁주군은 땀방울이 턱과 바이올린 사이에 대고 있던 헝겊을 흥건히 적시고, 그리고도 땀이 턱을 타고 바이올린의 가장자리에 타고 내려와 윗옷에 떨어지고, 떨어진 땀방울이 바지로 도르르 굴러내려가 바닥에 떨어졌다. "Devil"s trill"을 연주하면서, 몸짓이 격해질때마다 땀이 흩뿌려졌달까. 연주회 가서 연주자의 땀방울에 맞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김선욱군은, 선욱군 역시 연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땀이 코끝에 맺혀 있다가 떨어지고. 속눈썹에 맺힌 땀방울이 눈물처럼 보이기도 했고, 앞머리에 맺힌 땀방울은 빗방울처럼 보이기도 했다. 리즈 콩쿨 동영상에서처럼, 몸짓 한번에 후두둑 떨어지는 땀들. 그렇게 두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연주를 했다. 연주를 마친 후의 바닥은 권혁주군의 땀방울로, 피아노 의자는 선욱군의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리고 주위의 관객은 그 땀들을 화장지로 닦아 내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마도.



판소리에서 좋아하고, 재즈에서 좋아하는 그것을 권혁주/김선욱 듀오 공연에서 찾을 수 있었다. "공감" 이다. 판소리에서도 서로 장단을 맞추고 흥이 나면 관객도 얼쑤! 장단을 넣고 판이 신나게 흘러나간다. 비록 작은 고개짓 혹은 들썩이는 어깻짓 정도이겠지만, 보이지 않는 내 몸은 이미 일어나서 덩실 덩실 춤을 추고 있고, 나도 모르게 내 목의 깊은 곳에서 끅 소리가 나온다. 내가 의식하고 통제하기도 전에, 흥을 참을 수 없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두 사람이 공연을 하는 내내 서로에게 보내는 눈빛, 그리고 눈짓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서로 장단을 맞추고 신이 나고 흥이 나고 있었다. 한 악장이 끝날때마다 서로에게 보내는 웃음, 하지만 웃음을 보낸 직후 바로 다음 악장을 시작할 때의 즉각적이고도 깊은 몰입은 이 두 사람이 연주하는 것이 단지 앞에 놓여 있는  악보만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로의 연주를 듣고 보고 그리고 즐기고 교감하고 관객 이전에 연주자가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의 듀오 공연 이전, 저번 토요일에는 피아노앞의 괴물이라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연주를 들었다. 러시안 피아노 협주곡의 밤이라는 거창한 제목에 걸맞게, 거대한 피아노 협주곡을 무려 세 곡이나 들고 나와서 기가 막히게 연주해주었다. 피날레가 채 끝나기도전에 터져나오는 박수는 그래 정말 대단하구나 하는 느낌을 가득 싣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완전한 연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권혁주/ 김선욱군의 연주는 완전하기 보다는 온전한 연주였다.  선욱군의 지난 몇차례의 연주를 듣고 나서 떠오른 단어는 늘 " 온" 이었다. 온전하다는 느낌. 완전한게 아니라 온전하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연주는 마치 CD를 듣는것 같이 완벽했다. 피아노를 친다는 것이 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완벽한 테크닉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왠일인지 가슴속까지 파고들지는 못한다. 완전하지만 온전하지는 못하다. 선욱군의 연주는 투명하고 솔직하다. 내가 느끼는 것을,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저 3층 맨 끝줄의 관객에게까지 알려주고야 말겠어 라는 의지로 과대하게 욕심껏 감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냉정하게 절제되있으면서도 섬세한 묘사가 그대로 정교하게 전해진다. 연주가 온 몸으로 피부를 통해 스며드는 것 같다. 연주가의 진심이 느껴지는 연주이다. 그래서 선욱군의 연주를 듣고 나면, 감동이 온다. 가슴이 차오르다가 조용히 가라앉는다. 한 곡의 연주를 통해 연주가와 함께 짧은 여행을 한 듯한 느낌이 든다. 연주가 끝나면, 그래서 박수를 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숨을 깊게 쉬게 된다. 긴 여정이 끝났구나... 어제의 권혁주/ 김선욱의 마지막 연주가 끝나면서 선욱군이 페달을 뗄 때까지, 그래서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지만 아직 나직한 피아노 소리가 서서히 사라질 때까지,  말 그대로 "연주가 끝날 때까지 " 연주를 감상한 관객들도 그러한 여정에 함께 했기 때문에 그저 연주자의 명성이나 테크닉에 대단하다 정말 잘 친다 라는 식의 박수는 치지 않은게 아닐까.







참 감사했다. 두 사람이 여러 국제 콩쿨에서 수상한 이름난 연주자여서가 아니라, 이 순간 이 공간에 있는 관객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연주자라면 누구나 최선을 다하지 않겠느냐 싶지만, 그렇지 않은 연주자도 봐왔고, 무엇보다 그 진심이 관객에게 전달해지기가 그리 쉬운일이 아닌것 같아서 더더욱.







P.S



제 2의 하우스 콘서트를 이십년 후쯤 열 생각을 약혼자와 나누고 있는 나는 어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하우스 콘서트에서 중요한건, 좋은 악기, 좋은 음향시설, 좋은 연주자 이기도 하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주인이라고. 이전에도 여러번 왔었지만, 관객을 배려하는 모습을 계속 봐 오긴 했지만, 한 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렸던 앞줄의 관객들에게  " 시간 때워드릴게요" 라고 작은 목소리로 이런저런 얘기 해주는 게 참 편안했다. 물론 주인은 손님을 다 일일히 알아보지 못하지만, 손님은 주인을 알아보는 입장에서 왠지 주인도 나를 개인적으로 따뜻하게 맞아 줄 것 같은 편안함이랄까. 나오면서 좋은 공연 뿐 아니라 편하고 재밌게 잘 놀다 간다고 직접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수줍음에 다시 그냥 고개만 숙여 인사하고 나온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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