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 등록일2007.03.26
  • 작성자권유정
  • 조회8252
오래 전 이야기지만, 꽤나 나를 좋아한다고 믿었던 사람에게
뜬금없이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맞은 뒤통수에 한 30초쯤 가만히 앉아있다가
자존심에 또 오기에 그러자고 한 후
돌아서서 나오는 길에 예전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만나서 한참을 놀다가 들어왔고…
아마 두 달 정도를 아무 생각없이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고
신나게 놀았던거 같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혼자 기차를 탈 일이 생겼는데,
기차를 타고 한 10분쯤 지났을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해서
그 때부터 내리 3시간을 넘게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앉아 있었습니다.
결국 내가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고 생각했던 두 달은
그냥 잠시 덮어놓았던 것말고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던거 같아요.
처음 헤어졌을 때 그냥 솔직하게 아파했다면, 솔직하게 슬퍼했다면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아프고 슬프지 않았을텐데,
내 자존심 때문에 아무에게도 마음을 보이지 않으려다가
결국 마음만 더 다쳤던 그 때 그 시절… 한 번씩 들여다본 시구절이 있습니다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지난 금요일에도 뒤통수를 한 대 맞았습니다.
뒤통수를 맞을 때는 늘 하나의 전제조건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상대방을 너무 믿었다는 점.
굳이 변명을 하자면…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대충 어림짐작 하고 있던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박창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라는
연주자가 내건 전제 조건에 너무 쉽게 마음을 놓고 있었고
그래서 “사랑”의 말랑한 면으로만 무게중심을 기울인 죄값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덜컹… 덜컹… 나를 두드리는 소리에
한참을 빈 집에 갇혀있던 시와 여러가지 생각들이 되살아났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여전히 그 따뜻한 어감과는 달리
종종 나를 그리고 상대방을 상처투성이로 만들곤 합니다.
때로는 인식하지 못해서. 때로는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2부에서 들은
가슴속에 무겁고 커다란 돌멩이 하나가 들어있는거 같은 강태환 선생님의 연주와
가슴속에 잔잔한 돌멩이가 하나 둘 셋 넷... 수십 개도 넘게 들어가 있어서
심장이 어디쯤 있는지 알게 해주는 박창수 선생님의 연주는
얼마전 처음으로 들었던 프리 뮤직과는 또다른 느낌이어서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네버 엔딩 스토리 책을 집어든 것만 같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이 왜 프리 뮤직을 찾는지 이제 조금은 알거 같습니다.

마음이란 언제나 여진(餘震)에 흔들리기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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