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회 하콘 관람기
  • 등록일2007.03.04
  • 작성자하루사리
  • 조회8828




3월3일 영흥 풍어제에서 김매물 만신이 작두위에 섰습니다. 만신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무당을 가리키는 황해도쪽 말이예요. 





2부에서 최선배씨가 물컵을 하라다씨 아래에 놓았다는 데에서 꺼리를 얻었다. 거기서 이야기가 생겼다. 목이 마르다, 물을 마시자, 내가 쉬는 때니까 이땐 음악에서 나오자. 아 시원타~  저 사람도 목이 마르겠네, 이왕이믄 같이.. 아나.  발 코앞에 뒀으니깐 눈 뜨고 물좀 마시면서 쉬엄쉬엄 하자..



그런데 하라다씨는 눈을 계속 감고 연주에 몰입했고, 관객 하나가 물컵을 안 치워줬으면 물을 툭, 엎지를 뻔 했다. 못된 생각이지만, 사실 물컵을 쏟기를 바랬다, 자못.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물컵이 쏟아진 담 순간 여러 사람이 부담스러울까 염려하여, 용감한 관객 하나가 얼른 컵을 치워서 일이 없었다. 시원섭섭한 순간이었다.



트럼펫 두 개와, 호스를 번갈아 불면서 소리 만들기에 여념이 없던 최선배씨와, 오직 피아노 건반위에서 놀던 하라다씨는 다른 이야기속에 들어갔다. 여러 가지를 옮겨 다니게 되면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넘어갈 때 한 번 쉬게 되고 그게 이야기/구조의 호흡 주기가 될게다. 악기에서 입을 떼는 순간 소리가 없고, 소리가 없으면 관객은 음악이 끝나는 것으로 여긴다 - 소리가 없을 때 비일상적 행동이 일어난다면 음악 아닌 다른 것-퍼포먼스?-이 이어졌다고 여길 수는 있다.



반면, 피아노는 연주자가 그 이야기 속에 폭 들어갔다. 듀엣하는 딴 연주자의 신호에 영향을 받든, 관객에게 영향을 받든, 아 여기서는 이렇게 해야 것구나, 그런 자기의 결심이 들어갔든. 그래서 전체로 봤을 때는 피아노가 이야기를 이끄는 것같다. 관악기?는 피아노를 꾸준히 건든다, 이렇게도 좀 해 봐, 숨도 쉬고 물도 좀 마셔 가면서..



피아노도 꾸준히 이야기를 요러쿵 조러쿵 만들지만, 특히 관악기가 와서 뚜뚜빠빠 그러면 확실히 딴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러면 어떤 이야기냐? 근데 이게 언어처럼 공통 어법이 있는 게 아니라서 듣는 사람이 다시 구성해야 한다, 나름의 룰과 원칙으로.



2부의, 두 연주자가 번갈아가다가 합한 연주를 나름대로 다시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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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트럼펫이 뿌우 뿌우, 이제 밤이 다가오고 저 멀리 굶주린 늑대가 활동을 시작하게 될거다. 한낮의 활동으로 피곤한 사람들은 발길을 집으로 이끈다.



피아노가 밤은 밤이로되, 참 따분한 밤이다, 그러면서 들어온다. 남자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낡고 헤진 모자를 난롯가 옆에 던지고는 거실에 앉았다. 에이, 오늘도 공장에서 밀린 월급 이야기를 안 하는구나, 완전 짜증난다. 세상이 거지같아..



집 구석에서 마누라가 다시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 공과금 낼 돈도 없고, 어찌 살림을 하누.. 야, 내 능력이 여기까진 걸 어쩌니? 니가 나가서 벌어봐! 에잇.



목소리를 높이려다가 현관 문을 탕, 걷어차고 밖으로 나왔다.



어둠이 깊게 번진 밤길. 돌담을 지나 불빛이 희미하게 보이는 거리로 나섰다.



우둑하니 잠시 거리 가운데에 섰다. 어슬렁 지나가는 고개숙인 행상인이 지나간다. 양 손에 빵을 들고 있는 자그만 소녀가 뛰어가면서 바람이 휙 분다. 젊은 여자애들 한 무리가 꽃단장하고 수다스럽게 클럽으로 향한다, 그 중 한 명이 부쟁이에게 부딪혔다. 눈 앞에 술집이 있다. 잠시 쉬세..



트럼펫이 뿌요뿌요, 그러다가 피아노와 합류했다. 갑자기 젊은 녀석이 나타나드니, 들어갑시다. 둘이 한 테이블에 앉는다.



나, 당신을 잘 알고 있소. 내가 어리게 보이지? 천만에. 난 이미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소.



이 녀석이 단단히 취했구나, 낮부터. 야, 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어른한테 뭐하는 짓이니? 넌 부모도 없냐 이눔아?



훗, 난 당신이 과거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다 알고 있대니. 당신, 이 근처 어디어디에서 살고 있잖아. 5백 3십 2보를 걸어서 근처 석탄공장에 다니고 있고. 애 둘은 머리 좀 컸다고 몇 달전 집을 나갔고. 양파를 생것으로 못 먹잖아, 생선을 가장 좋아하지? 근데 사장이 두 달이 지나도 월급을 안 주잖아. 왜인 줄 알어? 하하하



이 녀석이 미쳤군. 단단히 미쳤어.



두 사람은 일어났고 남자가 젊은이를 때리려고 한다. 둘은 술집에서 서로 쫓고 쫓기면서 우당탕 마구 뛰었고 술잔들이 깨지고 주인이 핏대를 세우고 이들을 쫓아내기 전까지 아수라장이었다.



술집에서 주인에게 쫓겨 나왔을 땐 이미 두 사람 다 지쳐 있다. 잠시 관이 쉬고 있고 피아노가 홀로 나아간다.



그래, 니 말이 맞다. 말한 대로다. 근데 너, 어찌 그걸 알간?



뭐시? 어찌 알간? 야, 내가 니 할애비다. 할애비가 저 하늘에서 니 하는 꼬라지가 하도 못마땅하여 땅으로 내려왔다 이눔아. 할애비 얼굴도 모르간디? 내가 이 세상으로 내려올 적, 하도 고생고생이 심하였기로, 혹 내 손주놈 만나면 대접 안 해줄까, 하여 기대하고 니 앞에 떡, 하니 나타났는데 고작 이거여?  아이고.. 내가 화나고 분하여 다시 하늘로 못 가겠다. 나 여기 눌러 살란다.



마구 소란을 피우다가 지친다. 혼자 가던 피아노, 고요해지는 틈 바구니로 트럼펫이 뚜우 들어온다. 달이 하늘 한 가운데에 둥글게 걸렸다.



아, 할아버지라구? 어디 봅시다... 어, 할아버지 맞네. 아이고, 내 몰라봐서 미안허요. 여기 절이라도 좀 합시다.



아, 내가 그런다고 화가 풀릴 거 같어? 필요없어 이눔아.



삐지셨군요. 그런 걸로 삐진다요? 그럼 내가 우리 할아버지 앞에서 춤좀 치것소. 우리 할아버지, 놀려줄테니, 이거 보고 화좀 푸시오. 트럼펫 솔로. 정적인 춤이다. 내가 왕년에 이렇게 헌들헌들 놀기는 했소. 피아노가 조용조용 사이를 헤잡고 들어온다.



음.. 좀 풀린다. 야, 근데 그거보단 여기선 이렇게 발을 두 번 더 구르는 게 낫지 않간디? 좀 더 명랑하게. 손도 좀 더 벌려서 높이, 이렇게! 아이고, 신 난다. 그래, 니가 할애비를 알아 봤구나. 피아노 솔로가 막 구르다가 다시 잠잠해진다, Eb 장조. 이제 하늘로 좀 돌아가 볼까?



잘 생각하셨소, 안녕히 가셔요, 다시 오지 말고. 흐믓하게 집으로 돌아간다. 피아노 소리가 잦아든다. 집에 도착했고 아, 그래도 이승이 좋구나.. 현관 문을 연다. 갑자기 문 앞으로 뭐가 쿵!! 떨어졌다, 내가 그냥 갈 줄 알았지? 푸하하





*피아노와 트럼펫이 같이 가면서, 피아노 - 젊은이로 나타난 할아버지; 트럼펫 -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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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유치하고 어이없다. 억지로 만든 이야기같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그러나 맘에 안 들어, 그럴 수는 있지만, 이거 틀렸어, 그러면 안 된다. 이야기에 관한 공통 어법이 없으면 나름의 가정과 전제로 만들면 된다. 그리고 전체가 전제에 부합하면 된다.



와인을 몇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연희동 하우스콘서트의 매력이다. 최선배 선생님은 음악가들을 기운 빠지게 하는 글쟁이들이 너무 많다고 하셨다. 니네들이 한 번 만들어 봐라, 그 정도 나올 수 있는가..   글 쓰는 사람들이 자기 잣대로 생산하는 사람들을 평가하고 족쇄 채우면 안 된다는 말씀으로 들렸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생각의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저 특이한 발성, 아일랜드 민요를 편곡한 애냐의 음반이라 하신다. 하라다씨를 원정 온 일본 사람들도 몇 무리씩 둥글게 앉아 이야기하고 와인을 마셨다. 박선생님의 생일을 맞아 혜림씨 선애씨가 떡볶이를 맛있게 만들어 사람들과 같이 나눈다. 조그만 것도 나누는 것이 한국 사람들의 미덕인 것 같다. 언어가 좀 닮은 터키 사람들이 사과를 갈라 준 기억이 났다. 쾰른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였다.



하라다씨에게 물컵을 건내준 최선배씨가 맘 씨 좋은 이웃집 할아버지 같았던 건 그 미덕이 익숙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과 이야기 중 고 김석출 옹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생산적인, 현장감 넘치는 음악인들과 음악 애호가들의 만남.

하우스콘서트만의 미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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