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th 관람기..라기 보다는 생각나는것들.
  • 등록일2007.01.24
  • 작성자정세환
  • 조회8056
전통의 파괴

1. John Cage from Sonatas and Interludes

전통이 뭐지?
올바른 것. 올바른 것이란 대체 뭐지?
나의 올바름, 너의 올바름, 제 3자의 올바름,
어떤 올바름이 진짜 올바름일까?

옛말에 세 명이 모이면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던데, 호랑이가 전통일까?

한 친구를 만나서 이곳까지 같이 오게 되었다. 오면서 줄곧 그 친구와에 옛 기억들은 더듬에 보았다. 기억; 보라색 가방, 검정 구두, 티켓, 덕수궁길, 옥수수 수염차, 아무도 없는 식당, 생선초밥, 작은 뒷길, 소나무, 그림들, 웃음

항상 똑같은 슈퍼마켓을 이용하는 사람들, 레스토랑에서 항상 같은 자리에만 앉는 사람들,
매일 같은 길로 출근하는 사람들,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우리는 어쩌면 머리 속에 길을 만들고 그 길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속의 수많은 미지의 영역들은 남겨놓은채 우리는 계속 같은 한 길만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음악은 그 길로 가고 싶지 않은가보다. 자꾸 미지의 영역속으로 파고 든다. 점차 원래의 길들과는 멀어진다. 불빛도 희미해 진다. 뭔가 있기는 한걸까?

전통 ; 옛날에는 착하게 살면 좋은 삶이라 생각했다. 착하면 하늘이 복을 준다고 말한다. 착한게 뭘까? 남을 도와주는거? 조용히 자기 할일만 하고 사는거?
과연 우리가 착하게 살고자 한다고 해서 착하게 살 수 있을까? 난 그 친구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처럼 어긋나는 이유는 뭘까? 대체 착하게 사는게 뭐지?
우리는 착한 일을 의도한다 해도 착한 일을 이룰 수 없다.
세상은 내가 의도한 대로 되지 않는다.

기억의 단편성,
우리의 기억들은 단편적이다.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머리 속에 저장한다. 나는 어떤 날 만났던 한 사람에 대해 기억하려 했지만, 내가 생각나는 것이라곤 보라색 가방과 검정색 구두,
혹시 이 세계는 나 머리속에 있는 기억이라는 생물이 만들어낸 세계가 아닐까?
사실 나의 기억과는 다르게 진짜 세계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

불안, 왜 불안한가?
기억의 상실, 상실에 대한 불안감. 기억이 사라지고 나면 나 조차 없어질 것 같은 불안감
그 기억이 나의 것인가? 어쩌면 이 기억들이 조작된 것이 아닐까? 불안감.
조작의 가능성, 내가 아는 모든 세계가 조작된 것이 아닐까?
나는 어쩌면 악령에 씌워져 가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세계에 "진짜"가 존재할까?
이 모든 것이 우연한 것들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우연, 내가 여기있는 것도 우연일까?

2. Toru Takemitsu : Les yeux clos II

일상 ; 의미없는 반복, 뭔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매일 아침 자명종은 나를 귀찮게 하고, 회사에서는 수많은 일거리들이 시간을 압축시킨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좋아하는 사람들, 싫어하는 사람들. 내가 집착하고 싶은 사람들, 내가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불같은 사랑, 서로의 욕구만을 채워주는 사랑, 섹스를 위한 거짓말들, 서로에 대한 구속, 사랑으로 위장한 집착들, 마음의 표현 그 모호함,
그러나 이런 것들이 내게 무슨 의미를 주는거지? 의미를 가진 것들이나되는 걸까? 아무 의미없는 것들, 썩어져 없어질 것들, 지나면 잊혀질 것들
어쩌면 의미있다고 착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인생, 원래 의미가 없는 지도 모른다.

3. Niccolo Castiglioni : Cangianti

일종의 놀이;
어렀을적, 엄마가 보내준 놀이방에는 밟으면 도레미파솔라시도 소리가 나는 거대한 건반이 있었다
처음에는 차례대로 밟아본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소리가 신기하다. "파"음이 마음에 든다. 한번 눌러본다. 소리가 울리더니 조금씩 사그라들면서 사라진다. 연속해서 눌러본다. "파""파""파""파"..소리의 울림이 서로 겹쳐진다
다른 아이들도 같이 발판을 누른다. 도 미 파 시 레 미 ...
점점 신이난다. 두 세개 씩 동시에도 눌러보고 한 가지 음을 세게 눌러보기도 한다.
내가 누르는 소리가 다른 아이들이 누르는 수많은 소리에 섞여서 잘 들리지 않는다. 점점 세게 누르고 빨리 누른다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빨리 누른다
ㅇ나ㅣㅓ리ㅏ머히ㅏ멍나ㅣ러ㅣㅏ머히ㅏㅁ넝라ㅣㅓㅁ이ㅏㅓ라ㅣㅓㅏㅣㄴ어히ㅏㅓ마ㅣㅓ리ㅏ머ㅏㅣㅓㅎㄴ아ㅓ리ㅏㅁ나ㅗ하ㅗㅁㅈ댜ㅗ개ㅑ

4. Erik Satie

이런 생각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것에 만족한다면, 우리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길 가에 피어있는 작은 꽃들도, 아침에 들리는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도, 거리의 자동차 소리들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내 앞에 놓여 있는 회전목마, 어떤 의마가 있냐고? 나도 모른다. 그냥 타는거다. 왜 타냐고? 나도 모른다.

5. Roman Haubenstock-Ramati : Catch 2

꿈; 꿈 속는 방향성이 있는 듯 하나, 스스로 어떤 방향성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사실 꿈 속에는 방향성이 없다.
꿈 속에서 나는 1층 계단에서 부터 시작해서 13층 계단까지 올라갔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다시 1층 계단이다.
나는 꿈 속에서 항상 열심히 뛰어다니고,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나
사실 그것은 허구다.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왜냐하면 꿈에서는 방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꿈은 재미있다. 흥미있다. 말도 안되는 일들, 인과성이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지만 꿈이기 때문에 마냥 즐겁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방향성이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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