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한없이 황홀한 신기루같던 현대음악의 선율들
  • 등록일2007.01.24
  • 작성자정필주
  • 조회8459

성악을 하는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해왔다. 악기란, 어쩌면 정해진 음을 "생산"하는 "물건"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구성되고 창조되는, 형체없는 바람처럼 황망하고 황홀한 신기루가 아닐까. 성악가에게는 "몸"이 악기인데, 사랑에 빠진 여인이 만들어내는 음성은 그 자체가 멜로디가 되어 설레는 한 폭의 그림이 되기도 하니까.

존 케이지의 연주들을 들으면서 악기로써의 내 "몸"을 다시보게 되었다. C major가 왜 항상 C major 이기만 하겠는가. 그것은 때로는 낮은음자리표 저 아래의 괴상한 진동음이기도 할 것이다. 존 케이지는 이 장난스러운 현상을 극단으로 밀어붙였던 것 같다. "도"가 더이상 절대음으로써의 "도"가 아니라면? 타악기가 발칙하게도 멜로디를 가진다면? 이번 140회 연주는 내게 그래서 즐거우면서도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현대음악은 흔히 전통적인 조성과 박자가 파괴된 음악이라고 한다. 난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을 듯 했다. 그래서 그날 함께 연주되었던 에릭 사티나 라마티, 타케미츄의 음악은 비교적 무난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존 케이지의 음악은 그 절대적 "음" 자체에 장난을 쳤기에, 인위적으로 바꿔버렸기에 듣기에 곤혹스러웠다. 내가 알던 "도"와 "미"는 없어져버렸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는 내가 이제껏 알지 못하던 생경한 음들이 자리를 꿰차고 들어앉아 있었다.

하지만 난 그들을 "너네들 집에 가"라고 내쫒을 수 없었다. 내 음악적 감수성에 들이닥친 그 몽환적이고 이질적인 음들을 머리속에 꽁꽁 싸맨채, 난 하우스콘서트 나무간판이 달린 대문을 나섰다. 그리고 거리를 걸었다. 겨울의 한가운데 였지만 가로등 불빛때문인지 춥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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