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에 다시 시작하다
  • 등록일2009.08.02
  • 작성자문병철
  • 조회4102




1964년 미국 텍사스 브라운우드에서 태어난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얼마나 야구를 좋아했던지,

무려 3살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지요.

야구를 하면서 행복해하고 야구를 하면서

메이저리거라는 거대한 꿈을 꾸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소년의 주변에서는 야구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소년이 다닌 학교에서는 축구 프로그램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축구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 소년의 가슴 속에서는 오로지 야구밖에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여전히 메이저리거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요.



드디어 그는 1983년, 열아홉의 나이에 마이너리그 투수가 되었습니다.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지명되어

프로에 입단하게 되었지요.

청년이 된 그는 더욱 더 열심히 연습하였습니다.

그러나 훈련을 너무 열심히 한 탓일까요?

팔과 어깨에 부상을 입더니,

심지어 인대가 끊어지는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의사의 충고는 다음과 같았지요.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다고요.



그 청년은 눈물을 머금으면서 야구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고,

그의 오랜 염원이던 메이저리그를 향한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는 1989년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고

그의 고향인 텍사스로 돌아왔습니다.

텍사스의 빅 레이크 고등학교에서 화학 교사겸

야구부 코치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자신은 메이저리거가 되지는 못했지만

내 제자만큼은 메이저리거에 도전하는 꿈을 갖게 하겠다고요......



그러나 현실은 탐탁치 않았습니다.

지역 예선조차 번번히 탈락하는 팀이었고

더욱이 야구부원에게는 특별한 열정 따위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너무나도 큰 슬픔을 겪었기에,

자신의 야구팀 아이들에게 꿈을 포기하도록 놔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다.

너희들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야구부원들은 반응이 냉담했습니다.

심지어 팀원 중 한 아이는 이렇게 말했지요.

"선생님도 메이저리거가 못 되어서 결국은 여기서 코치하고 있는거잖아요...."



그 말에 큰 슬픔을 느낀 그는 포기할까 생각도 해보고

아예 그만둘까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꿈을 가질 수 있는 아이들에게 "포기"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아이들에게 열정을 가르치려고 하였습니다.

직접 몸으로 뛰면서 그들에게 야구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야구부원들에게 투구지도를 하던 그가 직접

투구 시범을 보이던 중,

자신의 20살 현역 시절보다도 더 빠른 공을 던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일제히 놀라움에 환호성을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외쳤습니다.



너희들은 할 수 있다.



그 이후 그는 주(州) 대회 우승을 노려보자며

야구부원들에게 꿈과 열정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은 그에게 조건을 내밀었습니다.



"선생님이 메이저리그에 간다고 약속하면 우리도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



아이들은 150km가 넘는 빠른 공을 던지는 그의 공을

야구부원들의 배팅볼로 쓰기 너무 아깝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미 야구를 그만둔지 수년이 지났고,

물론 치명적인 어깨 부상으로 더 이상 공을 던질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도 유효한 상태였습니다.

또한 이미 세 자녀를 둔 가장이 되어버린 그에게는

메이저리그를 향한 도전은

너무나도 무모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도 열정이 식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공을 던지면서 느껴오는 손의 떨림을 거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열정이 물 속에서 잉크가 퍼지듯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아이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하였습니다.



"너희들이 지역예선을 통과한다면 나도 메이저리그에 도전을 하겠다."



사실 매우 무모한 약속이었지요.

아마 그도 아이들도 이 약속이 지켜지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무모한 도전은 새로운 도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만년 하위권이던 빅 레이크 고등학교가 결승리그에 진출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먼저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제 그의 차례였지요.

비록 그에게는 부양할 가족이 있었고 모든 걸 포기하고

야구를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었지만,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는 이미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피나는 훈련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결국 야구를 접은지 10년만에

트라이아웃(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일종의 오디션)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때, 그는 그 누구의 관심도 주목도 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트라이아웃 당시 큰 아들과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딸을 들쳐업은 채 트럭을 몰고 와 구단 관계자들과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어린 선수들에게 비아냥을 당하기까지 하였지요.



그러나 그 비아냥도 잠시,

그의 무거운 표정과 침묵 속에서 그의 손을 떠난 공이

포수 미트에 꽂히는 순간 비아냥은 순식간에 침묵으로 돌변하였습니다.

무려 시속 157km로 꽂혔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2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

1999년 9월 18일, 기적이 발생합니다.

템파베이 데블레이스는 텍사스 레인저스에게 1-6으로

뒤지고 있던 8회 말 투아웃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그를 지목했는데요...

가족은 물론 학교 관계자들과 제자들까지 모두 경기장을

찾은 가운데, 그가 메이저리그의 마운드에 떡하니 서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가 던진 공은 단 4개.....



이미 승부가 기울어진 상황이었지만,

그는 타석에 들어선 타자에게 공 4개를 던져

삼진으로 처리하였습니다.



그 날은 그가 만 35세의 늦은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날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메이저리거 짐 모리스입니다.....







그 이후로도 그는 2000년에도 열여섯차례 등판해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으로 짐 모리스만의 전설을 만들어냈습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2001년 봄에 은퇴를 하였습니다.

부상의 재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고등학교 아이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말이죠...







"이미 나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꿈을 이루었다.

이제는 내가 아이들과 약속을 지킬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