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걸린 박창수
  • 등록일2008.06.11
  • 작성자박창수
  • 조회4353

요즘 정신을 딴 데 놓고 지냈던 거 같습니다.

오늘 기말고사 시험이라 학교에 가야 하는데…
사실 어젯밤부터 시험문제 출제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습니다.
너무 내 중심적이지 않을까
객관적 판단에 오류가 생기지 않을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도 그 생각 때문에 고민이 이어지다가…
(시험 출제의 고민도 고민이었지만 요즘 분명 정신이 멍하게 딴 데 가 있었습니다)
오후 1시쯤 갑자기 오늘 밥을 먹지 않았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 순간 우리 강아지들 밥도 안 줬다는 걸 발견하게 됐습니다. 2시에는 나가야 할 상황.
이런….

대충 아무 바지하나 걸치고 애들 밥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고
왜 인제 밥 주냐는 원망 어린 모습들을 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들어오려는데…
……….

그만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 겁니다.
며칠 전부터 밧데리 경고가 있었다는 걸 그제서야 기억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늘 준비는 철저히 하는 성격임에도 요즘 정신을 놓고 살았다는 게 여실히 드러난…
주머니엔 오로지 핸드폰 하나.
그 순간 내가 입고 있는 옷의 꼴이…런닝 차림에 슬리퍼에…
더욱 가관인 것은 바지였습니다
급한 마음에 아무거나 줏어 입고 나온 바지가 하필 고무줄이 끊어졌는지 흘러내릴 지경이었거든요.
둘둘둘 말아 배 위에까지 걷어 올린 상태의 내 모습은 아마 여러분이 상상하기 힘들 겁니다.
-.-;;

거실문도 잠겨 있고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라곤 2층 베란다 문 뿐인데(환기를 위해 열어 놓은 게 생각났습니다) 그 2층으로 올라갈 방법이 없는 겁니다. 사다리를 놓아도 불가능한 상황.
앞집에 이삿짐 차가 여러 대 와 있었지만, 지금의 꼴로는 대문 밖에 나가 도움을 요청할 엄두도 나질 않았습니다.
머리는 쑤세미 상태에다 물론 여태 씻지 않은…
119로 전화를 해야하나
학교에 알려야 하나…
하필 담배도 하나 없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
그냥 한숨만 나오더군요.
왜 이러냐 박창수….

그때 갑자기 생각난 안방의 창문….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고민하면서 바깥바람 쐬겠다고 열어놨던…드디어 생각이 난 거죠.
그리곤 작은 사다리 이용해 안방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스운 건 안방으로 들어온 발자국을 이후에도 지우지 않았다는…
그 이유는 잘 모르갯습니다.
무슨 개선장군도 아니면서 말이죠.

그렇게 들어온 후 축 처진 어깨는 라면을 끓여야 했습니다.
왠지 내가 좋아하는 아욱국보단 라면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8시까지 견디려면 조금은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밥도 두어스푼 말고…

그렇게 우울하게 집을 나서
우아한 척 강의실 문을 열었습니다.

자 이제 시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