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통영국제음악제 프린지 – 그 늦은 후기.
- 등록일2008.03.31
- 작성자강선애
- 조회4431

2008 통영국제음악제 프린지 초청공연 – <박창수와 무성영화> 그 늦은 후기.
EPISODE 1.
선 애: “선생님, 이제 나오세요.”
선생님: “,….$%&^%*&^……(화들짝 놀라시며) 응? 지금 몇 시니?”
선 애: “…….. 네?”
첫 날.
봄이라고 하기엔 조금 날씨가 쌀쌀했던 통영에 도착했다.
미수교회에서의 첫 공연까지는 시간이 남아
“6시에 선생님 숙소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각자의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오는 길이 많이 막혀, 선생님이 좀 피곤해 하시기는 했지만
내 생애 결코 지각이란 없다고 명예스럽게 말씀하시던 선생님을 떠올리면서
유정언니와 나는 6시라는 시간을 결코 넘겨서는 안 된다며 허겁지겁 숙소를 나왔는데…
벌써 숙소 밖까지 나와서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고 계실 선생님을 상상했건만
혹시나 몰라 전화를 드렸더니 선생님께서는 아직까지도 꿈나라에 계셨다.
담배 한 개피에 불도 붙이기 전 그만 잠이 드셨다나 뭐라나…
아무튼 내 생애에 결코 지각이란 없다던 선생님의 명예에 금이 간 채, 우리는 미수교회로 향했다.
CONCERT 1.
교회에서의 프리뮤직 공연이라…
이 알 수 없는 오묘한 조합에 과연 사람들이 얼마나 올지,
듣다가 정말 다들 쏙 나가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만
공연이 시작되고 끝나기까지 나는 서울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표정들을 접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선생님의 연주가 더불어 시작되자, (솔직히 말해서)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날도 어둡겠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교회 주변으로는 해풍이 불어 제끼겠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무성영화에, 선생님의 연주에, 불이 다 꺼진 교회에…
그런 공포의 분위기 가운데 관객의 50%를 차지하고 있던 어린 아이들이
점점 무섭다며 귀를 막고, 울기도 하고, “내는 못보겠다.”며 벌벌 떨기 시작했다.
내심 아이들이 정말 나가버릴 까 걱정이 된 나는 그제서야 슬슬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는데,
무섭다던 아이들은 여전히 무서워하면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고
가족단위, 친구단위로 삼삼오오 모여 앉은 이들도 영화에 모두 몰입해있었다.
마음을 쓸어 내리던 그 순간, 선생님께서 피아노 현에 냄비뚜껑을 올려 놓으셨고
피아노에서 알 수 없는 요란한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영화에 몰두해 있던 이들은
모두 목을 쭈욱 빼고 선생님의 연주로 시선을 옮겼다.
머리 위로 하나 둘 씩 물음표가 올려져 있는 이들 가운데 호기심이 강한 꼬마는
엄마를 기어이 끌고 피아노 근처까지 와서 알 수 없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는 데 여념이 없기도 했다.
20분 정도 연주된 선생님의 공연이 끝난 후,
연주와 동시에 관객들 반응을 주의 깊게 지켜보던 나는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이불 뒤집어 쓰고 기를 쓰며 공포영화를 소화해 내던 그림과 오늘 공연이
참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선생님과 함께 교회를 나섰다.
EPISODE 2.
“저… 싸인 좀 해주시면 안돼, 예?”
교회를 나서던 길.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의 요청으로 이어진 선생님의 사인 퍼레이드.
저들은 영화가 무서웠을까? 선생님의 연주도 무서웠을까? 신기했을까?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
나는 사인 퍼레이드를 사진에 담으며 갖가지 궁금증에 휩싸였다.
EPISODE 3.
둘째 날.
비가 흩뿌리던 통영. 여기저기 물안개가 가득하고 길가도 촉촉히 젖었고…
덩달아 우리들의 머리도 물을 머금어 꼬불꼬불해 졌지만,
이런 풍경 참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며 약속된 선생님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생님 숙소에서 다같이 군모닝 인사를 나누고
공연장으로 나서기 전, 꼭 챙겨야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냄비뚜껑.
선 애 : “선생님 그거 챙기셨어요?”
선생님: “그거 뭐?”
선 애: “냄비뚜껑이요.”
선생님: “아, 내 냄비뚜껑.”
선 애: ‘(내.. 냄비 뚜껑???)’
그렇게 선생님께서 애지중지 하시는 “선생님의” 냄비뚜껑을 마지막으로 챙기고
프린지 홀로 향했다.
CONCERT 2.
추적추적한 날씨 속에 도착한 통영 페스티벌 하우스 內 프린지 홀.
전 날 교회에서의 공연에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뒤섞여 차분한 분위기가 감돌았었는데,
왠지 프린지 홀에는 아이들만 드글드글 한 것이 이번에야말로 참을성 없는 아이들이
진정 공연 보다가 죄다 나가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공연…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공연이 시작되고 몇 분이 지나자 아이들은 제각기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선생님의 공연과 영화를 동영상으로 찍기 시작했고,
전 날 교회에서의 관객들보다 더 길~게 목을 쭉 빼고 공연에 집중했다.
냄비뚜껑 소리가 나면 전 날 교회에서처럼 아이들의 시선은 일제히 피아노 쪽으로 향하고
피아노를 봤다가 영화를 봤다가 다시 피아노를 봤다가…
여전히 영화가, 혹은 선생님의 연주가 무서워 귀를 막거나 우는 아이들이 있기는 했지만
진짜 무서웠을 아이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나는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썼다. 그리고 묻고 싶었다. “니 무섭나?”
EPISODE 4.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우리는 프린지 홀 공연이 끝난 후, 서울로 올라오는 차에 몸을 실었다.
월요일까지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 선생님을 뒤로 한 채,
냄비뚜껑만 잘 챙기신다면 문제 없겠지…라고 생각하며 버스 안에서 미친 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통영여고에서의 공연은 아이들이 그야말로 어수선하여 엉망진창이었다는 소식에
“선생님, 통영이었으니 그 정도지 서울이었으면 더 말도 못 했을 거예요. “ 라고
나름대로 의견을 내어 정리를 해드린 후, 나는 또 다시 생각에 잠겼다.
프리뮤직과 무성영화… 박창수 선생님께서 최초로 시도하는 이와 같은 다원예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또 얼마나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나는 이제야, 통영국제음악제 프린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프리뮤직이 어렵다면 영화를 통해서… 영화가 어렵다면 음악을 통해서…
그렇게 이해되고 이야기 되는 이런 형식의 공연과 선생님의 음악이, 그리고 무성영화가
통영의 그 작은 아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되었을 거라고
앞으로도 많은 이들과 소통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자신 있게 얘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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