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저널] 슈만의 내면을 항해하다 2024 줄라이 페스티벌 - 슈만이라는 바다
- 등록일2024.08.08
- 작성자하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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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저널] ISSUE 슈만의 내면을 항해하다 2024 줄라이 페스티벌 - 슈만이라는 바다
글 윤태경 사진제공 더하우스콘서트
더하우스콘서트(이하 하콘)만큼 '하우스'의 개념을 이토록 확장해 온 포맷이 또 있을까. 20여 년 전 주거공간을 연주공간으로 꾸미며 소소하게 시작한 하콘이 어느새 문화예술계 전반에 영향을 주며 탄탄히 성장했다. '너와 나'의 경계를 넘어 모두가 함께 만드는 축제라는 점이 하콘을 더욱 이색적으로 물들이고 있다. 매년 7월이 되면 하콘이 야심차게 준비하는 시리즈가 있다. 바로 '줄라이 페스티벌'이다. 이 페스티벌을 앞두고 강선애 대표와 첼리스트 이정란, 피아니스트 정태양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2002년 7월 12일, 서울 연희동 박창수 전 대표님의 자택 거실을 첫 무대로 하던 때부터 하콘은 그간 ‘위기를 기회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왔다. 줄라이 페스티벌도 그렇게 탄생됐다. 줄라이 페스티벌은 7월 한 달간 매일 하우스콘서트라는 작은 살롱 음악회 형식으로 열리는 축제다. 2020년 베토벤을 시작으로 2021년 브람스, 2022년 바르톡을 주제로 열렸다. 하콘과 함께하는 이들에게 매년 7월 한 달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서 작곡가와 조우하는 시간이다. 그 기조를 올해도 이어간다. 2024년 줄라이 페스티벌이 조명할 작곡가는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주제는 ‘슈만이라는 바다’로 정했다. 곡들 간 연결점이 있다기보다는 이 작품들을 하나의 시리즈로 한데 묶어 연주함으로써 슈만의 예술세계 전체를 조감해 보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프로그램은 ‘슈만’을 향한 항해 일지를 연상케 한다.
신진 연주자부터 세계무대에서 저력을 인정받은 연주자까지 100여 명이 넘는 연주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성악곡으로만 구성된 화요일과 피아노 독주 레퍼토리로만 구성된 수요일, 그리고 아내 클라라의 작품도 연주될 28일과 오르간 레퍼토리만 구성된 29일 일정이 유독 흥미를 끈다. 19일과 26일에 각각 슈만의 ‘Adagio and Allegro, Op.70’과 ‘Fantasiestücke, Op.73’이 여러 편성으로 연주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올해는 로베르트 슈만을 조명하네요. 줄라이 페스티벌은 다양한 레퍼토리를 다루기보다는 특정 작곡가들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강선애 사실 이번 페스티벌 주제가 ‘슈만’이 된 건 꽤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어요. 일종의 사이클(Cycle)로 이해를 하시면 될 것 같아요. 2020년도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라 그때는 그 기념으로 저희가 ‘줄라이 페스티벌’이란 제목으로 처음 공연을 진행했어요. 그 다음 해에 이을 작곡가로는 자연스럽게 브람스가 떠올랐어요. 베토벤의 정신을 잘 계승하고자 했었던 낭만주의 시대 대표적인 작곡가이기 때문이었죠.
2022년은 저희 하콘이 20주년이 되던 해였어요. 당시에 많이 거론됐던 작곡가가 슈베르트 아니면 슈만이었어요. 하지만 저희는 오히려 바르톡을 제시했죠. 정석적인 흐름을 괜히 한번 비틀고 싶었어요.(웃음) 사실 바르톡 작품이 연주되는 공연이 생각보다 한정적이잖아요. 우리가 몰랐던 그의 명곡을 이 페스티벌을 통해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첫 번째 이유였죠. 두 번째 이유는 저희 나름 20주년 기념 페스티벌이었는데 하콘의 콘셉트 자체가 어떤 실험적인 마음 도전하는 정신이 없으면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러한 면모를 닮은 작곡가가 누구일까 고민했을 때 떠오른 작곡가가 바르톡이었죠. 그래서 브람스 베토벤 바르톡이 어떻게 보면 하나의 사이클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다음에 새롭게 사이클을 시작하고자 거론된 작곡가가 슈베르트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바르톡 자리에 슈베르트 아니면 슈만을 생각했어요. 한 번 건너뛰고 시작한 셈이죠. 그래서 2023년도 작곡가는 슈베르트로 정했고, 그다음에 슈만과 동행하기로 한 겁니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장시간 연주하는 피날레 공연을 따로 두지 않았어요.
강선애 슈만의 작품들을 피날레로 한데 묶기에는 뭔가 억지스러운 데가 느껴졌어요. 저희가 줄곧 진 행해 온 대로라면 31일이 피날레하는 날이잖아요.
작곡가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을 릴레이 형식으 로 묶어 연주해 온 기존의 피날레 대신에 저희는 매주 수요일에 피아노 작품만을 길게 배치했어요.
피날레가 확장돼서 펼쳐진 개념인 셈이죠. 이번 7 월 전체 프로그램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작품번호 순서대로 연결이 돼요. 그중 3일, 10일, 17일, 24일 을 보시면 작품 번호가 초기부터 후기까지 순서대 로 이어지는데, 31일 프로그램 순서만 약간 틀어져 있습니다. 피아노 작품인 '심포닉 에튀드, 0p.13'는 워낙 방대한 규모인 점을 고려하여 후반부에 배치 하고, 어린이의 전경, Op.15'을 가장 마지막 프로그 램으로 정하면서 구조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 주고 싶었어요.
하콘은 일명 '릴레이 콘서트'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 합니다. 24시간 프로젝트, 줄라이 페스티벌, 아티스 트 시리즈 등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원동 력은 무엇인가요?
강선애 하콘의 태생 자체가 '실험'하고 '도전'과 깊 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절대 연주 하지 않을 새벽시간에도 운영하는 24시간 프로젝 트'나 한 달 동안 매일 공연을 진행하는 '줄라이 페 스티벌' 등 여러모로 쉽지 않은 시도가 하콘의 앞 날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해 요. 아마 하콘이 하니까, 하콘이 꾸준히 해오던 프 로젝트여서 어울리는 부분도 어느 정도 있다고 봅니다. 연주자와 관객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부분들이 공유되고 인식돼서 실현 으로 옮기는 일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물론 체력적으로 힘 든 부분은 있지만, 지난 2020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개 릴레이 콘서트 했 을 때는 다른 상업적인 일에서 느낄 수 있는 보람과 또 다른 보람을 느꼈죠.
이번 페스티벌의 화요일 프로그램 구성을 전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태양 지난 2월 말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의 연주를 앞두고 있던 때였어요 박창수 선생님을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그때 제게 가곡 연주를 마음대로 해보 라고 권하시면서 제가 어떻게 프로그래밍 하는지도 궁금해 하셨어요. 그날 이 후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전체 프로그램을 구성했죠. 사실 저는 평소 제 머릿속으로 리사이틀 프로그래밍을 자주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 일이 어 렵지는 않았습니다. 프로그램부터 연주자 선정까지 제게 완전한 자유를 주셔 서 조금 긴장은 됐지만 너무나 영광인 기회죠.
화요일 프로그램만 보면, 작품 순서를 반대로 배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제가 의도한 설정이죠. 2일에 연주되는 곡들은 슈만이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 든 시기에 작곡 됐어요. 이 시기에는 슈만이 합창음악이나 중창에 집중했죠. 시기적으로 30일 프로그램보다 나중에 쓰인 곡들이에요. 슈만이 클라라와 결 혼한 해인 1840년은 가장 행복했던 시기이자 140개의 가곡이 탄생된 '가곡 의 해' 입니다. 이때 그는 가수 1명과 피아니스트를 위한 작품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썼어요. 'Myrthen, Op.25과 'Frauenliebe und Leben(여인의 사랑과 생애), Op42' Liederkreis, Op.24' 등 많은 작품들이 이번 공연의 후반부에 배치돼 있 는데요. 제가 이렇게 배치한 이유는 슈만이 행복했던 시절로 마무리하고 싶었 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서 어떠한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런 방법을 선호하지도 않고요. 2일의 첫 곡인 오페라 '게노베바'는 사실 굳이 넣 었어요.(웃음) 일단 이 오페라가 흔히 올려지는 작품은 아닌데요. 슈만이 작곡 했을 당시에는 거의 실패한 작품이죠. 지금 제가 봐도 그 이유가 있다는 생각 을 해요.(웃음) 그래서 어떤 때는 슈만이 드라마보다는 시(5)에 적합한 사람이 구나 싶어요.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등한시되어서는 안 되겠죠.
피아노로 노래하는 슈만과 슈베르트에서 서로 대조 적인 부분이 있나요?
정태양 가곡 반주에서 두 작곡가 어법의 차이는 극명한 것 같습니다. 슈베르트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와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 같아요. 슈베르트 가곡에서의 피아노는 배경 역할이 주를 이루어요. 가령 자연을 묘사한다 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물레를 돌리는 느낌을 표현하고 있죠. 슈베르트의 가곡 반주 패턴은 그의 피아노 소나타에서 왼손 부분이랑 비슷한 편이에 요. 그 반면 슈만은 자연적인 묘사도 존재하긴 하 지만 인물의 심리묘사가 더욱 드러나는 것 같아요. 슈베르트가 그리는 심리묘사보다 조금 더 세밀하고 입체적인 느낌입니다. 그래서인지 전주보다 후주가 더 긴 편이죠. 슈베르트에서 선율적으로 수평 적인 면이 더욱 드러난다면, 슈만은 선율의 수평적인 굴곡보다는 화성의 수직적인 구조에 기대어 음 악을 이어가는 듯한 인상이에요.
이번에 슈만의 첼로 협주곡을 첼로 콰르텟 편성으 로 연주하십니다. 2006년 윤이상국제콩쿠르에서 선 생님께 우승을 안겨다 준 곡이죠. 이 작품에 대한 첫 인상은 어땠나요?
이정란 '어렵다'요. 세상에 이렇게 어려운 곡이 있 을까 싶었어요. 도대체 3악장은 음악적으로 뭘 의 미하는 것이며 1악장은 아무리 연습을 해도 어렵기 만 한 것일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2악장의 선율 때문입니다. '이 선율을 연주할 수만 있다면 1, 3악장의 어려움 은 극복해 볼 만한 이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곡은 연주를 하면 할수록 슈만의 언어를 A, B, C부터 배워 문장을 구사하고 점점 은유적인 표현 을 섞은 시를 쓸 수 있게 되는 작업 같은 느낌이 들 었어요. 워낙 그의 정서는 특별하고 애절한데 그걸 몸으로 표현해 내려면 악기를 다루는 스킬이 필요 하거든요.
저는 이 곡이 현존하는 첼로 협주곡들 중 가장 어 려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매력적인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곡을, 특히 2악장의 선율을 연주할 때마다 제가 첼리스트로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에 큰 희열과 감사함으로 아직도 눈물을 흘릴 때가 종종 있어요!
첼리스트로서 첼로로만 연주하는 슈만의 협주곡에서 특별히 느끼시는 점이 있나요?
이정란 이 곡은 가장 고난도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첼로 레퍼토리 3위 안에 무조건 들어가는 곡이에요. 그런데 슈만의 모든 곡이 어려운 이유는 '레가토'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현악기 연주자들에게는 활을 아주 유연하게 쓰는 스킬이 없으면 거의 표현해 내기 불가능한 것 같아요. 슈만의 레가토를 잘 표현해 내는 사람이 진짜 악기 잘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기악 전공자들에게는 하나의 큰 기준점이자 목표 지점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첼리스트들끼리 연주하는 버전은 우리가 서로 이 곡의 난이도와 특수성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특별한 배려들이 확실히 있어요. 그리고 물론 음색의 블렌딩도 아주 잘 되고요, 첼로 세 대가 한 오케스트라를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건 그만큼 첼로가 가진 매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거죠.
작곡가로서 슈만을 정의한다면요?
강선애 사실 그동안 제게 슈만은 조금 어려운 작곡가였어요. 슈만의 음악은 늘 갑작스럽다는 인상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번 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 그의 삶과 강하게 결부된 음악을 보았어요. 삶의 궤적이 투명하게 반영된 그의 음악은 자신 내면의 세계를 자유롭게, 또 비밀스럽게 쓴 일기장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순수한 마음으로 내면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표현해낸 인간적인 작곡가라는 것이 제가 느끼는 슈만입니다. 7월 한 달을 보내며 또 어떤 다른 인상을 받게 될지도 기대되는 부분이에요.
이정란 슈만의 인생은 그의 평전에서 대략 추측해 볼 수 있죠. 제가 여기서 '대략, 추측'이란 단어들을 강조 드리고 싶은 이유는, 21세기를 안락하고 무탈하 게 살아가는 인간 이정란은 감히 그의 복잡하고 불행하고 애달픈 삶과는 너무 괴리감이 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저 상상만 할 수 있으니까요. 평범한 인생은 후대에 이런 선물을 남기지 못해요. 예수의 십자가에 비유하면 너무 과할지 모르겠으나 이런 특별한 삶에게 주어진 명에이자 축복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려서부터 내재된 정신분열에 대한 두려움, 불안감 등은 그에게 판타지 라는 돌파구를 만들어주었죠. 괴로움의 정도는 곧 판타지와 창작이란 결과물과 비례하게 된 거예요.
정태양 저는 슈만이 타고난 이야기꾼인 것 같아요. 사실 더 좋은 단어가 떠오 르질 않네요. 슈만은 자기 삶을 음악적으로 어렵게 풀어낸 것 같지 않아요. 그저 막힘없이 쓰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에 불과할 뿐이죠. 작정하고 이야기 하겠다고 나선 느낌이 전혀 아니에요. 막상 이야기꾼이라고 하니까 이야기를 잘 모으고 만들어내는 뉘앙스가 있는 것 같아 어색한데요. 슈만 본인도 자기는 가곡을 쓰는 일이 무척 쉽다, 자신과 제일 가까운 일이라 고 얘기를 했다는 점에서 문학이 그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쳤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출처: 음악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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