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저널리즘] 더하우스콘서트 박창수 예술감독 - 마룻바닥 공연에서 찾은 새로운 울림
- 등록일2023.11.16
- 작성자하콘
- 조회143
마룻바닥 공연에서 찾은 새로운 울림
더하우스콘서트 박창수 예술감독
흔히 서로의 뜻이 맞는 순간을 '호흡이 맞다'는 말로 표현하곤 한다. 클래식 음악에선 비유가 아니다. 지휘자가 없는 공연에서 음악가들은 눈을 맞추고 호흡을 들으며 박자와 음의 강약을 조절한다. 연주자들이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에 관객은 함께할 수 없을까?
마룻바닥에서 진행되는 이상하고 신기한 콘서트, 더하우스콘서트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21년째, 1000회가 넘는 공연에서 바닥에 앉은 관객과 무대를 내려온 음악가는 호흡을 나누고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냈다. 더하우스콘서트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좋은 문화란 무엇인가? 그 질문의 의미와 대한을 21년 동안 더하우스콘서트를 지휘해 온 박창수 예술감독에게 물었다.
더하우스콘서트(하콘)에서 관객들은 바닥에 앉아 음악을 듣는다. 왜 마룻바닥이었나?
반드시 마룻바닥이어야 했다. 하콘을 20년 넘게 진행해 오며 처음부터 일관되게 고수해 온 사항이다. 관객이 마룻바닥에 앉으면 소리의 진동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관객석에 앉아 귀로 듣는 소리와 다르다.
일반적으로 클래식 공연에서는 울림이 좋은 공연장이 소리가 좋다고 말하지 않나?
대부분 예술의전당 같은 큰 공연장에서 듣는 소리를 '좋은 소리'라고 여긴다. 그것이 사실인 면도 있다. 그런데 사실 큰 공연장의 목적은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다. 울림은 음악을 이루는 여러 요소중 하나일 뿐이다. 그 개념을 뒤집어 하콘이 택한 것은 거리다. 연주자와 관객 간의 거리를 없애 두 주체 간의 직접 소통을 꾀했다. 관객들은 하우스콘서트에서 연주를 듣다 보면 다른 공연장에서는 그 느낌이 안 나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다른 부분에서의 울림을 노린 건데, 연주자들로선 생소했겠다.
지금은 먼저 공연하고 싶다고 연락 오는 아티스트도 있지만, 처음에는 섭외가 힘들었다. 황당해하거나 신기해했달까. 공연을 하고 나서는 대체로 충격을 받았다. 평범한 무대에서 연주자는 항상 단 위에 올라 관객과는 멀리 떨어져 서로 접근할 수 없다. 하콘에서 물리적으로 벽을 허물자 연주자들이 심리적으로도 변화를 느꼈다. 그 이후로 입소문이 났다. 하콘에서 공연하면 뭔가 다른 걸 느낄 수 있다는 거였다.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가정집을 개조하는 데는 많은 결심이 필요하지 않겠나?
처음의 아이디어는 고등학생 때 친구 집에서 연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집에서 연습할 때 듣는 소리와 친구가 무대에서 연주하는 소리가 달랐던 거다. 그 차이를 고민하며, 집에서는 연주할 수 없을지 떠올리게 됐다. 이미 유럽에서는 존재하던 살롱 음악의 개념이었다. 그러다가 2002년 월드컵이 한창 붐일 때 대형 공연이 많이 생겼는데,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한 공연으로선 결코 제대로 문화를 향유할 수 없단 반발심이 들었다. 1년 동안 차곡차곡 준비하고 집을 개조했다. 1층을 생활 공간으로 두고 2층 25평 정도의 공간에서 첫 하우스콘서트를 열게 됐다.
집에서 이루어진 콘서트에,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재밌고 신기하게 느꼈던 것 같다. 초창기에는 대중음악이나 국악 등 다른 장르도 많이 수용했는데, 그때 참여했던 분들이 클래식 공연에도 와보고 마니아가 되는 경우도 굉장히 많이 봤다. 무엇보다 더하우스콘서트가 시작하고 나서 한국에 하우스콘서트의 개념이 넓어졌다. 지금은 카페라든가 도서관 라운지에서도 공연이 이루어지곤 한다. 하콘이 그런 공연들을 촉발시킨 시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10월 10일, 제1000회 하우스콘서트가 있었다. 항상 공연하던 대학로 '예술가의집'을 나와 롯데콘서트홀에 무대를 꾸렸다. 상징성 있는 공연인데, 왜 집이 아니라 대형 공연장이었나?
일종의 전환을 하고 싶었다. 연주자는 2000석 규모의 객석을 등진 채 연주하고, 무대와 합창석에 350명의 관객이 올라와 앉아 음악을 감상했다. 하콘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유의 공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작전'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전국 공연장에서 공연했다. 일회성 공연이 아니라 음악계, 공연계에 대한 하콘의 문제의식을 제기해 온 프로젝트였다. 1000회 공연은 이것을 더 상징적으로 알리기 위해 롯데콘서트홀로 갔다.
어떤 문제의식이었나?
하우스콘서트를 10년 정도 하고 나니 이상한 걸 발견했다. 좋은 연주자가 많은데 연주자들이 설 무대는 없는 거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무대가 없는 게 아니었다. 유명한 무대가 오직 서울에 집중돼 있다 보니 그 몇 안 되는 무대를 쟁탈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거다. 500석 이상 되는 공연장이 전국에 400개가 넘는다. 의외로 많은 수준도 아니고,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지방 공연장은 가동률이 굉장히 떨어졌다. 연주자와 공연장 간 서로 수요공급의 미스매칭이 일어난 것이다. 하콘 10주년 되는 해에 일주일 동안 전국 20여개 공연장에서 50여 팀이 참여해서 총 100개의 콘서트를 진행했다. 안 될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결국 성공시켰다. 하콘은 횟수를 늘리며 꾸준히 지방에 있는 공연장에 자극을 주고 공연을 하게끔 유도하고 있다.
지방에도 클래식 음악에 대한 수요가 충분히 있나?
공연장을 섭외할 때 자주 듣곤 하는 말이자 흔히 하는 착각이다. 수요는 언제나 있고, 오히려 공연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니 갈증이 있다. 지자체에서는 문화 관련 예산을 공연장 짓는 걸로 풀고, 정작 거기에 콘텐츠를 채우지는 않는 비효율적인 관행이 있었다. 수많은 문예회관들이 어떻게 쓰일 줄 모르는 채 영화가 상영되거나 심지어는 민방위 훈련이 진행되기도 했다. 하콘은 그런 공연장을 찾아내 아주 적은 예산으로 클래식 공연을 올렸다. 공무원들과 싸워가며 더 많은 지역에서 공연이 이뤄질 수 있도록 문제 제기뿐 아니라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하콘은 이런 프로젝트들을 꾸준히 해 왔다. 은연중에 사람들을 이끌고 문화의 수준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21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대안 제시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1000회 동안 굉장히 많은 공연이 있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나?
가장 첫 회 공연이나 1000회 공연 모두 뜻깊어서 잊지 못할 것 같다.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인 공연이다. 지금껏 출연한 연주자들이 4700명이 넘는다. 그중에서도 하콘을 거쳐가면서 성장한 연주자들의 공연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하나 꼽자면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와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공연. 하콘의 첫 공간이었던 연희동에서 진행했는데, 25평의 공간 안에 180명이 꽉 차게 붙어서 공연을 감상했다. 김선욱은 지금 피아니스트를 거쳐 지휘자로 성장했다. 20년이 넘는 성장 과정을 다 같이 보고 발전해 왔다는 점에서 유달리 기억에 남는다.
20년 전에 어린 연주자를 발굴해낸 셈이다. 조성진과 임윤찬 등 세계 콩쿠르에서 수상한 연주자들도 하콘을 거쳐갔다. 비법이 무엇인가?
이상하게 발견이 된다. 성장할 수 있는 연주자에게는 긴 호흡이 느껴진다. 한 순간에 모든 걸 다 보여주는게 아니라, 긴 호흡 중간 어느 시점에 이 연주자가 존재한다는 게 느껴진다.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런 연주자를 찾는 것이 나만 가능한 건 아니라는 점이다. 관객, 기획자 누구든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어보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는 연주자들을 찾아낼 수 있다. 해외 콩쿠르에서 수상한 후에 섭외를 하려고 달려드는 것은 오히려 힘도 돈도 많이 드는 일이다. 그 노력의 반의 반 정도를 새로운 연주자를 발굴하는 데에 쏟는다면 연주자들도 기쁘게 참여할 거라고 생각한다.
클래식 음악은 격식 있고 길고 어렵다고들 한다. 동의하는가?
어느 정도 동의한다. 클래식 음악은 격식 있는 음악이 맞고 대중화되기는 힘들다. 다만 지금보다는 향유층이 넓어질 수 있다. 모든 사람이 클래식을 좋아해서 대중문화화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지금보다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째서인가?
클래식은 순수 예술이고, 순수 예술은 대중 예술의 기반이 되는 기초 예술이기 때문이다. 기초 예술은 역사를 만드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문화가 창발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우리는 때때로 기초 과학 분야가 취약한 것이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라고 말한다. 문화와 예술 영역도 비슷하다고 본다. 스스로 찾아내서 발전하고 철학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폭넓고 단단한 상식과 이론이 바탕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음악이 생명력을 가지려면 많은 사람들이 들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클래식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하우스콘서트를 진행하면서 관객들의 수준은 점점 높아질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지난 줄라이페스티벌 공연 마지막 날, 베토벤 소나타 32곡을 연주하는 데 13시간이 걸린 적이 있다. 13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서 관람한 관객이 40명이나 됐다. 이런 분들이 우리의 기초 문화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클래식을 듣는 인구 수가 적어진다고 하지만 분명히 수요는 있다. 그렇다면 그 수요를 찾아내고 개발해야 하는 시스템적인 작업이 따라야 한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유지해 온 이유가 있나?
7년 전에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 못 버틸 때쯤 되면 버틸 수 있을 만한 새로운 계기가 생기곤 했다.
유산을 물려받기도 했고, SBS문화재단 등에서 후원을 받기도 했다.
티켓 값을 올리는 방안은 생각해보지 않았나?
처음 시작할 때 하콘의 티켓 값이 2만 원이었다. 3만 원으로 올린 지 3~4년 정도 됐는데, 그만큼을 올릴 때도 고민이 많았다. 가격을 올리면 혹시나 못 오는 사람들이 생길까 봐. 하콘은 음악의 공공성을 추구하고, 연주자들도 다른 공연장에선 어떨지 몰라도 하콘에서만큼은 영광스럽게도 페이를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학생들 등 값비싼 공연을 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가격을 올리는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1000회까지의 공연에서 자리를 비운 적이 없다. 어째서인가?
책임감, 혹은 무식함이나 미련함 아닐까. 어떤 걸 정해두었을 때 끝까지 가는 성격도 한 몫 했을 것이다. 1000회 이후로는 대표가 아니라 예술감독으로서 참여하려 한다.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싶기도 하고, 후배들에게 양보할 때라는 생각도 든다. 감사하게도 지난 30일,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하콘 대표로서 받게 되었다. 이제는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매니저들에게 실무를 맡기며 자연스럽게 세대를 교체하려 한다.
더하우스콘서트의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하콘은 초창기부터 10년 단위로 30년의 계획을 세우고 시작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사항은 비밀이지만, 계획이 있다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겠다. 당장 11월에는 바이올리니스트와 무용수들이 함께 출연하는 <바흐x무브먼트> 프로젝트가 예정돼 있다. 유튜브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이후로 영상을 많이 올리고 있는데 직접 참여를 안 하더라도 많은 관객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참여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관객들이 하콘에서 얻어가기 바라는 감정이나 경험이 있나?
책을 안 읽는 시대라지만, 끝까지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 빠른 시류에 휩쓸리기보다는 느린 자세로 사색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자세라고 본다. 하콘에서 좋은 연주를 듣는 것은 책을 한 권 읽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하콘에 오시는 분들이 그런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길 바란다. 귀로 듣는 음악을 넘어 몸으로 체험하는 음악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글 백승민 에디터
북저널리즘 2023. 10. 31
원문 링크 : https://www.bookjournalism.com/talks/4241
더하우스콘서트 박창수 예술감독
흔히 서로의 뜻이 맞는 순간을 '호흡이 맞다'는 말로 표현하곤 한다. 클래식 음악에선 비유가 아니다. 지휘자가 없는 공연에서 음악가들은 눈을 맞추고 호흡을 들으며 박자와 음의 강약을 조절한다. 연주자들이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에 관객은 함께할 수 없을까?
마룻바닥에서 진행되는 이상하고 신기한 콘서트, 더하우스콘서트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21년째, 1000회가 넘는 공연에서 바닥에 앉은 관객과 무대를 내려온 음악가는 호흡을 나누고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냈다. 더하우스콘서트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좋은 문화란 무엇인가? 그 질문의 의미와 대한을 21년 동안 더하우스콘서트를 지휘해 온 박창수 예술감독에게 물었다.
더하우스콘서트(하콘)에서 관객들은 바닥에 앉아 음악을 듣는다. 왜 마룻바닥이었나?
반드시 마룻바닥이어야 했다. 하콘을 20년 넘게 진행해 오며 처음부터 일관되게 고수해 온 사항이다. 관객이 마룻바닥에 앉으면 소리의 진동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관객석에 앉아 귀로 듣는 소리와 다르다.
일반적으로 클래식 공연에서는 울림이 좋은 공연장이 소리가 좋다고 말하지 않나?
대부분 예술의전당 같은 큰 공연장에서 듣는 소리를 '좋은 소리'라고 여긴다. 그것이 사실인 면도 있다. 그런데 사실 큰 공연장의 목적은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다. 울림은 음악을 이루는 여러 요소중 하나일 뿐이다. 그 개념을 뒤집어 하콘이 택한 것은 거리다. 연주자와 관객 간의 거리를 없애 두 주체 간의 직접 소통을 꾀했다. 관객들은 하우스콘서트에서 연주를 듣다 보면 다른 공연장에서는 그 느낌이 안 나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다른 부분에서의 울림을 노린 건데, 연주자들로선 생소했겠다.
지금은 먼저 공연하고 싶다고 연락 오는 아티스트도 있지만, 처음에는 섭외가 힘들었다. 황당해하거나 신기해했달까. 공연을 하고 나서는 대체로 충격을 받았다. 평범한 무대에서 연주자는 항상 단 위에 올라 관객과는 멀리 떨어져 서로 접근할 수 없다. 하콘에서 물리적으로 벽을 허물자 연주자들이 심리적으로도 변화를 느꼈다. 그 이후로 입소문이 났다. 하콘에서 공연하면 뭔가 다른 걸 느낄 수 있다는 거였다.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가정집을 개조하는 데는 많은 결심이 필요하지 않겠나?
처음의 아이디어는 고등학생 때 친구 집에서 연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집에서 연습할 때 듣는 소리와 친구가 무대에서 연주하는 소리가 달랐던 거다. 그 차이를 고민하며, 집에서는 연주할 수 없을지 떠올리게 됐다. 이미 유럽에서는 존재하던 살롱 음악의 개념이었다. 그러다가 2002년 월드컵이 한창 붐일 때 대형 공연이 많이 생겼는데,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한 공연으로선 결코 제대로 문화를 향유할 수 없단 반발심이 들었다. 1년 동안 차곡차곡 준비하고 집을 개조했다. 1층을 생활 공간으로 두고 2층 25평 정도의 공간에서 첫 하우스콘서트를 열게 됐다.
집에서 이루어진 콘서트에,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재밌고 신기하게 느꼈던 것 같다. 초창기에는 대중음악이나 국악 등 다른 장르도 많이 수용했는데, 그때 참여했던 분들이 클래식 공연에도 와보고 마니아가 되는 경우도 굉장히 많이 봤다. 무엇보다 더하우스콘서트가 시작하고 나서 한국에 하우스콘서트의 개념이 넓어졌다. 지금은 카페라든가 도서관 라운지에서도 공연이 이루어지곤 한다. 하콘이 그런 공연들을 촉발시킨 시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10월 10일, 제1000회 하우스콘서트가 있었다. 항상 공연하던 대학로 '예술가의집'을 나와 롯데콘서트홀에 무대를 꾸렸다. 상징성 있는 공연인데, 왜 집이 아니라 대형 공연장이었나?
일종의 전환을 하고 싶었다. 연주자는 2000석 규모의 객석을 등진 채 연주하고, 무대와 합창석에 350명의 관객이 올라와 앉아 음악을 감상했다. 하콘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유의 공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작전'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전국 공연장에서 공연했다. 일회성 공연이 아니라 음악계, 공연계에 대한 하콘의 문제의식을 제기해 온 프로젝트였다. 1000회 공연은 이것을 더 상징적으로 알리기 위해 롯데콘서트홀로 갔다.
어떤 문제의식이었나?
하우스콘서트를 10년 정도 하고 나니 이상한 걸 발견했다. 좋은 연주자가 많은데 연주자들이 설 무대는 없는 거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무대가 없는 게 아니었다. 유명한 무대가 오직 서울에 집중돼 있다 보니 그 몇 안 되는 무대를 쟁탈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거다. 500석 이상 되는 공연장이 전국에 400개가 넘는다. 의외로 많은 수준도 아니고,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지방 공연장은 가동률이 굉장히 떨어졌다. 연주자와 공연장 간 서로 수요공급의 미스매칭이 일어난 것이다. 하콘 10주년 되는 해에 일주일 동안 전국 20여개 공연장에서 50여 팀이 참여해서 총 100개의 콘서트를 진행했다. 안 될 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결국 성공시켰다. 하콘은 횟수를 늘리며 꾸준히 지방에 있는 공연장에 자극을 주고 공연을 하게끔 유도하고 있다.
지방에도 클래식 음악에 대한 수요가 충분히 있나?
공연장을 섭외할 때 자주 듣곤 하는 말이자 흔히 하는 착각이다. 수요는 언제나 있고, 오히려 공연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니 갈증이 있다. 지자체에서는 문화 관련 예산을 공연장 짓는 걸로 풀고, 정작 거기에 콘텐츠를 채우지는 않는 비효율적인 관행이 있었다. 수많은 문예회관들이 어떻게 쓰일 줄 모르는 채 영화가 상영되거나 심지어는 민방위 훈련이 진행되기도 했다. 하콘은 그런 공연장을 찾아내 아주 적은 예산으로 클래식 공연을 올렸다. 공무원들과 싸워가며 더 많은 지역에서 공연이 이뤄질 수 있도록 문제 제기뿐 아니라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하콘은 이런 프로젝트들을 꾸준히 해 왔다. 은연중에 사람들을 이끌고 문화의 수준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21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대안 제시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1000회 동안 굉장히 많은 공연이 있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나?
가장 첫 회 공연이나 1000회 공연 모두 뜻깊어서 잊지 못할 것 같다.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인 공연이다. 지금껏 출연한 연주자들이 4700명이 넘는다. 그중에서도 하콘을 거쳐가면서 성장한 연주자들의 공연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하나 꼽자면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와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공연. 하콘의 첫 공간이었던 연희동에서 진행했는데, 25평의 공간 안에 180명이 꽉 차게 붙어서 공연을 감상했다. 김선욱은 지금 피아니스트를 거쳐 지휘자로 성장했다. 20년이 넘는 성장 과정을 다 같이 보고 발전해 왔다는 점에서 유달리 기억에 남는다.
20년 전에 어린 연주자를 발굴해낸 셈이다. 조성진과 임윤찬 등 세계 콩쿠르에서 수상한 연주자들도 하콘을 거쳐갔다. 비법이 무엇인가?
이상하게 발견이 된다. 성장할 수 있는 연주자에게는 긴 호흡이 느껴진다. 한 순간에 모든 걸 다 보여주는게 아니라, 긴 호흡 중간 어느 시점에 이 연주자가 존재한다는 게 느껴진다.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런 연주자를 찾는 것이 나만 가능한 건 아니라는 점이다. 관객, 기획자 누구든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어보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는 연주자들을 찾아낼 수 있다. 해외 콩쿠르에서 수상한 후에 섭외를 하려고 달려드는 것은 오히려 힘도 돈도 많이 드는 일이다. 그 노력의 반의 반 정도를 새로운 연주자를 발굴하는 데에 쏟는다면 연주자들도 기쁘게 참여할 거라고 생각한다.
클래식 음악은 격식 있고 길고 어렵다고들 한다. 동의하는가?
어느 정도 동의한다. 클래식 음악은 격식 있는 음악이 맞고 대중화되기는 힘들다. 다만 지금보다는 향유층이 넓어질 수 있다. 모든 사람이 클래식을 좋아해서 대중문화화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지금보다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째서인가?
클래식은 순수 예술이고, 순수 예술은 대중 예술의 기반이 되는 기초 예술이기 때문이다. 기초 예술은 역사를 만드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문화가 창발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우리는 때때로 기초 과학 분야가 취약한 것이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라고 말한다. 문화와 예술 영역도 비슷하다고 본다. 스스로 찾아내서 발전하고 철학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폭넓고 단단한 상식과 이론이 바탕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음악이 생명력을 가지려면 많은 사람들이 들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클래식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하우스콘서트를 진행하면서 관객들의 수준은 점점 높아질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지난 줄라이페스티벌 공연 마지막 날, 베토벤 소나타 32곡을 연주하는 데 13시간이 걸린 적이 있다. 13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서 관람한 관객이 40명이나 됐다. 이런 분들이 우리의 기초 문화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클래식을 듣는 인구 수가 적어진다고 하지만 분명히 수요는 있다. 그렇다면 그 수요를 찾아내고 개발해야 하는 시스템적인 작업이 따라야 한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유지해 온 이유가 있나?
7년 전에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 못 버틸 때쯤 되면 버틸 수 있을 만한 새로운 계기가 생기곤 했다.
유산을 물려받기도 했고, SBS문화재단 등에서 후원을 받기도 했다.
티켓 값을 올리는 방안은 생각해보지 않았나?
처음 시작할 때 하콘의 티켓 값이 2만 원이었다. 3만 원으로 올린 지 3~4년 정도 됐는데, 그만큼을 올릴 때도 고민이 많았다. 가격을 올리면 혹시나 못 오는 사람들이 생길까 봐. 하콘은 음악의 공공성을 추구하고, 연주자들도 다른 공연장에선 어떨지 몰라도 하콘에서만큼은 영광스럽게도 페이를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학생들 등 값비싼 공연을 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가격을 올리는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1000회까지의 공연에서 자리를 비운 적이 없다. 어째서인가?
책임감, 혹은 무식함이나 미련함 아닐까. 어떤 걸 정해두었을 때 끝까지 가는 성격도 한 몫 했을 것이다. 1000회 이후로는 대표가 아니라 예술감독으로서 참여하려 한다.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싶기도 하고, 후배들에게 양보할 때라는 생각도 든다. 감사하게도 지난 30일,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하콘 대표로서 받게 되었다. 이제는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매니저들에게 실무를 맡기며 자연스럽게 세대를 교체하려 한다.
더하우스콘서트의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하콘은 초창기부터 10년 단위로 30년의 계획을 세우고 시작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사항은 비밀이지만, 계획이 있다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겠다. 당장 11월에는 바이올리니스트와 무용수들이 함께 출연하는 <바흐x무브먼트> 프로젝트가 예정돼 있다. 유튜브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이후로 영상을 많이 올리고 있는데 직접 참여를 안 하더라도 많은 관객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참여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관객들이 하콘에서 얻어가기 바라는 감정이나 경험이 있나?
책을 안 읽는 시대라지만, 끝까지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 빠른 시류에 휩쓸리기보다는 느린 자세로 사색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자세라고 본다. 하콘에서 좋은 연주를 듣는 것은 책을 한 권 읽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하콘에 오시는 분들이 그런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길 바란다. 귀로 듣는 음악을 넘어 몸으로 체험하는 음악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글 백승민 에디터
북저널리즘 2023. 10. 31
원문 링크 : https://www.bookjournalism.com/talks/4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