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스테이지] 1000회 공연 준비하는 수석 매니저 강선애
- 등록일2023.10.06
- 작성자하콘
- 조회221
l 이 사람을 만나다_ 강선애
역사를 계속 써 내려가는 '하우스콘서트'
1,000회 공연 준비하는 수석 매니저 강선애
쟁쟁한 스타들이 거쳐간 '하우스콘서트'
하우스콘서트 제1호 직원으로 뽑혀 매니저에서 대표로 직함을 바뀐다.
2002년 7월 맨 처음 작은 가정집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이름이 '하우스콘서트'였다. 작곡가 박창수! 젊은 시절 나름 음악적 기행을 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미술쪽 기인들과 전방위 활동도 했다. 이런 그가'하우스콘서트'를 열었을 때 과연 얼마나 할 것인가 내기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마치 물 한병 없이 사막을 건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하우스콘서트'가 기적과 기적을 이루고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계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이 하우스를 거쳐간 영재들이 지금은 스타가 된 아티스트들이 즐비하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15세, 김선욱은 16세, 임윤찬은 17세에 처음 출연했다.
첼리스트 한재민은 11세, 파리 국립 오페라 클라리넷 수석인 김한은 12세에 대뷔했다. 부조니콩쿠르에서 우승한 박재홍도 하콘을 거쳐갔다.
그 역사의 금자탑이 드디어 1,000회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1,000회를 맞는 지금까지 바닥에 앉아서 음악을 듣는 것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이것은 하우스콘서트의 정신인 것이다. 이제 '하우스콘서트'는 공연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만큼 '아류'가 많이 생겼다. 이 '원조'를 만들어 오면서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하우스콘서트'를 거쳐 갔다. 연인원 4,700여명이 참여했고 한국을 포함 42개국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이제 '하우스콘서트'는 국내용이 아니다. 전 세계용이다. 매 공연마다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 된다. 이렇게 매번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하우스콘서트'는 한 사람만의 힘으로 되지 않았다. 음악가가 있었고 관객이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보이지 않게 분주히 움직이는 또 한 사람, 바로 강선애 매니저이다. 그녀는 2012년 '하우스콘서트'의 1호 직원으로 합류했다. 1호 직원은 모든걸 혼자서 다 해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11년동안 그녀가 해 낸것은 전무후무한 일들이 많다. 화재가 나도 공연을 했고 냉방기기가 고장나도 공연을 했다. 자연재해에도 공연은 계속됐다. '하우스콘서트'는 브레이크를 제거한 자동차와 같다. 그녀는 이 자동차에 올라타 박창수 대표가 진두지휘를 하는대로 거칠게 때론 부드럽게 몰고 갔다. 그런 그녀가 이제 1,000회 무대에서 바톤 터치를 받는다. '수석매니저'라는 꼬리표를 떼고 '대표' 자리를 물려 받는다.
- 먼저 하우스콘서트 1천회 돌파를 축하한다. 매니저로 활동을 오랫동안 해 왔는데 1천회를 맞는 소감은?
특별한 소감은 없고 '아, 1,000회를 또 이렇게도 하는구나 매번 마루바닥에서 하다가 번듯한 극장 무대에서도 하는구나 그러면 이번에는 하콘(하우스콘서트의 줄임말)의 트레이드마크인 마루바닥 공연의 컨셉을 적용해서 무대 앞쪽 객석은 사용하지 말고 그냥 무대 위로 올라오게 하자' 등등 머릿속에 진행하는 일들만 가득합니다.
- 어떻게 보면 운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우스콘서트에는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합류했나?
2012년 제 1호 직원으로 뽑혔습니다. 그 1호 직원이 지금까지 하고 있죠. 맨 처음에는 대학교 2학년때 자원봉사 활동을 잠깐 했었어요. 그러다가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때려 치고 '하콘'에 정식 직원으로 입사했죠. 다들 주변에서 미쳤다고 말리고 난리였어요. 그렇지만 제 결심이 확고했고 제가 하콘에서 받은게 너무 많았어요. 음악적으로나 사회인으로나 갖춰야 할 자세라든지 자원봉사 때에 배운게 많았어요. 저희가 하는 일이 단순히 업무 보조가 아니고 굉장히 깊숙히 관여하도록 많은 것을 오픈해 주셨어요. 아이디어도 내게 하시고 채택된 아이디어를 현장에 적용시키고 그렇게 하셨죠. 그래서 그 배운걸로 다른 공연기획사에 입사했거든요. 그런데 하콘에서 제 1호 정식 직원을 뽑는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 마치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운명이라고 할까요. 마침 하콘이 10주년을 맞아 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더라구요. 아, 저게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생각하고 들어오게 된거죠.
-아티스트들을 다루기가 어렵다. 다 제 각각이고 성격도 까다롭다. 그동안 진행해 오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을텐데 힘들었던 점은?
의외로 아티스트들은 까다롭지 않았어요. 저희 취지와 진행 방식에 잘 따라 주었죠. '하콘'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거나 좋아해서 공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친구들도 많았죠. 저는 오히려 이들의 공연을 어떻게 잘 담아야 하나 그런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영재들이 나중에 커가는 걸 볼 때 정말 보람을 느껴요. 세계 콩쿠르에 나가서 1등하는 걸 볼 때는 감격스럽죠.
-지금까지 '하우스콘서트'를 유지해 나오는 동안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나무에 열매가 맺으려면 그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비바람에 모진 날씨도 견뎌야 하고 또 오랜 시간을 견뎌야 하고 저희 '하콘'도 그렇게 지나온 거죠. 금전적으로 힘든 건 당연하고 무엇보다 대표님이 불의한 일이나 저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타협을 안하시는 분이라 여러 기관이랑 부딪힐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저희 '하콘' 자체가 기존의 사회적 관념을 부수는 파격적인 건데 쉽게 설득이 안된다고 봤죠. 그래도 우리는 우리 고집대로 밀고 나갔죠.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거죠.
- 그런데 이번 1천회를 맞아 대표로 승격한다고 들었다. 내가 보기엔 엄청난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를 것 같다.
부담돼죠. 그렇지만 제가 일찍부터 하콘에 몸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죠. 물론 매니저랑 대표랑은 직함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책임감도 다르다고 봐요. 제가 매니저를 하고 있어도 대표님이 많은 걸 하셨어요. 저 또한 대표가 돼도 매니저처럼 일을 할 거에요. 그냥 타이틀만 대표랄까. 아무튼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이죠.
- 박창수 대표랑 같이 일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건데 워낙 까다롭고 완고함이 있어서 어떻게 지금까지 같이 동고동락해 왔나?
완벽주의자시죠. 또 굉장히 예민하시고 제가 자언 봉사 활동할 때 부터 그런 분이란 걸 알았어요. 자원봉사자들이라고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으셨어요. 왜냐하면 단순히 자원봉사 그런 생각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일을 배우는 상황이기 때문에 처음 부터 제대로 일을 배워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런 엄격함이 저는 좋았어요. 그래야 실수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단순히 무대에서 공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행정적으로나 절차를 밟아야 하는 일들 등등 세세하고 꼼꼼히 챙겨야 할 일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엄격하지 않으면 안되죠 저도 처음에는 많이 혼났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이에요. 대표님 별명이 '박틀러'에요. 제 전화번호 저장에 이름도 '박틀러'로 되어 있어요. 하하. 대표님은 일을 떠나서는 굉장히 따뜻한 분이세요. 지금은 직원들이 몇명 있는데 제가 미처 못 챙길때 대표님이 일일이 다 챙기시더라고요. 순수한 면이 참 많으세요. 하콘이 쉽게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거든요. 정말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기면서 온 거에요. 때론 대표님이 너무 힘들어 하시는 걸 볼 때마다 저희들은 모여서 할 수 있다고 외치며 함께 극복해 나왔어요.
-하우스콘서트 무대를 거쳐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된 사람이 많다. 아티스트 발굴은 어떻게 하나? 어떤 기준이 있나?
특별한 기준은 없어요. 추천도 받고 스스로 찾아 오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저희는 프로필만 보지 않아요. 직접 연주를 들어요. 그리고 판단을 하죠. 저는 작곡을 전공했기 때문에 음을 정확히 들어요. 대표님도 말할 것 없고요.
- 이제 1천회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우스콘서트'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아류'도 많이 생겼고 그만큼 클래식음악계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변화를 가져야 한다고 보는데
저희가 생각하는 큰 변화는 없어요. 이 하우스 콘서트 자체가 파격이니까. 여기서 추가로 생각해 내는 아이템이 뭘까 하는 거죠. 예를 들면 매년 7월이면 하는 '줄라이 페스티벌' 이랄까 아님 24시간 프로젝트 라던지 이런 실험적인 공연을 만들어 나갈 거에요. 그런 변화는 주겠죠.
-이제 대표가 되면 책임이 더 해 질건데 '하우스콘서트'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좀 거창할 수도 있지만 '비전'을 말해달라.
뭐 비전이 아니더라도 계획이라도 좋다.
일단 '하우스 콘서트'의 정신을 잘 이어가는 게 제일 먼저이고요. 그 위에 또 하나씩 콘서트를 쌓아 올려 가면서 그 때 그 때 맞춰서 변화를 줄 수 있는 걸 찾겠죠. 그래서 끊김없이 2천회 3천회를 하고 다음 사람에게 물려 주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굿스테이지 송인호 편집장
인터뷰 강선애
원문 링크 : http://www.goodstage.com/m2023/10/33_kangsunae.html
역사를 계속 써 내려가는 '하우스콘서트'
1,000회 공연 준비하는 수석 매니저 강선애
쟁쟁한 스타들이 거쳐간 '하우스콘서트'
하우스콘서트 제1호 직원으로 뽑혀 매니저에서 대표로 직함을 바뀐다.
2002년 7월 맨 처음 작은 가정집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이름이 '하우스콘서트'였다. 작곡가 박창수! 젊은 시절 나름 음악적 기행을 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미술쪽 기인들과 전방위 활동도 했다. 이런 그가'하우스콘서트'를 열었을 때 과연 얼마나 할 것인가 내기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마치 물 한병 없이 사막을 건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하우스콘서트'가 기적과 기적을 이루고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계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이 하우스를 거쳐간 영재들이 지금은 스타가 된 아티스트들이 즐비하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15세, 김선욱은 16세, 임윤찬은 17세에 처음 출연했다.
첼리스트 한재민은 11세, 파리 국립 오페라 클라리넷 수석인 김한은 12세에 대뷔했다. 부조니콩쿠르에서 우승한 박재홍도 하콘을 거쳐갔다.
그 역사의 금자탑이 드디어 1,000회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1,000회를 맞는 지금까지 바닥에 앉아서 음악을 듣는 것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이것은 하우스콘서트의 정신인 것이다. 이제 '하우스콘서트'는 공연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만큼 '아류'가 많이 생겼다. 이 '원조'를 만들어 오면서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하우스콘서트'를 거쳐 갔다. 연인원 4,700여명이 참여했고 한국을 포함 42개국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이제 '하우스콘서트'는 국내용이 아니다. 전 세계용이다. 매 공연마다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 된다. 이렇게 매번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하우스콘서트'는 한 사람만의 힘으로 되지 않았다. 음악가가 있었고 관객이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보이지 않게 분주히 움직이는 또 한 사람, 바로 강선애 매니저이다. 그녀는 2012년 '하우스콘서트'의 1호 직원으로 합류했다. 1호 직원은 모든걸 혼자서 다 해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11년동안 그녀가 해 낸것은 전무후무한 일들이 많다. 화재가 나도 공연을 했고 냉방기기가 고장나도 공연을 했다. 자연재해에도 공연은 계속됐다. '하우스콘서트'는 브레이크를 제거한 자동차와 같다. 그녀는 이 자동차에 올라타 박창수 대표가 진두지휘를 하는대로 거칠게 때론 부드럽게 몰고 갔다. 그런 그녀가 이제 1,000회 무대에서 바톤 터치를 받는다. '수석매니저'라는 꼬리표를 떼고 '대표' 자리를 물려 받는다.
- 먼저 하우스콘서트 1천회 돌파를 축하한다. 매니저로 활동을 오랫동안 해 왔는데 1천회를 맞는 소감은?
특별한 소감은 없고 '아, 1,000회를 또 이렇게도 하는구나 매번 마루바닥에서 하다가 번듯한 극장 무대에서도 하는구나 그러면 이번에는 하콘(하우스콘서트의 줄임말)의 트레이드마크인 마루바닥 공연의 컨셉을 적용해서 무대 앞쪽 객석은 사용하지 말고 그냥 무대 위로 올라오게 하자' 등등 머릿속에 진행하는 일들만 가득합니다.
- 어떻게 보면 운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우스콘서트에는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합류했나?
2012년 제 1호 직원으로 뽑혔습니다. 그 1호 직원이 지금까지 하고 있죠. 맨 처음에는 대학교 2학년때 자원봉사 활동을 잠깐 했었어요. 그러다가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때려 치고 '하콘'에 정식 직원으로 입사했죠. 다들 주변에서 미쳤다고 말리고 난리였어요. 그렇지만 제 결심이 확고했고 제가 하콘에서 받은게 너무 많았어요. 음악적으로나 사회인으로나 갖춰야 할 자세라든지 자원봉사 때에 배운게 많았어요. 저희가 하는 일이 단순히 업무 보조가 아니고 굉장히 깊숙히 관여하도록 많은 것을 오픈해 주셨어요. 아이디어도 내게 하시고 채택된 아이디어를 현장에 적용시키고 그렇게 하셨죠. 그래서 그 배운걸로 다른 공연기획사에 입사했거든요. 그런데 하콘에서 제 1호 정식 직원을 뽑는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 마치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운명이라고 할까요. 마침 하콘이 10주년을 맞아 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더라구요. 아, 저게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생각하고 들어오게 된거죠.
-아티스트들을 다루기가 어렵다. 다 제 각각이고 성격도 까다롭다. 그동안 진행해 오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을텐데 힘들었던 점은?
의외로 아티스트들은 까다롭지 않았어요. 저희 취지와 진행 방식에 잘 따라 주었죠. '하콘'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거나 좋아해서 공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친구들도 많았죠. 저는 오히려 이들의 공연을 어떻게 잘 담아야 하나 그런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영재들이 나중에 커가는 걸 볼 때 정말 보람을 느껴요. 세계 콩쿠르에 나가서 1등하는 걸 볼 때는 감격스럽죠.
-지금까지 '하우스콘서트'를 유지해 나오는 동안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나무에 열매가 맺으려면 그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비바람에 모진 날씨도 견뎌야 하고 또 오랜 시간을 견뎌야 하고 저희 '하콘'도 그렇게 지나온 거죠. 금전적으로 힘든 건 당연하고 무엇보다 대표님이 불의한 일이나 저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타협을 안하시는 분이라 여러 기관이랑 부딪힐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저희 '하콘' 자체가 기존의 사회적 관념을 부수는 파격적인 건데 쉽게 설득이 안된다고 봤죠. 그래도 우리는 우리 고집대로 밀고 나갔죠.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거죠.
- 그런데 이번 1천회를 맞아 대표로 승격한다고 들었다. 내가 보기엔 엄청난 부담감이 어깨를 짓누를 것 같다.
부담돼죠. 그렇지만 제가 일찍부터 하콘에 몸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죠. 물론 매니저랑 대표랑은 직함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책임감도 다르다고 봐요. 제가 매니저를 하고 있어도 대표님이 많은 걸 하셨어요. 저 또한 대표가 돼도 매니저처럼 일을 할 거에요. 그냥 타이틀만 대표랄까. 아무튼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이죠.
- 박창수 대표랑 같이 일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건데 워낙 까다롭고 완고함이 있어서 어떻게 지금까지 같이 동고동락해 왔나?
완벽주의자시죠. 또 굉장히 예민하시고 제가 자언 봉사 활동할 때 부터 그런 분이란 걸 알았어요. 자원봉사자들이라고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으셨어요. 왜냐하면 단순히 자원봉사 그런 생각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일을 배우는 상황이기 때문에 처음 부터 제대로 일을 배워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런 엄격함이 저는 좋았어요. 그래야 실수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단순히 무대에서 공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행정적으로나 절차를 밟아야 하는 일들 등등 세세하고 꼼꼼히 챙겨야 할 일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엄격하지 않으면 안되죠 저도 처음에는 많이 혼났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이에요. 대표님 별명이 '박틀러'에요. 제 전화번호 저장에 이름도 '박틀러'로 되어 있어요. 하하. 대표님은 일을 떠나서는 굉장히 따뜻한 분이세요. 지금은 직원들이 몇명 있는데 제가 미처 못 챙길때 대표님이 일일이 다 챙기시더라고요. 순수한 면이 참 많으세요. 하콘이 쉽게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거든요. 정말 어려운 고비를 많이 넘기면서 온 거에요. 때론 대표님이 너무 힘들어 하시는 걸 볼 때마다 저희들은 모여서 할 수 있다고 외치며 함께 극복해 나왔어요.
-하우스콘서트 무대를 거쳐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된 사람이 많다. 아티스트 발굴은 어떻게 하나? 어떤 기준이 있나?
특별한 기준은 없어요. 추천도 받고 스스로 찾아 오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저희는 프로필만 보지 않아요. 직접 연주를 들어요. 그리고 판단을 하죠. 저는 작곡을 전공했기 때문에 음을 정확히 들어요. 대표님도 말할 것 없고요.
- 이제 1천회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우스콘서트'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아류'도 많이 생겼고 그만큼 클래식음악계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변화를 가져야 한다고 보는데
저희가 생각하는 큰 변화는 없어요. 이 하우스 콘서트 자체가 파격이니까. 여기서 추가로 생각해 내는 아이템이 뭘까 하는 거죠. 예를 들면 매년 7월이면 하는 '줄라이 페스티벌' 이랄까 아님 24시간 프로젝트 라던지 이런 실험적인 공연을 만들어 나갈 거에요. 그런 변화는 주겠죠.
-이제 대표가 되면 책임이 더 해 질건데 '하우스콘서트'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좀 거창할 수도 있지만 '비전'을 말해달라.
뭐 비전이 아니더라도 계획이라도 좋다.
일단 '하우스 콘서트'의 정신을 잘 이어가는 게 제일 먼저이고요. 그 위에 또 하나씩 콘서트를 쌓아 올려 가면서 그 때 그 때 맞춰서 변화를 줄 수 있는 걸 찾겠죠. 그래서 끊김없이 2천회 3천회를 하고 다음 사람에게 물려 주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굿스테이지 송인호 편집장
인터뷰 강선애
원문 링크 : http://www.goodstage.com/m2023/10/33_kangsuna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