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음악] 32개의 조각으로 완성하는 콜라주 초상화
- 등록일2020.09.04
- 작성자하콘
- 조회108
32개의 조각으로 완성하는 콜라주 초상화
줄라이 페스티벌 피날레 콘서트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릴레이 연주
10대를 보내고 있는 어린 피아니스트부터 일흔을 넘긴 피아노 계의 대모까지... 도합 서른두 명의 음악가들이 마주한 베토벤이었다. 베토벤 음악의 처음과 끝, 그리고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피아노 소나타를 하루 만에, 릴레이로 전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피아니스트들의 열정을 이렇게 뜨겁게 느낄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후덥지근한 여름날보다 더 뜨거울 순간을 조금이나마 엿보고자 오전부터 릴레이 연주가 시작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 늦은 오후 부랴부랴 도착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12번 Ab장조> 연주가 한창인 때였다.
바닥으로 전해지는 피아노의 진동은 무대와 객석의 담마저 흔든다. 피아니스트의 발치 아래, 그 은밀하고 고독한 연습의 시간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연주회'의 형식이 허물어진 자리에, 음악 자체로 연주자의 위치를 확보하느 피아니스트의 역량이 더욱 또렷이 다가온다. 미세하게 떨리는 호흡과 한음 한음에 반응하는 근육의 움직임까지 전달된다. 그러나 베토벤의 음악 그 자체를 사랑하는 이들로 가득찬 이곳, 하우스콘서트에서는 비교나 우위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한 명의 음악가가 들어가고 나가는 시간 동안 차차 베토벤의 얼굴이 또렷해진다.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베토벤을 만나, 그의 초상화를 그린다. 각자 저마다의 화풍이다, <제14번 c#단조>의 조각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선의 추상화, <제15번 D장조>의 베토벤은 참으로 다정한 색채로 그려졌다. <제16번 G장조>의 피아니스트는 베토벤을 만나 맑고 고운 질문을, <제17번 d단조>의 피아니스트는 이 작은 공간에 절대 갇힐 수 없는 베토벤의 고성을 듣는다. <제18번 Eb장조>를 지나는 동안 베토벤의 얼굴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이 수많은 피아니스트들 덕에 한껏 상기되었다가 <제19번 g단조>에서 짐짓 체면을 차리기도 한다. 깎지 않아 뭉툭한 연필의 끝으로 새긴<제 20번 G장조>, 갈기갈기 찢어낸 종이로 이어붙인 <제21번 C장조>, 정갈하게 그어내는 짙은 색의 <제22번 F장조>, 선이나 면이 아닌 하나의 점으로 심장을 아리는 <제23번 f단조>... 조각들이 모여 완성되어가는 그의 '얼룩진' 초상화. 그러나 이는 콜라주로 만들어진 피카소의 자화상처럼 이질적인 것들로 붙여 만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탄생한다.
2020년 7월의 마지막 날, 바로 이 순간. 한국의 피아노 음악 전 세대가 함께 그려낸 베토벤의 초상화였다. 함께 만든 이 예술품은 곧 우리네 음악계의 초상이자 역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 속에만 존재하는 예술, '음악'이기에... 아름다운 순간은 그렇게 관객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찰나의 감동만을 남긴 채 깊어가는 긴긴 여름밤의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글: 허서현 기자
출처: 월간 피아노음악 2020년 9월호
줄라이 페스티벌 피날레 콘서트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릴레이 연주
10대를 보내고 있는 어린 피아니스트부터 일흔을 넘긴 피아노 계의 대모까지... 도합 서른두 명의 음악가들이 마주한 베토벤이었다. 베토벤 음악의 처음과 끝, 그리고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피아노 소나타를 하루 만에, 릴레이로 전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피아니스트들의 열정을 이렇게 뜨겁게 느낄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후덥지근한 여름날보다 더 뜨거울 순간을 조금이나마 엿보고자 오전부터 릴레이 연주가 시작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 늦은 오후 부랴부랴 도착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12번 Ab장조> 연주가 한창인 때였다.
바닥으로 전해지는 피아노의 진동은 무대와 객석의 담마저 흔든다. 피아니스트의 발치 아래, 그 은밀하고 고독한 연습의 시간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연주회'의 형식이 허물어진 자리에, 음악 자체로 연주자의 위치를 확보하느 피아니스트의 역량이 더욱 또렷이 다가온다. 미세하게 떨리는 호흡과 한음 한음에 반응하는 근육의 움직임까지 전달된다. 그러나 베토벤의 음악 그 자체를 사랑하는 이들로 가득찬 이곳, 하우스콘서트에서는 비교나 우위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한 명의 음악가가 들어가고 나가는 시간 동안 차차 베토벤의 얼굴이 또렷해진다.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베토벤을 만나, 그의 초상화를 그린다. 각자 저마다의 화풍이다, <제14번 c#단조>의 조각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선의 추상화, <제15번 D장조>의 베토벤은 참으로 다정한 색채로 그려졌다. <제16번 G장조>의 피아니스트는 베토벤을 만나 맑고 고운 질문을, <제17번 d단조>의 피아니스트는 이 작은 공간에 절대 갇힐 수 없는 베토벤의 고성을 듣는다. <제18번 Eb장조>를 지나는 동안 베토벤의 얼굴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이 수많은 피아니스트들 덕에 한껏 상기되었다가 <제19번 g단조>에서 짐짓 체면을 차리기도 한다. 깎지 않아 뭉툭한 연필의 끝으로 새긴<제 20번 G장조>, 갈기갈기 찢어낸 종이로 이어붙인 <제21번 C장조>, 정갈하게 그어내는 짙은 색의 <제22번 F장조>, 선이나 면이 아닌 하나의 점으로 심장을 아리는 <제23번 f단조>... 조각들이 모여 완성되어가는 그의 '얼룩진' 초상화. 그러나 이는 콜라주로 만들어진 피카소의 자화상처럼 이질적인 것들로 붙여 만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탄생한다.
2020년 7월의 마지막 날, 바로 이 순간. 한국의 피아노 음악 전 세대가 함께 그려낸 베토벤의 초상화였다. 함께 만든 이 예술품은 곧 우리네 음악계의 초상이자 역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 속에만 존재하는 예술, '음악'이기에... 아름다운 순간은 그렇게 관객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찰나의 감동만을 남긴 채 깊어가는 긴긴 여름밤의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글: 허서현 기자
출처: 월간 피아노음악 2020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