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ano] 2016년 5월호 - 하우스콘서트의 가치 다시 보기 박창수
- 등록일2016.06.14
- 작성자하콘
- 조회74
The Piano 2016. 05
92-95쪽, 음악과 사람들
하우스콘서트의 가치 다시 보기
박창수
올해로 14년차를 맞은 ‘하우스콘서트’는 서울의 한 가정집에서 시작해 이제는 전국으로, 동아시아로, 전 세계로 그 무대를 점점 넓혀왔다. 그러나 하우스콘서트가 최근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하우스콘서트 대표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박창수를 만나 그 속사정을 들어 보았다.
글 심세나 기자, 사진 조준우 기자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하우스콘서트’의 시작을 회상해보고 싶습니다. 하우스콘서트를 시작했던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우스콘서트는 한일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뜨거웠던 2002년 여름에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월드컵의 열기를 타고 대규모 공연들이 붐을 일으키고 있었지요. 그러나 저는 음악을 제대로 향유하려면 소규모 공연, 더 나아가서는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공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연희동의 자택 일부를 개조해 만든 공간에서 첫 하우스콘서트를 열었습니다. 하우스콘서트가 10주년을 맞을 즈음에는 이 좋은 공연을 저만 알고 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전국 규모로 그 범위를 확장시켰습니다.
맞습니다. 최근에는 괄목할만한 성과들을 이뤄내며 더 큰 주목을 받았죠. 하우스콘서트가 최근에 이뤄낸 성과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서울에서만 이루어지던 공연을 처음으로 전국으로 확대시킨 것이 2012년부터였습니다. 당시 일주일간 전국에서 100회의 공연을 선보였지요. 2013년에는 같은 날, 같은 시간에 65개의 공연이 전국에서 동시에 열린 ‘2013 원데이 페스티벌’이 있었고요. 이 원데이 페스티벌이 2014년에는 한, 중, 일 세 나라로 더 크게 나아갔습니다. 94개 연주팀, 총 374명의 아티스트가 3개국의 13,003명 관객을 만났습니다. 작년인 2015년에는 ‘원먼스 페스티벌’을 개최했습니다. 7월 1일에서 311일까지 한 달간 세계의 27개 국가, 154개 도시에서 총 432개의 공연을 펼쳤습니다.
이렇게 하우스콘서트를 계속 확대, 확산시키는 의도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혹시 우리나라에 500석 이상의 객석을 보유한 공연장이 몇 곳이나 되는지 알고 계신지요. 400여 곳이 넘는답니다. 세계 최고수준의 공연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연주자들은 설 수 있는 무대가 없다고 합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또, 우리나라 문화의식의 수준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아직도 많이 낮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문화계의 기초적인 저변이 부실하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이 아직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하우스콘서트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또 전국으로 확산 시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하우스콘서트를 운영 및 발전시켜오면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하우스콘서트가 지향하는 목표들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전국에서 이뤄지는 공연을 기획했을 때도, 한중일 공연을 기획했을 때도, 세계무대를 기획했을 때도 다수의 음악인들과 행정인들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이야기했지요. 지방으로 공연들을 확산시키려 했던 2012년, 몇몇 연주자들은 지방에서 연주하는 것을 꺼리기도 했고, 지방의 공연장들에서도 우리가 하려던 공연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관객 동원이 힘들 것이라는 부정적인 예견을 하기도 했죠. 그러나 결국 저와 매니저 세 명, 이 네 명의 인력으로 이것들을 해냈지요. 저는 효율적인 시스템만 구축된다면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었고 그것을 실현시킴으로써 사름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더 높은 목표를 지향, 달성해온 것이고요. 제가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일 년 동안 5천 개의 공연을 만드는 것입니다. 불가능할 것 같지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우스콘서트’
2002년 7월 12일, 연희동 자택 일부를 개조해 만든 공간에서 국내 첫 하우스콘서트가 열렸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는 공간에서 연주자돠 관객이 하나 되는 하우스콘서트는 많은 사랑을 받으며 대한민국에 하우스콘서트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클래식을 중심으로 국악, 재즈, 대중음악, 실험예술, 독립영화 등 다양한 예술분야를 아우르며 현재까지 약 2천여 명의 아티스트와 함께 했고, 500여 회(올해 9월)의 공연을 통해 총 100종의 공연 실황 음반을 발매했다. 2008년에는 200회 공연을 기점으로 집을 떠나 새로운 공간에서 공연을 이어갔다. 녹음 스튜디오 ‘클래식 뮤테이션’, 사진 스튜디오 ‘보다’, 녹음 스튜디오 ‘율하우스’로 공간을 이전하며 변함없는 도전정신과 다양한 실험을 보였으며, 진정한 예술의 정신을 담는 특별한 공연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2014년 12월부터 현재까지 다섯 번째 시즌을 맞아 대학로 ‘예술가의 집’ 3층 다목적홀에서 매주 월요일 오후 8시에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격주 수요일마다 오후 8시에는 예술가의 집 1층 예술나무카페에서 ‘하우스 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하우스 토크는 일반적인 강연 형식이 아닌 연주자와 관객이 직접 대화하는 또 다른 만남의 장으로, 2014년 11월부터 시작되었다. 관객은 하우스 토크를 통해 늘 무대 위에서 작품으로만 표현해 왔던 음악가들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우스콘서트만의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어려운 점들을 어떤 식으로 극복했는지 사례를 이야기해 주실 수 있는지요.
지방의 어느 공연장은 700석 규모로 아주 컸는데, 관객은 150~200명 정도만 온 때도 있었어요. 객석의 반도 안 되는 것이죠. 이럴 때 우리는 하우스콘서트 정신을 살려서 관객을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관람하도록 했어요. 관객과 연주자가 같은 높이의 무대에 있음으로 인해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무대가 꽉 찼으니 더 풍성한 음악회가 되었지요. 관객의 입장에서는 무대에 서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하고요.
또 저희는 저예산으로 유명하고 뛰어난 연주자들을 많이 섭외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이것은 사실, 경제논리에 의하면 터무니없는 일이죠. 그러나 연주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회를 기획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연주자들에게 한 가지 레퍼토리로 여러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음악회를 기획해주면 더욱 좋아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음악가들의 도움도 많이 있었습니다.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유명 음악인들도 우리 하우스콘서트의 취지에 공감하게에 적은 출연료로 무대에 서 주셨습니다.
음악적, 사회적 원리들을 조금만 더 헤아려 본다면 하우스콘서트가 이뤄낸 것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이런 노하우들이 하우스콘서트의 자랑이기도 하고요.
아무리 하우스콘서트만의 노하우가 있다고 해도 네 명의 인력만으로도 이렇게 전국적,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렇죠. 해외토픽감이나 다름없지요. 아직도 극복해야 할, 그리고 바꿔나가야 할 점들이 많습니다. 어느 지방 공연장에서는 현악 4중주 연주자들을 위한 무대용 의자를 준비해달라고 하니, 바퀴가 달린 의자를 내오기도 했지요. 보면대를 준비해달라고 했을 때는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어오는 공연장 관계자도 있었습니다. 공연장 무대에는 멋들어진 콘서트용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가 떡하니 있지만, 연주와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악기 소리가 상한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그 외에도 정부의 문화 사업에 관련하여 일을 하다보면 관련 부처의 인식 부족으로 음악계의 실정과는 맞지 않는 정책을 수행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국가에서는 문화 정책 사업을 펼친다며 애쓰고 있고, 전국에 수많은 공연장들이 생겨나고 있으나 문화적인 인식에서는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것입니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문화적인 기반과 인식 개선을 위해 해오고 있는 하우스콘서트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나 기업의 스폰서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런 일들을 저와 같은 개인이 나서서 해야 한다는 것이 늘 속상하고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수준과 인지도가 아직 낮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하우스콘서트가 처음으로 전국 공연을 시작했던 2012년, 저희는 130여 군데의 지방 공연장들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공연 제작에 관련된 내용과 비용은 하우스콘서트 측에서 모두 담당하여 연주자 우리 공연의 취지와 의도를 설명하는 이메일을 발송했지만 회신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전화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공연장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 매니저 중 한 사람이 전국의 공연장들을 일일이 직접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겨우 23곳의 공연장에서 공연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참 슬픈 일이지요. 만약 정부나 기업의 후원이 있었다면, 이렇게 힘들었을까요?
이야기가 나와서, 조심스럽게 묻고 싶습니다. 얼마 전 ‘파산 위기 하우스콘서트 함께 지켜 달라’는 제목의 언론 기사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는지요.
네, 하우스콘서트를 해오는 것이 늘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만성적인 적자로 현재 심각한 위기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우스콘서트에서 발생한 적자에 대해서는 제 사비로 충당해 왔습니다. 이제는 제 사비로도 적자를 감당하기 힘든 항황이 왔고요. 올해는 어떻게든 버티겠는데, 내년은 정말 암담한 상황입니다. 정부에서도 우리 하우스콘서트가 이제는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판단해서인지 지원금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올해는 각종 정부 지원금 신청에서도 줄줄이 탈락했고요. 그동안 민간 후원 제의는 많이 받아왔지만 그렇게 후원을 받기 시작하면 저와 하우스콘서트의 순수성이나 의도가 훼손될까 염려되어 거절해 왔는데 올해부터는 후원자를 나서서 모색해야 할 만큼 힘이 듭니다. 이런 저희에게 많은 사람들이 “응원합니다.”라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런 응원에 힘입어 저희는 개인적인 펀딩을 오픈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펀딩이 오픈된 2주 동안 모금된 금액은 겨우 12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이젠 하우스콘서트를 위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십사 부탁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하우스콘서트를 비롯해 문화예술계가 참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도 하우스콘서트의 정신을 계속 지켜나가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을 보면 대단합니다. 신인 음악가들까지도 발굴하여 지원해주시고 계신데요.
저는 우리나라의 음악 수준에 비해 국민이나 음악가들의 상태는 굉장히 수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도 음악적인 판단력이 있는데도, 자신들의 판단을 믿지 않습니다. 해외의 콩쿠르에서 수상하거나 해외에서 인정받아야 비로소 그 음악가의 실력을 제대로 알아봐주지요. 김선욱, 조성진 같은 음악가들이 해외 콩쿠르에 입상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들의 실력을 지금처럼 인정해줬을까요? 그래서 우리 하우스콘서트는 능동적으로 우리나라의 뛰어난 음악 인재들을 우리가 발굴하고 도와주자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어느 분들은 저보고 어떻게 김선욱이나 조성진 같은 유명한 음악인들을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초청할 수 있냐고 묻지요. 우리는 그런 음악가들을 이미 학생 때부터 발굴하여 우리 무대에 세워 인연을 맺었습니다. 김선욱 같은 경우에는 그가 중학생이었을 때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퍼음 선 이후에는 내한할 때에 본인이 자처해서 하우스콘서트에서 연주하고 있습니다.
창작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작이 활성화 되어야 각 기업들도 더 큰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우스콘서트에서는 신인 작곡가들을 발굴하여 지원합니다. 참 이상하지요. 적자에 시달리는 우리가 오히려 음악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해준다니 말이죠. 이런 일들을 이제는 개인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하우스콘서트가 지켜나가는 ‘하우스콘서트의 정신’에는 무엇이 있나요?
저는 연주자와 관객에게 굉장히 냉정하고 혹독하게 대하는 편입니다. 우리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서는 연주자는 실력이나 성실함을 갖춘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유명한 연주자고, 유명 대학의 교수라고 해도 실력이 없는 연주자는 저희가 부르지 않습니다. 관객이 하우스콘서트에 대한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실력이 증명되지 않은 음악가라고 해도 늘 하우스콘서트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러브콜을 계속해서 보내오는 음악가들에게도 우리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또, 음악가들이 하우스콘서트 무대에서 연주를 할 때에는 등받이 없는 의자를 사용하며, 그 의자는 다른 의자들 보다 1cm 정도 낮습니다. 무대에서 늘 긴장하여 연주하게 만들어 주며 관객과 더 가까운 위피에서 겸손함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죠. 하우스콘서트에 서는 음악가들은 실력과 성실함, 겸손함을 겸비해야 합니다. 때문에 큰 공연장에 서는 것보다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서는 것이 더 떨린다는 음악가들도 있습니다.
저는 연주자에게 음악가로서의 책임감을 갖도록 요구하는 것처럼 관객에게도 마찬가지로 관객으로서의 책임감을 갖도록 요구합니다. 우리나라는 ‘손님이 왕’이라는 인식 때문에 손님에게 권리는 많이 주면서 그만큼의 책임감은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죠. 그런 문화의식을 1퍼센트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 하우스콘서트와 음악가들이 만들어낸 하우스콘서트에 대해 감사해게 생각하고 늘 관심을 주는 관객에게는 더 잘해주지요.
오늘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하우스콘서트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현재 우리 문화는 대중문화에 너무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물론, 케이팝(K-Pop)이나 한국 드라마 등이 해외에서도 큰 인기몰이를 하고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순수예술, 기초예술 분야를 등진다면 그런 것들도 결국 모래 위에 쌓은 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로만 해도 순수예술인 연극이나 음악 공연보다도 코미디나 뮤지컬 같은 상업화 된 공연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하우스콘서트가 대학로로 옮겨온 것도 대학로의 문화 발전에 좀 더 도움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나라가 현재의 문화적 수준을 갖추기까지 있었는 많은 분들의 노고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세우신 이강숙 선생님께서도 “한국예술동합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말씀하셨지요. 하우스콘서트도 그런 분들의 정신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우리 문화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이젠, 많이 힘듭니다. 위기에 빠진 하우스콘서트가 계기가 되어 정부와 기업들의 자발적인 스폰서 문화나 효율적인 문화정책이 생긴다면 좋겠고, 여러분께서도 개인적으로 후원을 해주시고 관심을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92-95쪽, 음악과 사람들
하우스콘서트의 가치 다시 보기
박창수
올해로 14년차를 맞은 ‘하우스콘서트’는 서울의 한 가정집에서 시작해 이제는 전국으로, 동아시아로, 전 세계로 그 무대를 점점 넓혀왔다. 그러나 하우스콘서트가 최근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하우스콘서트 대표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박창수를 만나 그 속사정을 들어 보았다.
글 심세나 기자, 사진 조준우 기자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하우스콘서트’의 시작을 회상해보고 싶습니다. 하우스콘서트를 시작했던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우스콘서트는 한일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뜨거웠던 2002년 여름에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월드컵의 열기를 타고 대규모 공연들이 붐을 일으키고 있었지요. 그러나 저는 음악을 제대로 향유하려면 소규모 공연, 더 나아가서는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공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연희동의 자택 일부를 개조해 만든 공간에서 첫 하우스콘서트를 열었습니다. 하우스콘서트가 10주년을 맞을 즈음에는 이 좋은 공연을 저만 알고 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전국 규모로 그 범위를 확장시켰습니다.
맞습니다. 최근에는 괄목할만한 성과들을 이뤄내며 더 큰 주목을 받았죠. 하우스콘서트가 최근에 이뤄낸 성과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서울에서만 이루어지던 공연을 처음으로 전국으로 확대시킨 것이 2012년부터였습니다. 당시 일주일간 전국에서 100회의 공연을 선보였지요. 2013년에는 같은 날, 같은 시간에 65개의 공연이 전국에서 동시에 열린 ‘2013 원데이 페스티벌’이 있었고요. 이 원데이 페스티벌이 2014년에는 한, 중, 일 세 나라로 더 크게 나아갔습니다. 94개 연주팀, 총 374명의 아티스트가 3개국의 13,003명 관객을 만났습니다. 작년인 2015년에는 ‘원먼스 페스티벌’을 개최했습니다. 7월 1일에서 311일까지 한 달간 세계의 27개 국가, 154개 도시에서 총 432개의 공연을 펼쳤습니다.
이렇게 하우스콘서트를 계속 확대, 확산시키는 의도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혹시 우리나라에 500석 이상의 객석을 보유한 공연장이 몇 곳이나 되는지 알고 계신지요. 400여 곳이 넘는답니다. 세계 최고수준의 공연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연주자들은 설 수 있는 무대가 없다고 합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또, 우리나라 문화의식의 수준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아직도 많이 낮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문화계의 기초적인 저변이 부실하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이 아직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하우스콘서트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또 전국으로 확산 시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하우스콘서트를 운영 및 발전시켜오면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하우스콘서트가 지향하는 목표들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전국에서 이뤄지는 공연을 기획했을 때도, 한중일 공연을 기획했을 때도, 세계무대를 기획했을 때도 다수의 음악인들과 행정인들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이야기했지요. 지방으로 공연들을 확산시키려 했던 2012년, 몇몇 연주자들은 지방에서 연주하는 것을 꺼리기도 했고, 지방의 공연장들에서도 우리가 하려던 공연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관객 동원이 힘들 것이라는 부정적인 예견을 하기도 했죠. 그러나 결국 저와 매니저 세 명, 이 네 명의 인력으로 이것들을 해냈지요. 저는 효율적인 시스템만 구축된다면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었고 그것을 실현시킴으로써 사름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더 높은 목표를 지향, 달성해온 것이고요. 제가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일 년 동안 5천 개의 공연을 만드는 것입니다. 불가능할 것 같지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우스콘서트’
2002년 7월 12일, 연희동 자택 일부를 개조해 만든 공간에서 국내 첫 하우스콘서트가 열렸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는 공간에서 연주자돠 관객이 하나 되는 하우스콘서트는 많은 사랑을 받으며 대한민국에 하우스콘서트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클래식을 중심으로 국악, 재즈, 대중음악, 실험예술, 독립영화 등 다양한 예술분야를 아우르며 현재까지 약 2천여 명의 아티스트와 함께 했고, 500여 회(올해 9월)의 공연을 통해 총 100종의 공연 실황 음반을 발매했다. 2008년에는 200회 공연을 기점으로 집을 떠나 새로운 공간에서 공연을 이어갔다. 녹음 스튜디오 ‘클래식 뮤테이션’, 사진 스튜디오 ‘보다’, 녹음 스튜디오 ‘율하우스’로 공간을 이전하며 변함없는 도전정신과 다양한 실험을 보였으며, 진정한 예술의 정신을 담는 특별한 공연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2014년 12월부터 현재까지 다섯 번째 시즌을 맞아 대학로 ‘예술가의 집’ 3층 다목적홀에서 매주 월요일 오후 8시에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격주 수요일마다 오후 8시에는 예술가의 집 1층 예술나무카페에서 ‘하우스 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하우스 토크는 일반적인 강연 형식이 아닌 연주자와 관객이 직접 대화하는 또 다른 만남의 장으로, 2014년 11월부터 시작되었다. 관객은 하우스 토크를 통해 늘 무대 위에서 작품으로만 표현해 왔던 음악가들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우스콘서트만의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어려운 점들을 어떤 식으로 극복했는지 사례를 이야기해 주실 수 있는지요.
지방의 어느 공연장은 700석 규모로 아주 컸는데, 관객은 150~200명 정도만 온 때도 있었어요. 객석의 반도 안 되는 것이죠. 이럴 때 우리는 하우스콘서트 정신을 살려서 관객을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관람하도록 했어요. 관객과 연주자가 같은 높이의 무대에 있음으로 인해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무대가 꽉 찼으니 더 풍성한 음악회가 되었지요. 관객의 입장에서는 무대에 서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하고요.
또 저희는 저예산으로 유명하고 뛰어난 연주자들을 많이 섭외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이것은 사실, 경제논리에 의하면 터무니없는 일이죠. 그러나 연주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회를 기획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연주자들에게 한 가지 레퍼토리로 여러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음악회를 기획해주면 더욱 좋아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음악가들의 도움도 많이 있었습니다.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유명 음악인들도 우리 하우스콘서트의 취지에 공감하게에 적은 출연료로 무대에 서 주셨습니다.
음악적, 사회적 원리들을 조금만 더 헤아려 본다면 하우스콘서트가 이뤄낸 것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이런 노하우들이 하우스콘서트의 자랑이기도 하고요.
아무리 하우스콘서트만의 노하우가 있다고 해도 네 명의 인력만으로도 이렇게 전국적,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렇죠. 해외토픽감이나 다름없지요. 아직도 극복해야 할, 그리고 바꿔나가야 할 점들이 많습니다. 어느 지방 공연장에서는 현악 4중주 연주자들을 위한 무대용 의자를 준비해달라고 하니, 바퀴가 달린 의자를 내오기도 했지요. 보면대를 준비해달라고 했을 때는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어오는 공연장 관계자도 있었습니다. 공연장 무대에는 멋들어진 콘서트용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가 떡하니 있지만, 연주와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악기 소리가 상한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그 외에도 정부의 문화 사업에 관련하여 일을 하다보면 관련 부처의 인식 부족으로 음악계의 실정과는 맞지 않는 정책을 수행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국가에서는 문화 정책 사업을 펼친다며 애쓰고 있고, 전국에 수많은 공연장들이 생겨나고 있으나 문화적인 인식에서는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것입니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문화적인 기반과 인식 개선을 위해 해오고 있는 하우스콘서트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나 기업의 스폰서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런 일들을 저와 같은 개인이 나서서 해야 한다는 것이 늘 속상하고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수준과 인지도가 아직 낮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하우스콘서트가 처음으로 전국 공연을 시작했던 2012년, 저희는 130여 군데의 지방 공연장들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공연 제작에 관련된 내용과 비용은 하우스콘서트 측에서 모두 담당하여 연주자 우리 공연의 취지와 의도를 설명하는 이메일을 발송했지만 회신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전화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공연장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 매니저 중 한 사람이 전국의 공연장들을 일일이 직접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겨우 23곳의 공연장에서 공연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참 슬픈 일이지요. 만약 정부나 기업의 후원이 있었다면, 이렇게 힘들었을까요?
이야기가 나와서, 조심스럽게 묻고 싶습니다. 얼마 전 ‘파산 위기 하우스콘서트 함께 지켜 달라’는 제목의 언론 기사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는지요.
네, 하우스콘서트를 해오는 것이 늘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만성적인 적자로 현재 심각한 위기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우스콘서트에서 발생한 적자에 대해서는 제 사비로 충당해 왔습니다. 이제는 제 사비로도 적자를 감당하기 힘든 항황이 왔고요. 올해는 어떻게든 버티겠는데, 내년은 정말 암담한 상황입니다. 정부에서도 우리 하우스콘서트가 이제는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판단해서인지 지원금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올해는 각종 정부 지원금 신청에서도 줄줄이 탈락했고요. 그동안 민간 후원 제의는 많이 받아왔지만 그렇게 후원을 받기 시작하면 저와 하우스콘서트의 순수성이나 의도가 훼손될까 염려되어 거절해 왔는데 올해부터는 후원자를 나서서 모색해야 할 만큼 힘이 듭니다. 이런 저희에게 많은 사람들이 “응원합니다.”라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런 응원에 힘입어 저희는 개인적인 펀딩을 오픈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펀딩이 오픈된 2주 동안 모금된 금액은 겨우 12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이젠 하우스콘서트를 위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십사 부탁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하우스콘서트를 비롯해 문화예술계가 참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도 하우스콘서트의 정신을 계속 지켜나가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을 보면 대단합니다. 신인 음악가들까지도 발굴하여 지원해주시고 계신데요.
저는 우리나라의 음악 수준에 비해 국민이나 음악가들의 상태는 굉장히 수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도 음악적인 판단력이 있는데도, 자신들의 판단을 믿지 않습니다. 해외의 콩쿠르에서 수상하거나 해외에서 인정받아야 비로소 그 음악가의 실력을 제대로 알아봐주지요. 김선욱, 조성진 같은 음악가들이 해외 콩쿠르에 입상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들의 실력을 지금처럼 인정해줬을까요? 그래서 우리 하우스콘서트는 능동적으로 우리나라의 뛰어난 음악 인재들을 우리가 발굴하고 도와주자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어느 분들은 저보고 어떻게 김선욱이나 조성진 같은 유명한 음악인들을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초청할 수 있냐고 묻지요. 우리는 그런 음악가들을 이미 학생 때부터 발굴하여 우리 무대에 세워 인연을 맺었습니다. 김선욱 같은 경우에는 그가 중학생이었을 때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퍼음 선 이후에는 내한할 때에 본인이 자처해서 하우스콘서트에서 연주하고 있습니다.
창작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작이 활성화 되어야 각 기업들도 더 큰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우스콘서트에서는 신인 작곡가들을 발굴하여 지원합니다. 참 이상하지요. 적자에 시달리는 우리가 오히려 음악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해준다니 말이죠. 이런 일들을 이제는 개인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하우스콘서트가 지켜나가는 ‘하우스콘서트의 정신’에는 무엇이 있나요?
저는 연주자와 관객에게 굉장히 냉정하고 혹독하게 대하는 편입니다. 우리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서는 연주자는 실력이나 성실함을 갖춘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유명한 연주자고, 유명 대학의 교수라고 해도 실력이 없는 연주자는 저희가 부르지 않습니다. 관객이 하우스콘서트에 대한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실력이 증명되지 않은 음악가라고 해도 늘 하우스콘서트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러브콜을 계속해서 보내오는 음악가들에게도 우리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또, 음악가들이 하우스콘서트 무대에서 연주를 할 때에는 등받이 없는 의자를 사용하며, 그 의자는 다른 의자들 보다 1cm 정도 낮습니다. 무대에서 늘 긴장하여 연주하게 만들어 주며 관객과 더 가까운 위피에서 겸손함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죠. 하우스콘서트에 서는 음악가들은 실력과 성실함, 겸손함을 겸비해야 합니다. 때문에 큰 공연장에 서는 것보다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서는 것이 더 떨린다는 음악가들도 있습니다.
저는 연주자에게 음악가로서의 책임감을 갖도록 요구하는 것처럼 관객에게도 마찬가지로 관객으로서의 책임감을 갖도록 요구합니다. 우리나라는 ‘손님이 왕’이라는 인식 때문에 손님에게 권리는 많이 주면서 그만큼의 책임감은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죠. 그런 문화의식을 1퍼센트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 하우스콘서트와 음악가들이 만들어낸 하우스콘서트에 대해 감사해게 생각하고 늘 관심을 주는 관객에게는 더 잘해주지요.
오늘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하우스콘서트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현재 우리 문화는 대중문화에 너무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물론, 케이팝(K-Pop)이나 한국 드라마 등이 해외에서도 큰 인기몰이를 하고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순수예술, 기초예술 분야를 등진다면 그런 것들도 결국 모래 위에 쌓은 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로만 해도 순수예술인 연극이나 음악 공연보다도 코미디나 뮤지컬 같은 상업화 된 공연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하우스콘서트가 대학로로 옮겨온 것도 대학로의 문화 발전에 좀 더 도움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나라가 현재의 문화적 수준을 갖추기까지 있었는 많은 분들의 노고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세우신 이강숙 선생님께서도 “한국예술동합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말씀하셨지요. 하우스콘서트도 그런 분들의 정신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우리 문화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이젠, 많이 힘듭니다. 위기에 빠진 하우스콘서트가 계기가 되어 정부와 기업들의 자발적인 스폰서 문화나 효율적인 문화정책이 생긴다면 좋겠고, 여러분께서도 개인적으로 후원을 해주시고 관심을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