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문화재단 미래와 인재] SBS문화재단이 만난 사람 - 박창수 대표
  • 등록일2016.06.14
  • 작성자하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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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문화재단 - 미래와 인재 2016 Vol.08

 

한국 음악계의 독립투사

박창수 더하우스콘서트 대표


 



바이올린의 거장 정경화,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김선욱, 그리고 가수 강산에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박창수 하우스콘서트(The House Concert) 대표를 믿고, 작은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선 주인공들이라는 것. 

이렇게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힘을 가진 음악기획자 그러나 자신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하는 남자, 더하우스콘서트 박창수 대표를 만났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는 마룻바닥 음악회

하우스콘서트란 단어 뜻 그대로 집에서 열리는 콘서트. 집이 주는 편안함과 흐트러짐을 부담 없이 즐기며, 연주자와 같은 높이의 마룻바닥에 앉아 연주자의 작은 땀방울과 숨소리까지 보고 들을 수 있도록 기획한 작은 공연이다. 하우스콘서트는 박창수 대표가 서울예고 재학 시절부터 20여 년간 꿈꾸었던 무대였다. 그는 2002년 7월 자신의 연희동 집 2층을 개조해서 하우스콘서트를 시작했고, 2008년까지 총 200회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00회까지 공연을 하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연주자들도 하우스콘서트에서 공연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또 얼마나 경력에 도움이 되는지 알기 시작했고, 자진해서 공연하겠다고 연락을 해 오고 있었으니까요. 아, 내 방식대로 연주회를 열어도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느끼고 콘서트를 더 확장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201회부터는 집을 떠나 새로운 공간에서 공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집을 떠나온 하우스콘서트는 녹음 스튜디오나 사진 스튜디오 공간을 무대로 콘서트를 이어왔고, 2014년 12월부터는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매주 월요일에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201회에 집을 나온 콘서트가 벌써 470여 회가 넘었고, 2016년 공연일정까지 모두 잡혀 있으니 하우스콘서트는 탄탄한 성공 대로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하우스콘서트의 성공을 기뻐하는 박 대표의 표정이 어두웠다. 현실의 벽이 너무 높고 암담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예술문화의 중심지인 대학로가 상업화되는 것이 안타까워서 기초예술을 활성화 시키고자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 바람에 매년 문화예술기관에서 받던 지원금을 못 받게 됐습니다. 출혈이 컸지요. 다행히 SBS문화재단에서 지원을 해ㅜ셨어요. 하우스콘서트가 올해 13년째인데, 민간으로 받은 스폰서로는 처음입니다.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아주 특별한 하우스콘서트 축제... 페스티벌

하우스콘서트를 하면서 박창수 대표는 수많은 한국 음악계의 모순과 마주쳤다. 한국에는 뛰어난 음악가들이 많은데 그들이 설 무대가 적었던 것이다. 전국에 500석 이상 규모의 공연장이 400개가 넘는데, 공연은 거의 없었으니,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온 연주자들이 2, 3년이 지나면 연주기량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박 대표는 하우스콘서트가 10년을 맞이하는 해에 근사한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일주일 동안 21개 도시의 23개 극장에서 100개의 공연을 하는 <2012 프리, 뮤직 페스티벌>이었다. 모두 하우스콘서트 형식을 그대로 가져온 무대였는데, 관객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때부터 박 대표를 비롯한 더하우스콘서트 매니저 4명은 음악계의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매주 공연되는 기존의 하우스콘서트 일정에 쫓기면서도 매년 연주자와 관객들이 깜짝 놀랄 콘서트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2013년에는 원데이 페스티벌을 열었습니다. 7월 12일 오후 7시에 우리나라 전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65개의 공연이 열린 것이죠. 클래식, 재즈, 국악 등 다양한 장르 연주자 290여 명이 참여했고, 9400여 명의 관객들이 특별한 하루를 함께 했습니다."

 

박 대표의 놀라운 페스티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4년에는 원데이 페스티벌의 규모를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으로 확대했다. 상상해 보라. 2014년 7월 12일 오후 7시, 세 나라에서 총 94개의 공연이 일시에 열리는 것을. 이는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문다는 의미였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같은 시간에 동시다발적으로 공연이 시작된다는 것은, 같은 마음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을 뜻했다. 서로 직접 만나지 않고 각기 다른 음악을 마주하지만, 특정한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 그 자체로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고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이 페스티벌이 보여주었다. 

 

2015년에는 원데이 페스티벌을 원먼스로 놀이고, 한 달간 27개국 155개 도시에서 432개의 공연을 했다. 모두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던 공연을 4명의 더하우스콘서트 팀들이 독립군처럼 뛰면서 성사시킨 것이다. 지난 13년간 하우스콘서트를 하며 쌓았던 음악 예술가들과의 인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적자투성이 하우스콘서트가 건재한 까닭은?

하우스콘서트를 시작하고 박창수 대표는 본업인 작곡, 피아노와 멀어졌다. 밤낮없이 휴일도 없이 일하다 보니 자신의 시간을 갖기 힘들었다. 게다가 하우스콘서트는 13년째 적자를 기록하고, 공연을 하고 있는 예술가의 집에서도 푸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 음악예술계의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버티고 있으나 지치고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표가 하우스콘서트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제가 김선욱과 조성진이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하기 전에 그들을 알아보았던 것처럼, 우리 스스로 좋은 연주자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으면 좋겠습니다. 외국 콩쿠르에서 입상해야 인정을 하는 우리 문화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싶어요. 하우스콘서트를 계속해야 세계적이 음악가로 성장할 새싹들을 우리가 알아보고 인정해주는 문화가 생길 테지요. 좋은 연주자를 발굴해서 키우는 것이 진짜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하우스콘서트가 대학로의 상업화를 막고 클래식을 환산할 수 있도록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박창수 대표가 이끄는 더하우스콘서트는 오늘도 독립군처럼 온 힘을 다해 뛰며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음악계를 향해 올바른 쓴소리를 하거자, 독립자금도 받지 못한 채 동분서주하는 중이다. 연주자와 관객 모두가 행복해지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52세 청춘 박창수 대표의 특별한 제안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