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조선] 2015년 9월호 - 마룻바닥에서 즐기는 클래식
  • 등록일2016.06.14
  • 작성자하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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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룻바닥에서 즐기는 클래식



더하우스콘서트 박창수 대표

 



 

거리예술가와 연극배우들이 땀과 노력의 무대를 일구어나가는 공간, 대학로. 지난 8월 3일 이곳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클라리네티스트 김우연과 피아니스트 김재원의 하우스콘서트가 열렸다. 독일 뤼벡 국립음대의 첫 한국 클라리네티스트이자 유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한 김우연. 마찬가지로 국제 콩쿠르에서 훌륭한 실력을 인정받아온 김재원은 이날 약 90분 동안 드뷔시, 슈만, 호로비츠의 곡들을 차례로 연주했다. 연주를 감상하는 관객은 남녀노소 모두 서른 명 남짓. 입장료 2만원만 내면 마룻바닥에 앉아 2~3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연주자들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하우스콘서트’라서 가능한 일이다.

 

국내에 하우스콘서트가 처음 도입된 건 2002년 여름. 피아니스트 박창수가 자신의 서울 연희동 자택을 연주공간으로 개방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일반 대중에게 마냥 어렵기만 한 클래식 음악을 일상으로 불러들였다. 젠체할 필요 없이 바닥에 앉아 바로 코앞에서 즐기는 것. 그렇게 즐기다 보면 클래식은 어려운 것도, 아는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음악도 아니었다.

 

“선진국에서 하우스콘서트는 최상위 계급들이 누리는 문화예요. ‘살롱문화’라고도 하죠. 티룸 같은 공간에 모여 차도 마시고 가까이에서 연주도 들으며 문화를 즐기는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술의전당 같은 큰 공연장에서 하는 공연만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하는데, 착각이예요. 아무리 유명한 연주자가 와도 객석에서 50m 이상 떨어진 곳에서 피아노를 치는데 그 소리가 감동적으로 와 닿을 수 있을까요? 예술의전당(같은 대형 공연장)은 넓은 공간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연주 소리가 잘 들리게)하기 위해 공은 들이고 설계한 공간일 뿐이예요. 실제로는 라디오로 음악을 듣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거죠. 오늘 공연 들을 거죠? 여기서 들어보면 웬만한 연주자들의 연주도 최고의 소리로 들려요."

 

이날 관객들 대부분은 연주자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부터 미간에 찌푸린 주름, 입가의 옅은 미소까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그만큼 연주자와 객석의 거리가 가까웠다는 말이다. 사실 객석이랄 것도 없다. 같은 높이의 마룻바닥에서 최소한의 간격만을 두고 옹기종기 모여 있을 뿐이었으니까.

 

“하우스콘서트는 연주자와 관객을 물리적으로도 가깝게 만들지만 심리적으로도 가깝게 만드는 역할을 해요. 이런 장점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정경화 씨에게서도 먼저 연락이 온 거고요."

 

올해로 14년째 하우스콘서트를 이끌고 있는 박창수 곁에는 세 명의 매니저가 함께한다. 일면 ‘하코너’(하우스콘서트의 줄임말에 -er을 붙인 것)라 불리는 이들은 매주, 매년 단위로 전국의 하우스콘서트를 기획한다. 그 일환으로 열린 것이 지난 7월 31일 막을 내린 ‘원먼스 페스티벌’. 7월 한 달 동안 전 세계 27개국, 155개 도시에서 총 432개의 공연이 열린 이 축제에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도 함께했다. 지난 7월 16일 강원도 횡성군의 한 초등학교에서 정경화의 바이올린 연주가 울려 퍼진 이유다.

 

“사실 클래식은 대중화될 수 있는 장르가 아니에요. 저도 클래식만 고집하려는 게 아니고요. 다만 사람들이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차이점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대중음악은 금방 어필하고 소비되는 장르라면 클래식은 곱씹고 생각해야 하는 예술 장르예요. 클래식이 좋다, 우월하다를 떠나서 너무 가벼운 것에 익숙해져 있다 보면 사람의 생각도 그렇게 된다는 거죠. 우리의 의식수준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우리가 가진 촌스러움을 벗어던지고 싶다는 생각, 그게 이 일을 시작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그의 연희동 자택에서 시작된 하우스콘서트는 올해로 14년째를 맞는다. 설득과 좌절이 반복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른 하우스콘서트는 지난해 대학로 예술가의 집으로 터를 옮겼다.

 

“대학로는 우리나라 문화, 예술의 상징성을 가진 곳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상업문화로 찌들어 있죠. 클래식 음악은 완전히 죽었고 무용은 조금 남았고 연극이 살아 있는데, 그나마 두 개 중 하나 아니면 실패합니다. 벗는 거 아니면 코미디. 그래서 문화예술위원회에 제기했어요. 이곳으로 들어와 (죽은 예술문화를) 살려보겠다고요."

 

매주 월요일 오후 8시면 이곳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는 연주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오페라, 삼중주, 국악, 재즈, 아카펠라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실력 있는 연주자들의 공연을 코앞에서 감상할 수 있고, 심지어 티켓 값도 저렴하다. 공연이 끝나면 작은 와인파티도 마련돼 있다. 누가 클래식 공연이 어렵다 했나? 올가을, 하우스콘서트의 문을 두드려보자. 

 



글 : 김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