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2015년 7월호 - 문화운동가 박창수
  • 등록일2016.06.14
  • 작성자하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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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운동가 박창수



‘더하우스콘서트’의 박창수 대표를

그저 좋은 공연 기획자로만 아는 것엔 큰 문제가 있다.


 



지난 6월 1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 2만 원짜리 티켓을 사서 방문한 관객들이 3층 다목적실의 마룻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6월의 첫 번째 하우스콘서트를 감상하기 위해서다. 피아니스트 이혜전, 이혜은, 정민경, 나정혜의 연주가 있는 날이었다. 80여 명에 달하는 관객은 연주가 시작되자 제각기 피아노 선율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채비를 했다. 그러니까 귀로는 음악을, 발바닥으론 마룻바닥에서 전해지는 진동을 느낄 준비였다. 연주는 90여 분간 이어졌다. 연주자들은 생상스와 피아졸라, 슈베르트의 곡 등을 연주했다. 관객들은 마치 볕 좋은 마루 끝에서 새 우는 소리 감상하듯 연주에 집중했다.

 

하우스콘서트는 박창수 대표가 지난 13년간 이끌어온 소규모 실내 연주회다. 이 연주회의 특징은 관객과 무대의 경계가 없다는거다. 관객들은 연주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공연을 보고 듣고, 연주자의 숨소리와 악기의 떨림까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박대표는 2002년 7월 연희동 자택 일부를 고쳐 국내에서 처음 하우스콘서트를 시작한 이래 매주 한 차례 국내외의 실력 있는 연주자를 초대해 누적 횟수 442회(6월 1일 현재)의 연주회 기록을 세웠다. 이제껏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외르크 데무스, 피아니스트 김선욱,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베를린 필하모닉 클라리넷 수석 주자 벤첼 푹스 등 1600여 명의 아티스트가 하우스콘서트를 거쳐갔고, 440회가 넘는 공연을 통해 총 100개의 공연 실황 음반도 발매했다. 이것은 곧 ‘증명’의 역사이기도 하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연주회가 탄생할 수 있다는 증명. 사실 하우스콘서트의 시작은 박창수 대표의 어린 시절 소박한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서울예술고등학교 재학 시절 큰 공연장보다 친구들과 좁은 방에서 연습하는 걸 더 좋아했다. 악기의 소리를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 마룻바닥을 통해 온몸으로 진동까지 느낄 때 비로소 음악 감상의 진정한 매력이 전해진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0년 후, 그는 그 기억을 현실로 이끌어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술의전당에 가야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건 착각이에요. 50m, 100m 떨어진 위치에선 소리는 크게 들을 수 있어도, 소리의 진정한 매력인 배음(진동)까진 느낄 수 없거든요. 그럼 그건 라디오를 듣는 것과 다름없죠. 한데 사람들은 라디오로 듣는 음악엔 별로 감동하지 못하잖아요."

 

그간 박 대표는 연희동 자택을 시작으로 서울 광장동, 역삼동, 도곡동, 현재의 대학로로 ‘하우스’를 옮기며 관객을 맞았다. 그가 그렇게 하우스콘서트를 옮긴 건 하우스콘서트의 ‘개념’을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2008년 그가 100회 공연을 끝으로 연희동 자택에서 나오자, 그간 전국에서 하우스콘서트와 비슷한 소규모 콘서트를 연 기획자들도 그를 따라 전부 집 밖으로 나왔다. 갤러리와 미술관은 예사였고 카페아 레스토랑, 병원 등 다양했다. 박 대표는 그 여세를 몰아 하우스콘서트를 전국으로 확장했다. 2012년엔 하우스콘서트 탄생 10주년을 맞아 ‘하우스콘서트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 작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일주일간 전국 21곳에서 100회 공연을 올리는 ‘프리, 뮤직 페스티벌’을 열었고, 2013년엔 한날한시에 전국 65개 장소에서 294명의 예술가가 1만 명의 관객을 만나는 ‘원 데이 페스티벌’을 선보였다. 또 지난해엔 이웃나라로 연주회를 확장한 ‘한중일 원 데이 페스티벌’을 총 94곳(한국 47곳, 일본 29곳, 중국 18곳)에서 진행해 국제적 이슈와 호평을 얻었다.

 

하지만 이렇게 ‘백전불태’ 같은 기획력을 지닌 그라고 지금껏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니까 ‘만성 적자’에 대한 얘기다. 하우스콘서트의 공연 관람료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2만 원이다. 심지어 공연 당일 입장료의 절반은 연주자 개런티로 나간다. 나머지는 운영을 위한 비용으로 쓴다. “가격이 너무 싼 거 아니냐”는 의견에 티켓 값을 조정하려고도 했지만, 공연에 대한 가치 판단은 관객에게 돌리기로 했다. 13년 역사만큼 숱한 관객이 다녀갔지만, 관람료가 저렴한 데다 조금이라도 이익이 나면 공연을 한 번 더 올리는 바람에 손익계산서는 언제나 마이너스였다. 사적 목적 없는 순수한 후원자를 기다리지만 여의치 않자 그는 여러 번 사재도 털었다.



“많은 이가 의문을 품는 게 예산에 관한 거예요. 사람들은 지금도 제가 굉장히 돈이 많은 줄 알더라고요. 적자 날 게 빤한 공연을 계속하니까요. 하지만 그건 그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기 때문에 하는 착각이에요. 전 지금껏 단 한 번도 연주회로 수익을 남기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음악가들도 돈이 아닌 마음으로 사는 거죠. 일례로 외르크 데무스 같은 피아니스트는 한 번 공연하는 데 최소 5만 달러가 들어요. 하지만 그는 정말 턱도 없는 개런티로 무대에 섰죠. 그런데도 모든 걸 경제 논리로만 보는 이들의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아쉬워요.”



박 대표는 이런 ‘마음의 개런티’외에도 연주자를 섭외할 때 한 가지 원칙을 고수한다. 바로 신인 발굴이다. 지금은 유명한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김태형도 무명 시절 하우스콘서트에 섰다. 물론 기성 연주자도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서지만, 그는 신인 발굴을 더 중요시 한다. 박 대표에 의해 신인 시절 하우스콘서트에 선 연주자들은 자신을 알아봐준 고마움을 지금도 잊지 않는다.

 

한편 박 대표는 7월 1일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할 예정이다. 무려 한 달간 세계 27개국 154개 도시에서 432개 공연을 준비한 것. 이번엔 2012년 연 동시다발 공연과 비교해 숫자부터 확연히 차이가 난다. 참여하는 연주자만 1500명. ‘원먼스 페스티벌’이란 이름을 붙인 이번 하우스콘서트는 피아노 독주회, 재즈 음악회, 실내악 공연 등이 국내 초등학교 강당, 미국 재즈 클럽, 영국 교회, 스페인 수도원 등에서 이어지는 사상 초유의 글로벌 연주회다. 국내 연주자 중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확와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등이 참여하고 유럽, 북미, 남미,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지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연주자가 함께한다. 그는 지난해 초부터 전 세계 연주자를 섭외해 이 공연을 기획했다. 그는 그 많은 공연의 컨셉을 정하고 연주자를 섭외하느라 최근 몇 달간 매일 하루에 3~4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그 많은 연주자를 섭외했을까?



“그간 많은 시도를 하며 신뢰를 쌓아온 덕분이죠. 처음엔 진국으로, 이후 중국과 일본의 음악가를 만나며 쌓은 신뢰가 세계로 뻗은 거예요. 믿기 어렵겠지만, 이번에 하우스콘서트에 참여하는 이들의 절반은 자발적으로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한 것 하나. 그는 왜 이렇게 ‘양’에 집착할까?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질’ 때문이다. 대규모 공연이 국내 음악계의 기초 체력과 자부심을 키워 우리 문화 전체의 수준을 올릴 것이라고 보기 때문. 그는 앞으로 2~3년 안에 한 해 5000개 공연을 연 후 공연계를 떠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과연 그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그를 ‘문화 운동가’가 아닌, 그저 좋은 공연 기획자로만 여기는 것에 문제는 없을까? 앞으로 박창수 대표를 주목해보자.

 



글: 에디터 이영균 

 

 

 

[출처] http://www.noblesse.com/v3/Magazine.do?title=2015-07&id=33040&dispatch=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