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춘추] 2015년 4월호 - 예술을 재단하는 잣대
  • 등록일2016.06.14
  • 작성자하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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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재단하는 잣대

글_류재준(작곡가)

 

박창수라는 사람을 만나서 친교를 맺은지가 벌써 27년이 지났습니다. 서울대에 처음 들어와서 만났던 괴짜라고밖에 볼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였습니다. 강렬하면서도 엉뚱한 언행에 한 두번 놀란 것도 아니고 당시로서는 전혀 장래가 없던 퍼포먼스라는 장르를 택한 그 무모함에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들만큼 잘 사는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란 사람도 아닌 사람이 스스로 마이너를 지향하고 그 안에서 뭔가를 해보려고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안타까울 정도였습니다. 

 

치기였는 용기였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원하는 음악과 거리가 있어 서울대학교를 자퇴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그의 모습은 멋있다기 보다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는 자기 나름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말로만 독특한 많은 실험적인 예술가를 보아온 저로서도 그의 행위와 노력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해외에 있을 때 만들었던 그의 무대는 독특하고 참신했으며 열정적이었습니다. 이런 수준 있는 예술가로 성장한 그가 갑자기 꺼내 들었던 하우스콘서트라는 카드는 그야말로 예상외의 반전이었습니다. 빈 공간이나 집안에 정식 연주회를 만들어 주변 이들과 공유한다는 생각은 외국에서는 간간히 볼 수 있었지만 한국의 실정에서는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연간 몇 번의 공연만을 하는 것도 아닌 수십회의 정기적인 연주회를 진행한다는 것은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다수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하우스콘서트를 통해 경이적인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2012년 120개, 2013년 259개, 2014년 515개. 예술에 있어서 양적 성장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대해서 눈을 뜨고 연주자는 청중을 찾았으며 우리 모두의 파이를 늘려나갔습니다. 수많은 하우스콘서트의 아류들이 생겨났지만 박창수는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류가 아니라 그의 정신을 공유하는 동지로서 대했고 지원까지 해주었습니다.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하우스콘서트에서 연주자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평생 연주회 한 번 가지 못할 듯한 분들도 자유롭고 편안하게 공연을 즐깁니다. 모든 공연이 격식과 엄숙만을 강조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요. 박창수는 경계를 부순게 아니라 다른 포맷을, 형식을 기존에 더 한겁니다. 

 

이런 그의 자유로움을 지금 국가기관에서 이용하고 재단합니다. 연주포맷을 지정해주고 그의 아이디어를 사용하면서 다른 업체와 입찰경쟁을 시킵니다. 그들에게는 그가 예술가로 보이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공연을 만들어 주는 ‘을’로 보이나 봅니다. 더군다나 이제까지 지원해 주던 예산지원조차 삭감되고 부결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들은 그가 이 사업을 통해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고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많이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박창수는 저렇게 많이 공연을 하니 돈을 많이 벌었을 거야. 고급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니 뭔가 있는가 보지. 그는 평생 마이너스 인생입니다. 지원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 작년 조차도 정확하게 1000만원의 빚을 남겼습니다. 이전까지의 누적 적자와 기회비용을 탕진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용인에서 고양이 두마리와 전세집에서 사는 그는 2년마다 고민합니다. 전세값 올라가는게 두려울 뿐이죠. 왜 우리는 이런 멋진 키다리 아저씨를 규율과 편견으로 쫓아 내려 할까요. 항상 어릴 때 상상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키다리 아저씨에게 도움을 받은 지루셔가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주식투자실패와 사기를 당해 망한 키다리 아저씨를 멋지게 구해주고 행복하게 같이 사는 스토리였죠. 아무래도 지금은 우리가 박창수를 도와줘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멋진 판을 만들어준 바보에게 적어도 당신이 한 일들이 가치 있었다고 말해 주어야 되지 않을까요.

 

음악춘추 2015년 4월호 (Vol.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