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2014년 7월 10일- 한·중·일 94곳 동시공연
  • 등록일2014.07.10
  • 작성자박창수
  • 조회989

한·중·일 94곳 동시공연 박창수 ‘더하우스콘서트’ 대표 “딱 하루만이라도 문화로 하나되길…”

작곡가·피아니스트로 활동 독자적 문화 운동 펼쳐
12일 ‘원데이 페스티벌’ 열어 교회·카페·학교가 공연장
해외 경비로 1억원 적자 “뜻 있는 곳에 길” 뚝심

"더하우스콘서트"(이하 하콘) 주인장 박창수와 "하우스지기" 4인의 요즘 하루 일과는 아침 7시에 끝난다. 밤새 일에 매달리다 세상이 밝아지면 그제서야 두세 시간 눈을 붙인 뒤 다시 강행군이다. 서울 도곡동 스튜디오 율하우스 하콘 사무실은 지금 이들에게 숙소고, 일터고, 휴식처다.

"나흘 남았어요. 매번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피를 말립니다. 한국, 일본은 문제 없는데 중국에서 자꾸 변수가 생겨요. 그거 해결하느라 매일 천당과 지옥을 오갑니다." 박창수 하콘 대표(50)는 다급해보였다. 그러면서도 오기, 집념, 기대감이 물씬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 일본 94개 공연장에서 한날한시(12일 오후 7시, 중국은 시차로 오후 6시) 열리는 동시다발 연주회를 준비중이다. 이 "원데이 페스티벌"은 지난해에 이은 두 번째지만, 해외로 공간이 확장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 대표는 지난해 초 올해 프로젝트로 "한·중·일 연대"를 구상했다. "하콘의 출발이 한국문화 저변을 넓히겠다는 것이었는데 가만 보니 중국, 일본도 우리와 처지가 비슷하더라구요. 세 나라 모두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뤘지만 문화는 세련되지 못했어요. 이 후진성을 각성하면서 문화 기반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같이 만들자는 게 취지였습니다." 그는 "난 정치에 대해선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예술의 본질은 이념, 갈등을 뛰어넘는다. 1시간만이라도 복잡한 정치관계를 떠나 한마음으로 서로가 연결됐다는 걸 확인하고, 알리고 싶었다"고도 했다.

페스티벌 밑그림은 후딱 그렸지만 "연대"가 실현되기까지는 험난한 시간이었다. 정부 관련기관이나 공기업을 상대로 해외 네트워크 협조를 요청했지만 모조리 거절당하면서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그래도 음악계 지인 두세 명이라도 있었던 일본 상황은 나았다. 아티스트 섭외나 교회·카페·학교·대안공간을 공연장으로 빌리는 것까지 물어 물어 진행했다. 문제는 중국.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친구의 친구의 친구로 연을 찾아보니 겨우 베이징 한인회가 나오더라구요. 거기 가서 부탁을 했어요. 이곳에 한국 연주자를 보낼 테니 따뜻하게 맞아주면 좋겠다, 모든 경비는 우리 측이 대겠다고요." 그렇게 맨땅을 두드려 주중문화원 두 곳을 뚫었고 베이징, 상하이, 톈진, 항저우, 청두 등 15개 도시 18개 공연을 성사시켰다. 일본에선 12개 도시 29개 공연장을 잡았다. 피아니스트 김태형, 생황 연주자 김화영, 즉흥음악 거물 하리다 요리유키, 얼후 연주자 장빈 등이 한·중·일 무대에서 뛸 주자다.

하지만 이 뜻깊은 프로젝트의 치명적인 어려움은 역시 재정 문제다. 아티스트 비행기 티켓값이며 숙박비 등 총경비가 1억 7000만원인데 문화예술위원회 7000만원 지원금이 예산의 전부다. 1억원 적자는 하콘이 직접 융통해야 한다. 서울대 음대 출신 작곡가·피아니스트인 박 대표는 사업 수완이 좋은 편은 아니다. 자신을 기획자, 사업가로 표현되는 것에도 반기를 든다. 그의 하콘은 이윤추구를 목표로 한 집단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물론 그도 대기업이나 각종 재단을 찾아가 수차례 후원 협조를 요청해봤다. 하지만 이제껏 한번도 기업 후원을 받아본 적은 없다. 그는 "후원 대가가 하콘 콘텐츠와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국 메세나는 아는 사람들끼리 후원하는 풍토가 강하다. 진정한 메세나는 순수하게 예술만을 본다. 언젠가 하콘과 맞는 파트너가 나오지 않을까. 뜻 있는 곳에 길 있는 거 아니겠느냐"고 했다.

사실 이런 뚝심의 예술가 기질이 그의 독자적인 문화운동에 동력이 됐을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후진성을 발견한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고 말한다. "전국에 문예회관만 210개나 된다. 개인 소유물까지 합하면 400개가 넘는다. 세계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이 중 공연 안하는 곳이 70%가 넘는다. 공연장엔 대부분 세계에서 제일 좋은 피아노가 있다. 가서 쳐보면 그냥 닫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너무 곱게 모셔 놓기만 해서 관리가 안된 게 태반이다. 이런 전시용 문화행정에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박 대표는 지난 2002년 7월 12일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처음 "하콘" 문을 열고 무대와 객석의 경계 없는 연주회를 실현해왔다. 하콘은 평상시엔 금요일 저녁마다 소박한 연주회를 연다거나 전국에서 놀고 있는 공연장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일상의 문화를 파고들고 있다.

"원데이 페스티벌"이 열리는 12일 도곡동 율하우스에선 박 대표가 직접 피아노를 친다. 중국의 쑤펑샤는 중국 전통악기 구젱, 일본의 겐이치 다케다는 일본 계량악기 일렉트릭 고토를 잡는다. 이 무대에서 처음 조우하는 셋은 곧바로 즉흥 연주를 펼친다. 그는 "언어는 안 통해도 음악은 통할 것이다. 이런 공연 살릴지, 죽일지, 관객들이 평가해달라"고 했다. 페스티벌 국내 공연은 서울 서촌 헌책방 대오서점 등 전국 29개 시·군 47개 공간에서 펼쳐진다. 관람료는 공연장마다 달라 무료에서부터 2만원까지 다양하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