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2013년 11월 28일- 티켓값 2만원의 기적 "하우스콘서트"
  • 등록일2013.12.02
  • 작성자장진옥
  • 조회1535
[전지현 기자의 아름다운 예술경영] 티켓 값 2만원의 기적 "하우스콘서트"

2013.11.28.



무대와 객석에 경계는 없었다. 낭랑한 클라리넷 선율이 바닥에 주저앉은 관객 113명의 온 몸을 감쌌다. 24평 좁은 공간은 온전히 음악과 사람의 숨소리로 채워졌다.

지난 11일 서울 도곡동 레코딩 스튜디오 율에서 열린 `하우스 콘서트`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클라리넷 수석 벤젤 푹스. 세계적인 연주자가 어째서 이렇게 작은 스튜디오에서 연주를 하게 됐을까. `음악계 돈키호테`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박창수 예술감독(49)의 이상과 집념이 이뤄낸 결과다. 2년전 지인의 소개로 이 곳에서 연주한 푹스는 관객과 거리를 좁힌 하우스 콘서트에 반해 다시 찾았다. 연주료도 아주 상징적인 액수만 받았다.

푹스는 "바닥에 앉은 관객들이 연주자 바로 코 앞에서 음악을 듣는게 너무 신선하다. 아이들 교육에도 좋겠다"며 하우스 콘서트를 극찬했다. 그는 연주가 끝난 후 관객들과 어울리는 와인 파티에 참석해 사인을 해 주고 사진도 같이 찍었다.

박 감독이 2002년 7월 12일 밤 서울 연희동 단독주택 거실에서 시작한 `하우스 콘서트`가 어느덧 374회째를 맞았다. 티켓값 2만원만 받는데도 11년 넘게 진행해온 자체가 `기적`이다. 그동안 단 한 번도 티켓 값을 올리지 않았다.

박 감독은 "지금까지 이윤을 추구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작은 공연 문화 확산이 목적이었어요. 다행히 전국에 우리와 비슷한 하우스 콘서트가 300개 넘었어요. 음악회는 근사한 공연장에서 열려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죠."

그의 하우스 콘서트는 좋은 음악회가 무엇인지 답을 제시하는 일종의 `문화운동`이자 `문화 혁명`이다. 독립군처럼 뛰어다니는 박 감독은 유명하지 않아도 실력 있는 연주자들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경제력이 부족한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했다. 지난해 7월에는 하우스 콘서트 10주년을 맞아 전국 23개 공연장에서 1주일간 콘서트를 100개 여는 `하우스 콘서트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사건`을 열어 공연계를 놀라게 했다. 피아니스트 김태형, 해금 연주자 강은일, 가수 강산에 등 연주자 158명이 참여했다. 관객들은 무대 바닥에 방석을 깔고 관람했다. 전대미문의 대형 이벤트에 들어간 예산은 놀랄 만큼 적었다.

"돈으로 좋은 음악회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게 더 중요해요. 취지가 좋으니까 공연장에서 무료로 무대를 내주고, 연주자들도 거의 돈을 받지 않고 흔쾌히 동참했죠. 사실 전국에 400석 이상 공연장 400여곳이 있는데 가동률이 좋지 않아요. 클래식 음악회를 기획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었죠. 연주자들은 무대에 설 공간이 없구요. 저는 공연장과 연주자를 매칭(matching)하는 작업을 했어요."

그는 올해 260개 음악회를 열었다. 지난 7월 12일 전국 38개 시군 65곳에서 동시에 음악회를 여는 `원데이 페스티벌`이 가장 큰 행사였다. 클래식 재즈 국악 실험예술 연주자 290여명이 참여했다. 올해 결산을 해보니 수익은 커녕 500만원의 적자를 냈다. 기업이나 개인 후원금은 전혀 없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제가 고개를 숙일 줄 몰라 기업 스폰서가 없다구요. 하지만 기업 입맛에 맞는 맞춤 행사는 절대 안 합니다.그게 제 성격인데 어떡하겠어요. 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면서 사회의 변화를 기다릴 겁니다. 다행히 지금은 작은 음악회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구요. 지방 공연장 관객들이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박 감독은 어떻게 생활비를 충당할까. 연주를 하고 작곡을 해서 돈을 번다. 그는 "아끼면 됩니다. 돈을 안 쓰면 너무 힘들지만 버텨볼 겁니다"고 말했다.

그는 왜 어려움을 감당하면서 하우스 콘서트를 유지하고 있을까. 그 동기는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예술고등학교 재학 때 연습을 위해 친구 집을 오가며 거실에서 직접 듣는 음악의 감동을 잊지 못해 20년이 넘어서야 그 바람을 현실로 이뤘다. 악기의 소리를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룻바닥을 울리는 음의 진동을 온 몸으로 느끼는 게 음악 감상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2002년 연희동 자택 일부를 개조해 하우스 콘서트를 시작했다.

"대형 콘서트홀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면 20m이상 떨어져 있어 음악과 교감하기 어려워요.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첨단 음향 장치를 설치하죠. 하지만 그건 자연스러운 음악이 아니에요. 버스 안과 자가용에서 듣는 라디오 음악 소리는 천지 차이죠."

그는 초창기 5년 동안 매년 1000~2000만원 손해를 보면서도 이 작은 음악회를 지켜왔다. 얼마 못 갈 것이라고 단언했던 사람들에게는 이제 `불가사의`로 여겨지고 있다.

"다들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죠. 그러면 더 하는게 제 성격이에요. 진취적으로 생각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누구나 마음 먹으면 할 수 있어요."

그는 연주자를 선정할 때 유명세가 아니라 철저히 실력을 보는 기본 원칙을 지켜왔다.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외르크 데무스, 무명 시절의 김선욱과 조성진 등이 무대에 서왔다. 그 덕분에 처음에는 그가 연주를 `부탁`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연주자들이 몰려와 `선택`을 하게 됐다.

"공연 기획사들은 유명한 연주자만 무대에 올리죠. 하지만 실력과 인지도는 반드시 비례하지 않아요. 연주자들 프로필을 보면 거의 다 명문대 수석 졸업이지만 음악은 천지 차이에요. 교수라고 다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구요. 저는 이름보다는 실력을 먼저 봐요. 그 원칙만 지켜도 성공할 수 있어요."

영악한 세상에서 순수한 꿈을 키워나가는 그의 하우스 콘서트는 인터넷 사이트(http://www.youtube.com/thehouseconcert) 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